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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닭이 운다(요 1815-27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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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닭이 운다(요 1815-27 )

주하인 2008. 12. 20. 11:45

제 18 장 ( Chapter 18, John )

 

 내

창틀에 놓여 있는 풀들.

창밖 너른 하늘 만을 보아서 인지

땅에 떨어져 나와도

그들은 싱싱하다.

생명력이 충일하다.

주님 만으로

세상을 살자.

 

 


15.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하나가 예수를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 가고
 
 베드로도 대제사장 집에 왔다.

예수님과 다른 제자 하나와 같이..

 

 
16.  베드로는 문 밖에 섰는지라 대제사장과 아는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왔더니
 그는 문 밖에 서 있었다.


 
17.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하니 그가 말하되 나는

     아니라 하고
  그리고는 거짓말 하기 시작했다.


 
  
25.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아니라 하니 
 
    긴장하는 그도

육신의 추움은 견딜수가 없나 보다. 

'불을 쬔다.'

 예수님은 끌려와서 묶인 채로 고초를 겪고 계신데도 당당하신데.....

 

 
27.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결국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운다.

 

 

 그림이 그려진다.

우직한 베드로.

의리는 있어서 예수님을 쫓아는 왔지만

두려움은 어찌할 수 없다.

굳이 두려움 뿐이랴.

그리도 믿고 의지하던 '하나님' 예수님이 끌려가시다니

머리 속이 뒤죽 박죽일 것이다.

하나님의 카리스마는 느껴지니 따라는 가지만

한편은 '왕'의 신하로서의 막연한 기대,

그것을 가지고 '집'을 포기하고 '정원'에서까지 잠을 마다하지 않지 않았는가?

죽을 때까지 그렇다면 그것을 어찌 감당할 것인가?

곧 유한한 고난의 시기가 끝나면 영화가 있을 것이라는

정리되지 않은 믿음 - 영적이든, 현실적이든 .. - 이 충돌을 일으킬 것이다.

 그러한 그는

조심스레이 대제사장 집안으로 들어가서

오돌 오돌 떨고 있었을 것이다.

얼마 동안은 예수님의 고난을 보느라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추운 줄도 몰랐을 것이다.

그의 눈은 좌우로 마치 '안구진탕'이 있는 자 처럼 왔다갔다 하며

주위를 살피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자

대기의 차거운 바람은 그의 '육신'에 증상을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추위.

살이 오돌오돌 뭉쳐지고

몸은 사시나무 떨듯이 떨려지고

드디어 그의 머리는 온통 이러한 현상을 없애는 데 집중이 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의 시선은 서서히 '예수님'께로 부터

어두움 속에 타오르고 있는 '불' 쪽으로 향해지고

그것을 둘러 싸고 있는 제사장 일파 - 세상의 것을 대표하는... -의 얼굴에 비추이는

진홍색 불빛이 주는 그 평안함 - 거짓 평안함 -이 정말로 부럽게 느껴지게 되었을 것이다.

한발 한발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 쪽으로 다가가게 되었을 것이다.

그의 신경은 이제 '예수님'에서 점점 멀어지고

육신의 따사로움이 주는 편안함과

사람들에게 들키면 어찌할 까 하는 '긴장감'으로 온통 집중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불쌍한 베드로.

주님 쪽에 집중해도 그의 머리로, 그의 영적 성장으로 답이 없을 듯 하고

세상에 집중해도 그는 온통 긴장 뿐이다.

 주님에 집중하면 다가오는 그의 성향에 따른 자부감은 컸을 것이지만

세상에 집중하면 머리는 복잡해도 몸은 일단 나른하다.

사람들이 물어온다.

'넌..'

'넌.. .'

'넌...'

 그럴 때마다 그의 마음은 점점 막혀 가고 예수님은 멀어져 간다.

몸은 뜨거워 지겠고

추위는 사라지지만

영혼의 갈증은 점점 커져만 갈것이다.

사람 들이 물을 때마다..

 

 닭이 운다.

닭이 운다.

그때가 되면

그의 육신이 느끼던 착각이

다시 한번 여지없이 깨지게 되는 시간이 될 것이다.

 

 베드로를 묵상하면서

그의 육신이 주는 강렬한 유혹과 한계 앞에

진리이신 하나님을 따르는 영적인 기쁨을 놓치기가 얼마나 쉬운가 보고 있다.

이 세상은

믿는 우리로 하여금 두가 지 선택을 강요한다.

매일 ...

 세상의 불 쏘시개가 주는 거짓된 편안함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춥지만 예수님의 영적 평강을 택할 것인가?

 주님을 택하면 춥기는 하지만 놀라운 평온이 있을 것이다.

세상을 택하면 일시적 따뜻함이 있지만 깊은 고뇌가 따를 것이다.

물론 따스함이 사라지면 땀이나고 괴로울 것이다.

 하지만,

그 좁은 계곡의 길 같은 상황에서

언제나 떨어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주님은

주하인을 보고 오늘 어쩌시기를 바라시는가?

주님을 보고 세상을 이기길 기대하신다.

세상은 달콤한 듯하지만 쓰다.

이제 곧 닭이 울면

이제 곧 주님 예수님 공중 강림 하시면

돌이킬 수 없는 충격이 그럴 영혼에 오지 않으리라

어찌 장담할 것인가?

후회해도 소용없다.

하루 하루 줄 사다리 잡고 가는 기분으로 살아야 한다.

세상을 살되 세상을 살지 말아야 한다.

세상을 살되 세상은 주유해야 한다.

대제사장 뜰에는 들어가되 불의 유혹은 벗어나야 한다.

불은 쬐되 주님은 부인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 곧

닭이 울 것이다.

 

 

적용

 

1. 오늘 모임이 있다.

 예수님의 기쁨을 전할 마음으로 간다.

 

2. 친구의 안수 집사 취임식이 있다.

 온전히 축복을 하여 준다.

 세상에서 불을 쬐지 말라는 징표임을 축복한다.

 

3. 성경 여섯 장 읽겠다.

 

4. 베드로의 초조함을 이기는 법은

 주님 만을 쳐다 보는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잊지 말자.

 

 

 

기도

 

주님

짧은 시간에 묵상을 했습니다.

주님

베드로의 어리석음이 어찌그리 절 닮았는지요

날마다 수도없이 짓는 어리석음이 그렇습니다.

흔들리는 마음이 그렇습니다 .

어느 순간 예수님을 쳐다보지 않고 있는 둔함이 그렇습니다.

초조해 하는 마음이 늘 그렇습니다.

주님.

불쌍히 여기시고

저로

닭이 울기 전 정신차리게 도우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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