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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보람

주하인 2009. 3. 20. 09:05

 

연세가 85세.

눈을 보라.

얼마나 총명하신가?

거동을 못하셔서 침대 채로 내려오셔서 누우셔서 진찰 받으시는 데

나에게 하시는 말씀.

" 키가 조금만 더 컸더라면 좋았을 텐데..'

ㅎㅎ

 

아이구 할머니

전 키가 182cm정도 된다네요...하니

그냥 눈만 반짝이신다.ㅎㅎ

.

 

 

 

 

 

 이 할머니.

내과적 질환으로

중환자 실에 누워 계시면서 난소암 검사 수치가 이상하다 해서

협진 의뢰가 오셔서 올라갔다.

 초음파 기계가 눈과 같은 산부인과 진료 상

올려다 놓은 응급실 소속의 기계가 '질 초음파'를 할 수 없는 기계이기에

다음을 기약하고 다시 내려 왔던 환자 분이시다.

 그 때 올라가서 뵈었을 당시는 눈을 촛점도 잘 못 맞추시고

치매 환자처럼 보이셨다.

그러다가 며칠 지나서 다시 협진 의뢰가 왔는 데

일반 병실로 가신다 한다.

그래서 올라가기 보다는 '이동  침대카트'에 내려 보내 달라고 했다.

산부인과 진찰대 및 질 초음파를 위해서 그랬다.

 

 허리가 그리 튼튼하지 못한 나이든 의사라서  ^^;;

거동 못하는 환자분들 오시면 벌떡 안아서 진료 침대에 옮겨 드리고 싶은 마음을

꾹 자제 하고 그냥 앉아서 기다리고 있음이 보통이다.

 레지던트 시절에는 환자 분들 번쩍번쩍 들었었다.  

실제로.ㅎㅎ

에스텍 직원의 도움을 기다리며

컴퓨터 모니터 안의 전자차트를 뒤적이다가

가만히 고개 들어 아직 이동 카트에 누워 계신 할머니를 보다가

눈이 마주쳤다.

순간, 난 깜짝 놀랐다.

 

 연세가 85세.

중환자실의 치매처럼 단정지어졌던 할머니.

마르시기가 보통 아니게 마르신 그 분이 고개만 돌리셔 나를 쳐다 보시고 계시는 데

그 눈이 쌔카맣다.

 쌔카만 흑보석이 있다면 그렇게 보일 것이다.

마치 아이의 눈같은 맑은 눈빛이 번쩍번쩍하게 느껴진다.

 카트의 손잡이 쇠가 할머니의 입술 아래를 가리고 있고

이불이 덮혀져 있어 할머니의 말간 피부와 쌍커풀,

그리고 그 안의 아이 같은 눈이 나를 말똥말똥 쳐다 보시는 것이 아닌가?

 

 전율 같은 충격이 날 사로 잡았다.

 

마치 내용물이 비어 있던 어떤 통 속에 갑자기

내용물이 꽉 들어차게 된 느낌이랄까?

말로 표현하기 힘든 어떤 영감이 날 스치고 지나가면서

난 순간적으로 사진기를 꺼내들었다.

인상 좋은 따님이 똑똑해 보이는 그 할머니와 더불어 협조를 잘하신다.

흔들리는 영상 때문에 좋은 사진은 얻질 못했지만

그래도 몇컷은 건졌다.

 

짧은 순간이지만

몇가지 생각이 날 스치고 지났다.

 

벧후 1:13-14)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아 .

사람은 역시 육신으로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 육신 만 존재하는 것 같던 얼마 전의 중환자실 할머니의 상태와 

지금의 모습이 너무도 다른 것은

그 빈것 같은 육신 안에 무언가 들어가 차게 된 것 같은 느낌 탓이다.

 그 무언가는 '영혼'이다. '라는 생각이다.

  할머니의 육신 통속에서 질병으로 잠시 피해 계시던 영혼이

육신 속으로 다시 돌아오셔서 눈이라는 통로를 통하여

나를 내다 보고 있으신 것 같은 느낌.

 바로 그게 날 놀라게 하고 있는 것이다.

보통 할머니의 눈보다 열배는 더 영롱한 눈빛으로 날 쳐다 보신다. ㅎ

 

 또 다른 생각은,

그러한 현상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는 사람들이 바로 의사라는 것.

또 하나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은

의사로서의 보람.

의사로서의 고양되는 자존감이다.

 참으로 사람을 죽이고 살림을 결정하시는 최종의 결정권자는 틀림없이

하나님이시지만 그 살리심에 도구로 사용되는 의사들.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많은 부분에서 경제적 개념이 들어옴을 인정하고

어쩔 수 없이 수입이 많이 되는 성형외과나 피부과 등으로 몰릴 수 밖에 없는게

작금의 의사들의 바램이고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의사들이 의사들로서 기뻐하는 것은

이러한 귀중한 생명과 영혼의 회복을 돕는 다는 데 있다는 것이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세상의 논리에 밀려 자칫하면 잊어 버리고 말

중요한 부분을 할머니는 눈으로 다시 한번 보여 주셨다.

 

'번쩍'  ㅎㅎ

 

 할머니.

어찌나 말씀을 정확히 대답하시고 묘사하시는 지

머리도 꽤나 좋으셨던 분이신 것 같다.

웃지도 않고 하시는 말씀이 날 뒤집어 지게 했다.

' 키만 조금 더 크면 좋을 텐데.ㅎㅎ'

 

재미있고 유쾌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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