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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 끝에는

주하인 2006. 10. 9. 11:29

 

 참으로 거창한 단어.

"선교."

 

주님의 말씀준행

그들에게 행하여 주는 긍휼한 행동의 극치.

나의 시간과 돈, 편안함을 희생하며 불쌍한 민족들을 위해 하는 아주 고귀한 행동.

기독교인이라면 반드시 행해야할 의무가 있는 행동

...........

 

그러나

정말 그렇던가?

 

정말 며칠 간이 선교가 맞는가?

선교라 무엇이어야 하는가?

내가 나이가 몇인가?

2-3일간의 진료 기간으로 무엇을 해줄 수 있나?

그 짧은 기간에 어떤 만남을 가질 수 있나?

선교라면 나의 모든 걸 희생하며 그들을 위해 바칠 수 있는 열정이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데 그런가?

수년간의 선교사를 하고 오신 분들이 과연 살아계신 주님으로 타던가?

....................

수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다.

 단정적으로 단기 의료 선교는 '쇼'라고 하시는 분들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럼에도 갔다... 그리고 왔다.

그리고

그럼에도 가야한다...가 정답이다.

 

 2006년 10월 02일

드디어 왔다.

 

"인도네시아 신땅을 향한 의료선교"

 

일단은 지난 얼마간의 묵상 훈련 덕으로 이렇게 마음을 정했다.

'난 그냥 생각하지 않는다.

 주님이 원하시면 보내실 거구 합당치 않으시면 안보내실 것이다.

 가서 보이실 게 있으면 보이실 거구

 아니면 막으실 거다.

 단,

 난 긍휼함을 배우고 오고 싶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느꼈으면 좋겠단 바램은 있지만

 그것 마져 주님이 원하시고 보이시려는 의도하심에 합당할 만큼 내 영적 성장이 있으면  보이실 것이구 아니면 그냥 말리라... 였다.

 

인도네시아는 아시다 시피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 중에 가장 긴 나라로서 말레시아 부터 밑으로 오스트레일리아까지 드리워진 섬으로 크게 수마트라, 보르네오, 자바섬 등으로 이루어져 있고 종족도 380명의 부족으로 이루어졌으며 무슬림이 90%이고, 기독교인이 5%정도인 복잡한 나라이다.

 

우리가 갈 곳은 '신땅'

보르네오섬에 인도네시아 령에 밀림 오지.

보르네오섬은 캄차카 반도 끝 말레시아 에 가까운 섬으로 '말레시아', 브루나이, '인도네시아'의 세 나라가 분할 되어 있는 섬으로 목재로 유명한 섬이며 그 안에는 '말레시아의 말라유',  ' 인도네시아 주 종족이자 본토에서 이주해온 무슬림 자바종족', 그리고 우리의 선교 대상이고 상당히 많이 기독교화 되어 있는 원시 식인 부족였던 '다약'종족 들이 있는 곳이었다.

 

약 25년 전에 '김익배 선교사'님이 단신으로 들어가셔서 그들과 같이 생활하시며 전도하시고 지금의 병원, 신학교, 초등학교, 유치원, 고아원을 아우르는 60만평의 꿈의 낙원을 만들고, 40여개의 교회를 짓고 정글 곳곳에 전도하는 위업을 이룬 곳이다.

그러나, 대단한 위업은 정보화, 인터넷을 통해서 많이 들어서 특별할 감흥이 있지는 않았다.

그곳을 찾아가는 길은 너무도 멀었다 .

 

서울에서 말레시아 항공을 타고 여섯시간을 날아 '쿠알라 룸프르'로

거시서 국내선을 갈아타고 보르네오 말레시아령 사라왁주의 주도인 '쿠칭'으로 가서

Harbor view호텔에서 잠을 잤다.

 

다음 날 버스 세번을 갈아타며 짐 48 박스와 각기의 캐리어와 배낭을 옮기는 힘듦을 겪어가며 국경을 통과해 인도네시아령으로 들어갔다.

 

인도네시아는 말레시아와 너무도 다르다.

일없는 자들이 국경 창살을 통해 힘없이 바라보는 광경이 개화되지 못한 다약 종족에 대한 예상을 어느정도까지 가능케 했다.

 

가는 길길 보이는 집이 천편일률 적이다.

