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나와 차기 대통령께 주시는 주님의 당부 ( 삿 9:1-6 ) 본문
제 9 장 ( Chapter 9, Judges )
외로운
깊은 밤에도
내
지표는
오직 주님의 십자가 입니다.
1. 여룹바알의 아들 아비멜렉이 세겜에 가서 그 어미의 형제에게 이르러 그들과 외조부의 온 가족에게
말하여 가로되
여룹 바알
기드온.
동일한 사람인 기드온의 두 이름이 어제 부터 갑자기 교차된다.
무엇인가
주께서 알리시고자 하는
목적이 있으신가 보다.
하나님의 사람과
세상적 사람??
한 사람에 두가지가 오버랩되어 있음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아비멜렉
오늘 묵상집의 해설에 보면 '아비는 왕'이란 뜻의 서자.
기드온이
왕이 되고 싶었었던 ,
어찌 생각하면
너무나 인간적으로 당연한 마음.
그 마음 조차도
주님 앞에서 회개하고 내려 놓았었더라면....
2. 청하노니 너희는 세겜 사람들의 귀에 말하라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인이 다 너희를 다스림과 한 사람
이 너희를 다스림이 어느 것이 너희에게 나으냐 또 나는 너희의 골육지친임을 생각하라
어찌 되었던 간에
이름 값을 하는 그 서자가
인맥을 찾아가서
무엇인가를 요청한다.
3.
에게로 기울어서 말하기를 그는 우리 형제라 하고
4. 바알브릿 묘에서 은 칠십개를 내어 그에게 주매 아비멜렉이 그것으로 방탕하고 경박한 유를 사서
자기를 좇게 하고
5. 오브라에 있는 그 아비의 집으로 가서 여룹바알의 아들 곧 자기 형제 칠십인을 한 반석 위에서
죽였으되 오직 여룹바알의 말째 아들 요담은 스스로 숨었으므로 남으니라
6. 세겜 모든 사람과 밀로 모든 족속이 모여 가서 세겜에 있는 기둥 상수리나무 아래서 아비멜렉으로
왕을 삼으니라
그 인맥.
그들은 철저히 인간적 방법을 취한다.
은 칠십개를 '바알브릿'의 묘,
우상의 묘에서 꺼내어 쓴다.
경박한 '유'.
쉽게 말하면 정치깡패를 사고
형제,
비록 어미는 다르지만
정적이 될 자들을
모조리 죽인다.
한 반석 위에서...
쉽고
그럴 듯하다.
먼저 힘쓰는게 임자다.
그러나,
거기에는
하나님을 의식한다든가
하나님의 뜻
혹은
인륜이라든가
도덕,
정의 같은 개념은 하등 찾아 볼 수 없다.
그냥, 수단을 배제한 목적 만이 남아 있다.
오직
왕.
그러나, 그의 완벽한 계획도 요담이 살아 남으므로 수포로 돌아갈 위험에 빠지게 된다.
선거철이다.
19일이면 얼마 남지도 안했다.
오늘 아침
신문을 펼치니
BBK사건이 눈에 들어온다.
'이명박 무죄'
당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걸 보며
마음이 개운치는 않다.
어찌 이리 이 세상은 혼탁한고...
정의나
대의나
하나님 앞에 자유로움 등은
어디 하나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냥
대통령이 되기 위한
왕이 되기 위한 철저한 모사와 승부 만이 있을 뿐이다.
이 후보가 정당한지도 모른다.
그 분이 기드온의 살아남은 요담 아들같은 자 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보다
하나님의 뜻에
세상의 방식이 혼합되었기에 나오는 현상임은
틀림없다.
물론
기드온,
그 대단한 믿음의 용사 조차도
오직
하나님
그 분과 함께 했던
그 절절했던 감격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과거를 추억하고자 하는 욕구와
세상의 욕심과
왕에 대한 미련을 온전히 떨치지 못하여
오늘과 같은 비참한 결과를 가져옴을 보면서
평범한 수준은 넘어서지만
그를 더욱 더 뛰어넘지 못할 수 밖에 없는
이
현대의
대권도전 신앙인으로서는
어쩔 수가 없다는 답답함이 가슴을 막는다.
