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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주의 이타주의(삿 9:7-2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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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주의 이타주의(삿 9:7-21)

주하인 2007. 12. 7. 12:00

 제 9 장 ( Chapter 9, Judges )

 

비록

남들이

보지 않는 종탑의 일일 지라도

주님을 위해서라면

그게

가장 기쁨이 되었으면 합니다.

 

 


 
9.  감람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의 기름은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나니 내가 어찌 그것을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한지라 

 감람나무가 마음에 든다.

왕보다 자신의 일에 대하여 자부심을 가지고 있음이 그렇다.

'내가 어찌 그것을 버리고" 라는 표현이 가슴을 친다.

"왕 되는 것을 요동한다 ' 표현하는 것이 너무도 좋다.

자신의 일,

겨우 기름을 뽑지만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한다는

소명의식이 있어서 그러함이 더욱 기쁘다.

자신이

기름을 뽑는 나무 임을 확실히 앎이 기쁘다.

 하나님과

남을 위하는 자세가 우선 임이 마음에 든다.

그것을 왕 자리 보다 더욱 기뻐함이 그렇다.

이타 정신이 그렇다.

소명의식이 그렇다.

자신의 일을 사랑함이 그렇다.

 

 

 

 

 

11. 무화과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의 단 것, 나의 아름다운 실과를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

     들 위에 요동하리요 한지라
 무화과 나무가 마음에 든다.

왕 자리를  떨치는 마음이 그렇다.

자신의 일을 너무도 사랑함이 그렇다.

자신이

단 것과

아름다운 실과를 만드는 일인 줄 확실히 앎이 그렇다.

 

그래서 쉽게 떨침이 놀라워서 그렇다.

'내가 어찌 그것을 버리고'라는 표현이 마음에 든다.  

역시 감람나무처럼

"왕 되는 것을 요동한다 ' 표현하는 것이 너무도 좋다.

 

 

 

 

13. 포도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나의 새 술을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한지라 

 포도나무가 마음에 든다.

왕이 되는 것보다 자신의 일을 사랑함이 그렇다.

'내가 어찌 그것을 버리고'라는 표현이 마음에 든다.

"왕 되는 것을 요동한다 ' 표현하는 것이 너무도 좋다.   

자신의 일은

사람과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술을 만드는 일임을 아는 것이 좋다.

 

 

 

 

15.  가시나무가 나무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참으로 내게 기름을 부어 너희 왕을 삼겠거든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를 것이니라
  가시나무가 싫다.

'너희'라는 표현이 거만해 보여 싫다.

'내게 기름을 부어'라는 어처구니 없는 말도 싫다.

'왕을 삼겠거든'이란 자가당착 적인 표현도 맘에 안든다.

'내 그늘에 피하라'는 말도 안되는 착각도 거북스럽다 .

겁주는 것은 더욱 싫다.

 

 이와 위 세 나무의 차이는 뚜렷하다.

거친 반면 온유하다.

거북스러운 반면 존경스럽다.

교만한 반면 겸손하다.

욕심이 많은 반면 청빈하다.

사나운 반면 온유하다.

 

당연히 '가시나무' 곁은 가기가 싫다.

왜 이런 차이가 있는가?
그것은

자신의 일에 대하여 소명의식이 있는 가 없는가 차이다.

소명의식은

자신의 일에 대한 사랑에 따라 나온다.

비록

기름 짜는 일이고

포도주 만드일이고

열매 맺는 정도의 형편 없는 일인것 처럼 보이지만

거기에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다.

다른 어떤 것에 비교할 수 없는 .. .

 

 의미다.

 

그 의미는

가시 나무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의미는

자신에게 집중이 되어서는 절대로 알 수가 없다.

내 기분

내 이익

내 생각

내 자존심................

아무리 집중을 해도

거기에는 행복이 있을 수가 없다.

날로 갈수록 커질 수 밖에 없는 공허감과 불안감

따라서 생기는 불행 밖에는 있을 수 없다.

그 불행은

자신의 모습을 왜곡시켜서

가시나무 같이

보기싫은 자화상을 가질 수 밖에 없고

그 자화상은

현실에 그대로 투영되어

남을 찌를 수 밖에 없다.

 그 상태에서는

설령 왕이 된다고 행복할 까?

남을 찌를 뿐이다.

남에게 화를 입힐 뿐이다.

자신은 왜곡되고 더욱 더 고립될 뿐이다.

 

그렇다면

위의 세 나무는 무엇이 다른가?

그들은 왜 행복한가?
그들의 일은 왜 그들로 하여금 그리 소명의식을 가지게 하는가?

그들이 어찌하여 '내가 어찌'라는 말로

그 대단한 왕 자리의 유혹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바라봄이 원이다.

남을 위하는 마음이 그 기본이다.

거기에서는

세상 어디에 비교할 바 없는

행복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참으로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야

주하인

이 부족한 자는

삶의 행복이 무엇인가 서서히 깨달아 가기 시작한다.

 

 아버지 학교

전인치유

교회의 찬양 봉사

오랜 큐티.

..........

시간을 많은 부분 빼앗아 간다.

크게 돈생기는 일은 아니다.

이익이나 명예를 주는 일도 아니다.

그러나,

난 어떤 밀림에 의하여

여기까지 왔다.

 

잘한다고 자랑하는 일은 결코 아니다.

단,

주님을 묵상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하나님과 동행할 찬스가 커짐에 따라

반 타의의 그 일이

점차로

가시나무가 기름을 짜듯

포도나무가 포도주를 만들듯

감람나무가 아름다운 실과를 만들 듯한

그런 소명의식 같은 느낌이 든다는 이야기다.

 서서히

내 마음에는 행복의 그릇이 커진다.

환경의 조임에도 불구하고

평강의 비율이 차지하는 하루의 시간이 길어진다.

슬프지 않지만

눈물이 흐르는 기회가 늘어났다.

 그래서,

오늘 묵상을 보면서

그들의 고백이

한편으로 고개가 끄덕여지게 되었다.

 

 정말 중요한 것을

주님은 도장을 찍어주시는 것 만 같아 기쁘다.

 

 

적용

1. 내 일을 사랑한다.

 낮은 것이 부끄러운 것 같은 생각이 내 평생을 눌러오는 열등감이었다.

하지만,

낮은 것이 중요한 것이고

오히려 기뻐할 것이었음인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머리속의 장난이 아니고

가슴이 느끼기 시작한다.

 

2. 감사한다.

난 , 늘 주님의 인도하심과 안위하심 속에 있다.

이제는 잘 나가고 있다고 위로하시는 것 같다 .

 

3. 하나님을 위하여 '라는 개념을 놓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내 모든 것은 주님을 위한 것이다.

성질 부리지 않는 것.

하기 싫지만 하는 것.

아무렇지 않은 듯 얼굴을 부드럽게 하는 것.

한마디 부드러운 말 하는 것.. 모두 주님을 위한 것이다.

 

4. 남들을 위하여 오늘 할 일은 무엇인가 찾아본다

 

5. 성경 다섯 장 읽겠다.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내 일에 만족하길 원합니다

내가 하는 일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임을 깊이 기뻐하길 원합니다.

남을 위해 살 수 있도록 하소서.

내 기분

내 마음.

내 생각은

주님을 위하여 내려 놓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가시 나무 같았던

내 자아상을

이제는 많이 수정해 주셨음을 감사합니다.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이 악의 습관을

주여

풀어 주시옵소서.

주님을 의탁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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