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이제 나 주하인도[단12:5-13] 본문
홀로 있다고
버려짐이 아니요
흐리다고
모두 비가 올 것만은 아니다
돌아보니
그래도 난
하나님의 광활하심 안에 안겨 있으며
둘러보니
녹색의 생기는
내 주위에 충만하게 존재한다
그렇다
이제 나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내 감성이나
내 육신의 감각을 통해 느껴지는
잠시의 변화에 대한 흔들림보다는
크신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의
그 온전한 진실하심과
영생의 복을 약속하심에
늘 감사함 안에 머물수 있음이
진정한 복임을
확신하고 깨닫는 것이다
5 나 다니엘이 본즉 다른 두 사람이 있어 하나는 강 이쪽 언덕에 섰고 하나는 강 저쪽 언덕에 섰더니
' 나 다니엘'
NIV에서는 ' I, Daniel'이라 표현했다.
내가.. 라 표현해도 될 것을
왜 그렇게 표현했을까?
확신이다.
강력한 확신으로
세상의 누구나
믿을 수 없는 '환상'으로 치부되거나 재밌는 이야기로 치부될 것을
염려한,
아니 꼭 믿어야 할 것임을 믿도록 만들고 싶은
세상에 대한 안타까운 사랑이다.
나, 주하인.
믿음 안에 서 있지만
믿음이 다 충실한가?
완전한 믿음 가운데 서 있던가?
완전한 믿음이란 무엇인가?
'신사도 주의'들 처럼 정말 온통 믿음이 옳은가?
100중 1~2 이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 사단의 궤계라면... ?
위험한 일이 아니던가?
아주 가까운 곳에서 그런 미련한 '혼자 똑똑함'을 많이 보았는데..
그렇다면 '믿음'은 어디까지인가?
어떠하게 중심을 잡아야 하던가?
다니엘 같은 훌륭~하다고 믿어지는 '목회자'들의 말은 다 옳은가?
아니면, 나 혼자 만의 것을 믿는가?
신사도의 위험은 위에서 언급했지 않은가?
우선은 '성경'에 바탕한 믿음이 우선이다.
그런의미에서
오늘 ' 나, 다니엘' 이란 표현이
굵은 글자로 내 눈에 들어옴은
하나님이 내게 , 개인적으로 말씀하시고자 하는
어쩌면 이와 동일히 묵상을 바라보는 여러 분들에게
있을 , 피할 수없는 , 필수불가결한
하나님의 확실한 이야기를
수천년의 시간을 격(隔)하고 말씀하시는 것인듯하다.
그것..
얼마나 반드시 지켜야하고 받아들여야 할 믿음이기에
저리 '나 다니엘' , I, Daniel... 이라 표현을 하는가?
7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쪽에 있는 자가 자기의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원히
살아 계시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지기
까지이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칠년 대환란 중 '전 후 삼년반' 동안 중 어느 부분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다 .
이때의 환란은 계시록에 보면
견디기 힘든 대 환란의 시간들이다.
종말론의 시간들..
공관복음에서도 어디인가 나온다.
믿는 자들에게는 '그날을 감(減)해준다.'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는가?
계시록 공부하길 원하시는가?
두려워 하길 원하시는가?
'나 다니엘'의 다니엘께서
무엇하러 저리 처음부터 표현을 했다는 말인가?
물론 세상에 대하여 '회개'와 돌이킴의 권면의 안타까움도 있겠지만
나 자신에게,
레마로 받는 모든 깨인 자들에게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간절함의 중심은 무엇일까?
다시 말하지만
믿는 자에게는 고난이 많고
고난은 유익이며
그 고난을 예수님의 십자가로 생각하고 받아 들임의 의미이며
이제 세상은 돌아가는 양상이
'그냥 그 안에서 편안히 안주하고 픈'
배가 부른 믿는 자들의 게으름을 경고하시는 말씀이시다 .
다시 말하면
'주하인.. 이제는 정신 차려야 겠다' 시는 것 같다.
상황이랑 상관없이 마음이 편해지니
점차로 게을러 져 가는 것 같다.
기도의 횟수가 자꾸 줄어가고
피곤으로 그냥 잠자리에 듦이 늘어남은
비단 나이듦 탓만은 아닌듯하다.,
이제 다시 나를 돌아보아야 한다.
'나 다니엘' 이란 말씀을 붙들고
다시 조금 더 정신을 차려서
마지막 날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할 듯하다.
조금씩 더 절제를 해야 하고
조금 더 기도의 분량을 늘여야 한다 .
그리고 ,' 축복' 만이 모든 믿는 자의 궁극이 아님을 인정하고
' 낮아짐' , '약해짐', '곤란'... 등도 믿는 자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일과 빈도로 다가오며
그래도 그것은 '하나님의 진정한 뜻' 가운데 있는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 ,
그러한 믿음의 방향이 진정한 '믿음' 임을 깨닫고
이제는 어떠한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기도하고 기대해야 한다 .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주님은 선하시고
주님은 살아계시며
나의 결국은 승리일 것임에 확신을 가져야 하며
벌어지는 일들에 의하여 부화뇌동, 일희일비를 하지 않아야 할 것임을
'나 주하인'에게 스스로 주지 시켜야 한다 .
기도로 그래야 하며
성령의 충만함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
귀하신 아버지
한주가 또 지나고
주일이 또 지났습니다.
또 또또가 또 몇번씩 내 의식에 걸러져 사라져갑니다.
어느새 육신은 그 만큼 늙어져 가고
어느새 하나님의 허락하신 이 땅의 연단의 시간들은 줄어들어가고 있습니다.
주여.
새로운 한 주의 시작하는 아침에
다니엘 께서 '나 , 다니엘'로 말씀을 시작합니다.
그 안에는 이제 곧 있을 예수님의 확실한 '재림'과
그 뒤에 따라올 대 환란에 대하여
믿는 자로서 '영적 혼란'을 경계하고
그것은 깨어 있지 못한 자들의 마땅하게 당할 혼란이며
깨어 있는 자들에겐
감해진 상황과 더불어
이 땅의 상황이 '영생의 축복'과 하나님의 진정한 복 에
어떤 흠집도 내지 못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길 원하시는 뉘앙스로 들렸습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
깨달은 바.. 영혼에 점점 더 침착되어
주님의 향기를 많이 풍기는 제가 되게 하소서.
오늘
나 주하인...
주님의 뜻을 확실히 깨달 았으며
주님의 그럼에도 임재하심에 대한 확신이
언제나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미리 깨닫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내 주여.
감사하며
모든 것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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