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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

이후에도 괜찮다(시90:1-17]

주하인 2017. 8. 29. 09:47

 

아무리 봐도

젊음은 찾아볼수 없다

 

누가 봐도

할아버지라 불러도

하등 이상치 않을듯 하다

 

나름 아직도

맘은 그렇지 않있던가

 그런 진실에 대한 마주함은

마음 한구석이 불편케 해온다

 

조금있으면 칠십

또 곧 팔십

그리고 다가올

이 땅의 미지막 순간을

사진으로 예감하면서도

내 안에서

저항하고 있는 몸부림들

 

오직

주의 말씀으로 주시는

허락되어지는 성령의

지혜와 은혜로

내 처소삼아 살다가


주 부르실 때

두 손 펼치고

할렐루야 나아갈

그 마음으로 살 때가 맞다


사진을 보니..

 

 

 

1.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당연하지만

주님은 '우리'의 거처가 되셔오셨고

또 우리의 거처가 되실 것이다.

거처.

쉴 곳.

거하고 먹고 움직이는 근거.

내 죽어 .. 주님 곁으로 갈 때까지 내가 내 몸쉬고

내 매일의 안식을 유지할 근거지.. 거처.

 

그 거처가 되셨다.

주님이 대대로 그러셨다.

내 매일의 거처 뿐 아니라 내 자식과 내 후대 모두의 거처가 되심이 당연하시다.

그것을 ... 잊고 살기에 문제지..

주님이 내 거처이심 만을 매일 인식하고 산다면

어찌 삶이 그리 굴곡지고 힘이 들 수 있을까?

 

 

 

4.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 주님의 시간은 천년이 하루 같다.

하루가 천년 같으시고..

그 분은 시간을 넘어서시는 분이시다.

우리의 어려울 적 시간은 그리도 안 흐르고

어렸을 적 시간은 길다가가도

기쁠 때.. 행복한 시간은 왜 이리 짧고

돌아 보니 내 이시간까지의 시간은 또 왜이리 짧던지..

 

누가 .. 시간은 일정하고 정확하고 변함없다고 할까?

 

하나님은 그 시간의 지배자이시다.

돌아보아도

지난 삶이

바로 어제 같았다.

 

 

 

10.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내 살아온 시간의 1/3도 안남았기에

그 시간은 또 어떨까?

눈감았다 뜨면 또 지금 내 아버지의 그 시간에 서 있게 될 것이고

오늘을 후회하게 될지 모른다.

 

하나님 만이 정답이시다.

그 분은 시간의 지배자이시며

내 늘 거할 거처이심이 맞으시다.

 

내가

내 안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갇혀 있기에

내가 고민하고

내가 괜히 불안하고

내가 안타까워 할 뿐이지..

고아처럼........ㅠ.ㅠ;;

 

 

12.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이제

눈을 들어 하나님을 다시 볼때다.

아무리 애를 써도

흐르는 시간 안에서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세상을 다 가지고

모든 민주주의의 수호자처럼 행동하며 결국 대통령까지 하시고

멋드러지게 사시던 그 분들도 벌써 세상을 떠나신지 오래고

공주로 태어나 여왕까지 하시던 그 분도 곧 몇년 안에 흙으로 돌아가실 것이며

입지전적 인물로 대통령까지 되셔 모든 세상의 재물들을 다 흡수하려시던 그 분도

몇년 안에 가실 것이시다.

 

진정 지혜로운게 무엇인가?

이땅..

유한한 삶의 것을 목표로 매진하여

누구들처럼 그냥 속절없이 죽음 앞에 떨구어져

영원 앞에 먼지로 소멸되고 마는... .

그러나 그 조차 수긍하지 못하고

몸부림치다가 누구도 알지 못하는 그 영원의 시간으로 매몰되어 가는

그게............

과연 옳은 것인가?

미련한 것 아닌가?

이 땅의 삶...

겨우 칠십, 오래살면 80( 솔직히 이것도 많이 봐준것 아닌가? .. 재밋게 살기 위한 육신의 나이.. 50 이전 까지만이다.. 실은... 나머지는 여생이라 생각된다. .. 아무리 몸부림 쳐도... 감각은 무뎌져.. 좋은 것 주어도 느끼지 못하는 인생들이 되어간다. . .50이후.. ) 인데

얼마나 더 몸부림 쳐야 하는가?

이 미련한

다람쥐 쳇바퀴..

의미없는 시간의 도르레.. 안에서 말이다.

 

지혜는..

하나님이시다.

 

오직 그 분이

다 하실 것이시고

오직 그 분 만이

내 모든 삶의 의미를 부여 하시는 분이심을

잊지 않고 기대하면

삶과 죽음의 경계가 뚜렷이 보이고

더 이상 사망이 우리를 크게 좌지 우지 하지 못하며

이 땅에서 모든 것을 다 이루어 보려고 애를 쓰며

무리해서 의미를 찾으려고 손아귀 부퉁켜 잡고

아둥바둥 하다가

영멸의 속으로 죽기싫다고 뗑강 부리며 떠나가는

그리 미련한 일들이 멈추어질 수 있다.

 

오직 하나님시다.

이제..

내 나이 58.