양철 지붕에 가느다란 벽으로 박스처럼 만들어 놓고 유리로 창을 만들어 놓은, 문을 열면 즉시 방으로 연결되고 바닥은 이불을 깔아 그냥 자는..

불은 전기 사정이 안좋아서 안들어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한마디로 쳐다보고 지나가는 길이 우리나라 1970년 대 초반이전으로 보였다.

 마음이 답답한 걸 금할 길이 없었다.

그나마 개화된 자바인 들이 사는 길목이 저정도니..

 

보이는 거라고는 아주 좁은 이차선 도로 뿐 길 주위에 형성된 마을이 거의 없었고 드문 드문 길가에 어두운 박스같은 집과 밀림 뿐이었다.

자주 '주님 어떻게 할까요?' 라고 화살기도하며 갔다.

 

 버스 안에서 젊은 동광교회 청년들이 '찬양'을 인도하였다.

열심히 부르다가 '주님 가신 이길 끝에는...'으로 진행되는 찬양이 나왔다.

 

몇시간 후면 도착할 아가페 병원에 무언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오며 괜히 눈물이 핑 돌았다.

예전의 경험을 비추어 볼때 이것은 '응답'이었다.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다.

 

도착한 신땅은 듣던 것 보다 훨씬 더 어마어마 하고 뿌듯하였다.

주님의 뜻이 아니고 인간의 의지 만으로 이루어 낼 수 없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60만평이란 땅의 크기도..

그 안에 지어진 상상을 불허할 정도의 아름다운 건축물이 건축과 목재에 문외한 이던 김익배선교사님을 통해 설계되고 이루어진 점도

그 안에 신학교가 형성이 되고

대단위 종합병원이 그 밀림에 이루어진 것도

초등학교도

유치원도

고아원도 - 고아원 설립하려 100% 무슬림 지역에 땅을 사자마자 수배나 폭등하게 하신 주님의 놀라운 기적도- , 그 고아원 원생들이 사랑으로 충만함도,

15만평의 고무나무도

그리고 그 모든 일에 인도네시아 인 후계자가 양성이 됨도,

.....................

 하나님이 역사하심과

예수님이라는 진리에 대한 이유가 없이는 이루어질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거기 머무는 내내 인도네시아 인들과 경계가 없이 자연스레이 교류가 이루어졌고

거기에는 남녀도 노소도 교회와 병원 직원의 경계도 없었다.

모두 김익배 선교사님의 타는 듯한 사랑 안에서 그냥 자연스레이 녹아서 어우러지는 느낌이었다.

 

도착한 날

우리는 모텔 수준 이상의 좋은 방에서 취침을 하고 났다.

건기임에도 너무도 좋은 날씨에

희한한 것은 전세계 모기가 공통으로 환영하는 우리 집사람이 모기 한방 안물렸다는 점이다.

그토록 개운하게 일어나

밀림 속으로 의료 선교를 들어갔다.

 

 밀림 속에 비교적 개화가 많이 된 다약 종족 들이다.

신학교 출신 여전도사님이 시무하시는 교회가 있는 곳이었다.

 

북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우리를 맞으시는 마을 사람들.

예배 후 진료가 시작이 되었다.

 

몰려드는 사람들.

가진 병의 상태가 똑같다.

 

두통

어깨통증

위장통

관절통

영양실조

시력

폐결핵

 

못먹는 사람들이 지나친 일과

끝없는 가난과 비젼없음으로 인해 생기는 증상들.

진찰을 하며

가슴이 아파서 혼났다.

 

사람들이 너무나 조그맣다.

근육이 얼마나 volume이 적은지 종이장 같다.

그 종이장 같은 근육이 뭉쳐서 오돌도돌하다.

 

인도네시아인,

특별히 다약족의 아이들은 눈이 너무나도 이쁘다.

쌍가풀 수술을 그렇게 할 수 있는 의사가 있으면 대단한 힛트를 칠 수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 아이들의 눈이 나이가 들어가며 서서히 빛을 일어간다.

10대가 되기 전에 총기를 잃어 버린다.

그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누어 주면

다투지를 않는다.

서로 달라고 손을 내밀지도 않는다.

주사를 놓아도 아파서 표현하지도 않는다.

 

희망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 현상은 다음날 시행된 아가페 병원 내  선택받은 다약족 진료에서도 질환의 차이는 별로 없었다.

정도는 덜하지만..

 

그런데 다른 게 있었다.

아이들이 좀더 눈이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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