비단,
기드온 같은 유혹 뿐일까?
이 시절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훨씬 더 유혹이 많다.
비아냥의 수준이 순진했던 고대인들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
거기에 현대과학의 선물로 인하여
육신의 것에 촛점을 맞출 수 밖에 없는 사단의 흉계를 벗어나
영계의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준수 하려는 노력은
자칫 '이상한 인물'로 비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가져오게 하는 게 사실이다.
그러기에
이 세상을 살면서
주님을 온전히 준행한다는 것은
세상과 단절하여
수도생활을 지향하지 않고는
거의 성경의 뜻대로 따르기는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정말 중요한 것은
실수와 실패에도 불구하고
빨리 돌아오고
어서 일어서며
눈물 겹도록이라도 다시 일어서며
매일 기도하며
주님의 함께 하시는 기쁨과
그로 인한 승리를 보여야 하는 것이다.
신앙을 지키고 산다는 것은
날로 날로 느끼지만
마치 외나무 다리를 아슬아슬하게 걸어가는 것과 다름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 외다리는
앞서서 나가는 기드온 같은 대통령 후보에게는
더욱 더 위태하고
더욱 더 책임이 크게 된다.
당연하다
바람은 얼마나 거셀 것인가?
유혹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
오늘 BBK의 무죄 선고는
기독교인 후보이신 분에게는
주님의 확인 도장일 수 있다.
아직은..
이제 부터 더욱 거세질,
대통령이 되시면
더욱 더 커질
하나님 앞에서의 중심의무에 최선을 다할 부담을 의식하셔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 앞에 겸허해야 한다.
무슨 일이 있으셔도
매일 기도와
매일 말씀 묵상을 준행하셔야 할 것이다.
틈나면
신앙의 교제를 자주 하셔야 할 것이다.
개인의 영달보다는
주님 앞에서의 기쁨을 우선으로 하셔야 할 것이다.
그 길 만이
주님을 욕먹이지 않고
우리나라가 마지막 날에도 크게 쓰일 국운을 유지하게 될 것이라 생각된다.
적용
1. 나에게는 '세상적 욕심'은 없는가?
많다.
회개 한다.
2. 대통령 선거를 위하여 기도한다.
3. 쉬운 길 보다는 '주님 앞에서의 정도'를 택한다.
넓은 길보다는 좁은 길을 택한다.
그런 선택을 위한 힘을 주시길 기도한다.
4. 성경 다섯 장을 읽겠다.
5. 죽을 때까지 큐티 하겠다.
6. 정신차리고 살자
BBK와 유명 중견 BBx치킨과 헷갈리지 말자 !!
주님 앞에 겸허하지 못해서 나온 헷갈림이다.
기도
주님
오늘
인간의 흉악함을 보고 있습니다.
그 잔인함의 끝이 어디인지,
주님이 안계시면
이 땅이 지옥이 될 것같은 두려움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비단 성경의 이야기만은 아닌 줄 압니다.
고대
못 배우고
깨지 못하여
동물과 차이가 별로 없던 시대의 이야기 만은 아닌 줄압니다.
칼 휘두름 만 없지
유사한 편리성과 합리 아래
명분이나 ,
정의가 사라지고 있음은
주위에서 너무나 쉽게 보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BBK 사건이
무죄로 판별이 난 시점에서
왕권 다툼의 묵상을 보여주신 게 흥미롭습니다.
제 안에서는
그러한 편리와
장래에 대한 걱정으로
하나님의 자리에
세상의 것을 가져다 놓은 일은 없는지 들여다 봅니다.
주여
당신께서 지혜를 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결단을 허락하셔서
옛 기드온의
하나님과 물어 물어 동행하던 그 시절이
제 안과
곧 등용하실 당신의 허락되신 대통령의 운행체계가 되도록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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