만으로 56년 몇개월 살아오니

이제 살아갈 날이 몇 년 남지 않았고

그 남은 시간 마져

이전의 감각적 만족을 얻기 위해서는

동일한 자극을 몇배나 더 받아야 느껴지는

쇠퇴하는 시간 만이 남았다는 것이다.

 

두렵다.

무섭다.

무엇이 내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아무 것도 내 하는 일이 더 이상 의미가 될 수 없다.

그래..

이웃을 위해 봉사를 하고

타인을 위해 내 나머지 삶을 다 희생한다하더라도

그게... 영원의 시간에 어떠한 의미가 될 수 있는가?

시간이 지나면

아무리 대단한 자라도 한줄 글로만 남게 되고 사라져 버리게 될 것이다.

결국.. 그 몸부림의 근거도 자신의 만족에 뭐 다른가?

 

그거.. 미련한 일이고 의미없는 일이기에

이제 이후의 나머지 20여년의 시간은

그냥 그냥... 흘려보내다가

죽어가는 수 밖에 없는 게

우리 들, 중년이 후의 삶들에게 남겨진 운명이다.

아무리 몸부림 쳐도.......................................

 

 

하지만...

그거..

하나님을 전제로 하면 달라진다.

새로운 지경이 펼쳐진다.

그 분의 안에서는 '시간'이 의미가 없어진다.

천년이 하루가 되고 하루가 천년 같아지는 시간의 창조주께 의탁하면

어찌 우리가 그리 될 수 있는가?

죽음이후의 영생.

그 영생의 시간에 어떠한 일이 우리에게 남겨질지 무엇이 궁금한가?

마치 강아지에 콤퓨터를 가르치는 것과 무에 다를 까?

그냥.. 인도하시는 대로 살다가

부르시는 죽음의 시간에

불현듯

새로운 몸, 온전한 영혼으로 일어나는 것..

그 부활의 영으로

주님의 나라에서 거하면서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영생을

주님의 감성 ( 누가 영원을 천국에 사는 것을 지루하다고 하는가? 이 미련한 강아지..ㅎㅎ .. ) 으로

은혜 받을 때의 그 감동의 수천 수만배로 누리는 것...

그것이야 말로 성경 어디에 나오듯.. '신'과 같은 느낌이 아닐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 스도를 닮아가게 되는 것..

이제 머리를 내려 놓을 때다.

더 이상의 내 생각으로는 답이 없다.

이 시간의 비밀.

이 영생의 비밀..

그를 운용하시고 만드신 하나님의 거처 안에서 사는 자의 행복함의 비밀..

죽음과 삶에 대한 근거의 비밀...

수 많은 비밀은 다 하나님께서 알아서하실 것이시다.

 

그러기에 .. 이제

늙어 버린 자신에 대한 허탈함도

늙어가는 자로서의 당혹감도

그 늙음까지 이루고 이루지 못한 자만감과 속상함도

늙은자의 외로움도 ... 이제 필요없다.

다 주님의 품이 내 거처가 되시면

그리고 그 분이 내 모든 것을 다 인도하실 것이고

지금까지와 그렇듯

앞으로의 시간도 그럴 것임을 기대하고

하나님의 거처 안에서 내려놓고

그냥 말씀대로 하루하루를 살길... 기대하며

그리 살길 선택하고

기도하는 삶을 유지하면

내 어느 때 주님 부르실 그때에

이제

이 무거운 육신을 내려놓고

주여.. 감사합니다.

돌아보니 눈깜빡할 때이지만

주님의 함께 하심으로 인하여

그 모든 불과 같은 과정을

모두 연단으로 이겨내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나이다. .. 외치며

두손 들고 주님 곁으로 소천되어갈 수 있을 것이다.

 

감사하다.

 

 

주님..

자칫..

누구처럼 염세주의에 빠질 수 밖에 없는 되새김입니다.

진실에 대하여 부딪침입니다.

죽음에 대하여

인생에 대하여

다시한번돌이켜 볼 기회였습니다.

 

주여.

답답하고 힘들고 불안하던차였습니다.

돌아보아도 앞으로 보아도

이제 죽음이 바로 눈 앞에 와 있는 시기이기에

어떤 것도

그리 의미가 없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최근 흔들리던 이유도

괜한 불안도

그 근저에

무엇을 해도

어찌 다르게 할 수 있던가.. 하는 내 혼자 만의 고민이

슬그머니 내 감성을 흔들던 탓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주여.

그런 순간순간의 흔듦조차

말씀 앞에 내려 놓습니다.

주여.

주님이 인도하시면

칠십이 되고

곧 80이 다가와도

그 때까지 또다른 인도하심 안에서

의미있게 살수 있을 것을 기대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도 점차 뚜렷이 영혼에 실제로 다가오는

제 인생의 결국이 되어

주님의 나라에 올라갈 수 있을 줄 믿습니다.

 

 

주님..

어느새 여기까지 왔습니다.

주님..

이제 고 또 다시 70과 80의 그 때에

여기까지 오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지금까지 그러하시듯

인도하여 주셔서

저로 주님 만이 내 거처가 되는

그런 지혜로 절 채우실 줄 믿습니다.

성령으로 말이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릉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닥터 김의 흉터없는 산부인과 복강경크리닉

(http://blog.naver.com/kbcl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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