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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쁜 야곱( 창46:1-7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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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쁜 야곱( 창46:1-7 )

주하인 2007. 6. 13. 09:44

제 46 장 ( Chapter 46, Genesis )
1.  이스라엘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발행하여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 아비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니  
 야곱을 이스라엘이라 불렀다.

뜬금없이.

 이뻐서 죽겠다는 표현인 듯 싶다.

그 이쁜 야곱이

모두 데리고

또 한번

인생의 변환을 시도한다.

모든 소유를 끌고

미련없이...

그러니 이쁘지.

주님께 ...

 

 그 이쁜 야곱이

시도를 하며

하나님께 희생을 드린다.

 

2.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시고 불러 가라사대 야곱아 야곱아 하시는지라

     야곱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하나님께서 나타나셨다.

얼마나 이쁜지

부르시는 게 한번이 아니다.

야곱아 야곱아...하신다.

 꿈 속에 나타나셨으니 어디 갈 것도 아닌데

주님은 조금은 방정맞으시게 - ㅎ 죄송 ! -  두번 씩이나 그러신다.

 ' 주하인아. .. 주하인아..'

나도 그런 부름 받아봤으면..

어떤 분의 리플 중에 '주친구'가 되기를 바란다는 말씀처럼..

나도 이스라엘 이름으로 불린 것 같이 주친구라 불릴 수 있을까?

 

 

3.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비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그리고는 마구마구 축복의 말씀을 하신다.

 

 

7.  이와 같이 야곱이 그 아들들과 손자들과 딸들과 손녀들 곧 그 모든 자손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그리고는

모두 모두 데리고

애굽으로 건너갔다 .

 

 읽어가며 몇가지 의문이 멈추질 않는다.

 

 우선은 이렇다.

애굽은 불신자의 땅이고

거기 내려 가는 것은 일종의 피난인데

어찌 이리 주님께서 야곱을 기뻐하시는 걸까?

마치 축복의 포를 쏘면서 축제의 느낌으로 약간은 흥분하신 듯한 뉘앙스다.

 

 또

야곱의 이름이 왜 이리 혼란스레이 불릴까?

이스라엘 였다가

두번 부르시기도 하시고

그가 무엇을 잘했는가?

그리 흥분하셔서 이름을 헷갈리게 부르실 하나님의 만족스러우심이 있기라도 하는가?

그 노인은

아들 들 애굽에 왔다 갔다 하면서 심적 고통을 받을 동안

가만히 편안히 있지는 않지 않았던가?

 

 셋째

불신자의 땅으로 내려 보내는 게

현실에서 보면 안좋은 것일 수도 있는데

주님의 입장에서 보면

이게 원리일 수도 있는가?

 

 

 느껴지는 것은 이렇다.

 

 축복은 눈앞에 나타난 물질적 증거가 다 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 우리의 바램 처럼 항상 기쁘고 즐겁고 환상적인게 축복의 전제 조건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가뭄 중에 피할 곳.

그 피할 곳에 모두가 한결 같이 갈 수 있는 게 축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과정이 주님의 뜻에 의해 이루어지는 게 바로 축복이라는 것이다.

물질의 축복이 있어도

주님이 원하지 않으시는 것은

절대로 축복이 아니라는 것이다.

 야곱은

비록 모습은 '애굽의 땅'으로 내려가는 노인이지만

그는 '모두'를 데리고

딸들, 아들들, 손주들

하나도 주님 믿음에 어긋나지 않도록 피할 곳으로 피해가게 되지 않았는가?

그러니

그렇도록 자식을 교육하고

죽을 때까지

인생의 우여 곡절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단 한번도 놓치지 않았기에

그는 '그리도 이쁜 이스라엘'이라 불리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우아하고 대단한 축복의 모습이 아니었을지라도

주님과 야곱 만은 그 사실을

대단한 축복의 과정으로 Ceremony하고 계시는 것이시다.

 

 또한 그가 이쁨을 받을 이유는 몇가지 있다.

우선

끝까지 그는 기다리는 삶을 살았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은 '얍복강'의 사건이후로

경거망동하지 않았고

노후까지 차분히 살다가

이제야 하나님의 허락 - 이것이 중요하다.     이래서 주님이 기뻐하신다.-하에야

그는 애굽으로의 장도를 행하게 된것이다.

 

 배울 것이 이것인 듯하다.

 

 내려놓고

무한정 기다리다가

주님이 원하시면

과감히 행한다.

 한번 행하면 모든 것을 다 해치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님 앞에 끝까지 물어보고 행한다.

비록

결단은 사람 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뜻으로 한 것 같지만

그 과정에도 그의 속은 하나님의 의중을 단 한번도 잊은 적이 없는 것이다.

 그게 모두 챙겨서 옮기는 그 과정에서도

즉시 하나님께 제를 올리는 행동으로 나오고

서두에 이름을 이스라엘로 불리는 이유가 된 것이다.

 

  나도 그렇다.

내 속은 아직도 내가 그리 옳지 못한 삶을 살았음을 가슴아파 한다.

가끔은 멍하기도 하다 .

그리고

자꾸만 무엇인가 내가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강박관념이 들기도 한다.

물론 순간이지만..

그러나

오늘 주님은

실제로 기뻐하실 조건에 대하여

슬그머니

야곱을 통하여 나에게 보이신다.

무엇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무엇을 하지 않아도 중요할 수 있다.

그것이 어쩌면 이스라엘이라고 불릴 조건이 될 정도로 클 수도 있다.

그것은

내려놓고

기다리고

인내하고

주님을 전혀 놓치지 않으려는 몸부림.

바로 그것이다.

 

 

 

 

 기도

감사하신 하나님

늘 부족한 저에게

눈을 열어 주시고

길을 가르쳐 주시고

한편으로 위로하시고

부족감을 채워서

사랑으로 감싸주시며

하나하나 찝어주시는

그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특별히

오늘

외견상

아무 이뻐할 조건 없는

늙은 노인

야곱을

그리도

이스라엘이라며

두번씩이나 다정히 부르시며

하나하나 지도하고

인도하시는

그 주님을 통하여

아직도

자신없고

자격없다 생각하는

저에게도

가능성을 보여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예수님.

주님 뵐 그날까지

주님 당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모든 걸 주 앞에 내려놓고

기다리고 인내하는 자가 될 수 있도록 도우소서.

축복도 허락하소서.

그것도

당신께서 원하시는 축복을

그대로 제가 느낄 수 있도록 하소서.

주님과

저 만이 알 수 있는 그 세밀한 비밀을 누리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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