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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받을 조건 ( 렘33:1-13 ) 본문

구약 QT

응답받을 조건 ( 렘33:1-13 )

주하인 2010. 4. 22. 12:32

제 33 장 ( Chapter 33, Jeremiah )

 

때가 되니

봄은 와

개나리는 만개하고

까치는 저리 부르짖는다

 

저들은

봄이 오길

그리 울부짖지 않고

꽃이 피워지길

그리 간구하지 않았다  

 

때가 되니

주님은

온 산하에

당신의 흔적을 드러내 보이신다

 

동토에 갇힌

씨앗인양

갇혀 있는 포로인양

삶이 속이고

환경이 속여도

주님을 믿고 기다리면

내게도

크고 놀라운 봄기운으로

내 영혼의 새싹을 크게 피우실

주님의 어루만지심이 임하시리라

 

주님

어서 오소서

주님

곧 오소서

 

 

 


1.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혔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다시 임하니라 가라사대 
  예레미야님이 '갇혀 있을 때' 주님의 말씀이 임하셨다.

그가 갇혀 있을 때 나타나신 것이시다.

무엇 때문에 무엇에 갇혀 있던가?

난 어떤 상태인가?

내가 갇혀 있음은 알던가?

갇혀 있음이 무엇에 던가?

상처던가?

죄던가?

내가 갇혀 있음을 깨달았을 처음 부터 주님이 임하셨던가?

 

 예레미야님은 '민족'을 위하여 '주님의 말씀'을 전하던,

즉 주님과 타인을 위한 삶을 살던 중 갇혔다.

그리고는 주님의 말씀이 강렬히 임했다.

 나.

누굴위해 갇혔던가?

 이제 '타인'을 위한 삶을 살기 위해 몸부림 치는 과정 중의

아직도 과거에 묶여 있는 ,

나 자신의 욕심에 묶여 있는 듯하다.


  
 
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주님은 부르짖으라 하신다.

그러면 응답하신다 하신다.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내게 보이실 것이라 하신다.

 

내가 응답받지 못하던 이유는 무엇이던가?

.일단은 내가 갇혀 있던 자 임을 크게 인식하지 못함이다.

.갇혀 있음이 타인을 위한 이타의 삶으로의 전환을 위한 갇힘임을 인식하지 못하여 왔음이다.

.크게 부르짖지 못함이다.

.크게 부르짖지 못함은 '원함'이 뚜렷지 않음이다.

 원함은 자신 만을 위한 원함이 아니어야 하고

 이타적 원함이고 주님의 소명의식이 있는 원함이어야 한다.

. 크고 비밀한 일을 말씀하셔도 알아듣고 기뻐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감당하지 못하는 일을 아무리 말씀하셔도

 그게 어찌 응답이 되겠는가?

 역시 성장이 된 후다.

 성장이라 함은 자신 안에서 벗어나 진정한 이타 주의,

 자신의 성취감이 아닌 하나님 말씀을 이 땅에 이루고자 하는 이타주의가 되어야 한다.

. 더욱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아니 믿음을 가지고 기다릴 수 있음이다.

 갇혀 있는 나에게 '미래'에 대하여 아무리 예언하고 말씀하셔도

 그게 현실감이 있게 느껴질 수 있는가?

 어린 아이들에게 아무리 미래에 사줄 것을 이야기 해도

 현실의 장난감 못가짐이 슬픈 것이나 마찬가지다.

 

  성장해야 한다.

 믿음 안에서 커야 한다.

 그래야 크고 비밀한 일을 응답 받을 수 있고

응답 받아도 기쁨으로 인내할 수 있게 된다.

 그동안 , 나에게 주어지지 않은 주님의 크신 응답은

내 어린 믿음, 내 어린 인격 탓이었다.

 

 
6.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강과 성실함에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할렐루야'

미래에 이 성을 치료하며, 낫게 하고 , 성실에 풍성함까지 더해주신다 하신다.

치료해주신다.

내 부족함을 치료해주시고

내 아픔을 치료해주신다 하신다.

고쳐서 낫게 하시고

평강, 그토록 원하는 샬롬을 풍성히 주신다 하신다.

부족한 성실함도 채워주신다 하신다.

 

 미래다.

믿고 기다려야 한다

크고 비밀한 응답을

이처럼 확실히 받아도

이것을 기뻐할 수 있음은

내 '성장'이다.

내 '기다릴 수 있는 인내의 능력'이다.

내 '주님의 역사하시는 궁극적 승리를 확신하는 긍정적 믿음의 소유'이다.

 

 이게 내가 응답 받을 조건이다.

 

사순절이 지난 이후

갑작스레이 옛날 버릇이 나오려 한다.

솔직히 그럴 때 '말씀'을 적용하면 은혜가 넘치면서

마음이 안정이 되고 한동안 차분해지던 것이

그 은혜의 시간이 줄어들고 마음이 불안정해지는 기분이다.

괜한 짜증이 올라오고

괜한 부대낌이 든다.

말씀 앞에 서도 깊은 은혜를 체험한게 오래된듯 메마른 느낌이 날 사로 잡으려 한다.

겁이 난다.

아..이러다가 옛날로 돌아가면 어쩌나?

머리는 멍해지는 것 같다.

갑자기 환우들도 떨어지고

안하던 '불안'의 습관이 슬그머니 내 뇌리를 스치려 한다.

안정적이던 신앙 습관이 무너지려 하고 있다.

아침이 자꾸 늦어진다.

기도원 행하던 발길이 뜸해진지 오래다.

사진은 잘 안찍히고

'시'라고는 써 본 것이 아주 오래다.

묵상의 글들은 '영감' 이 부족해진지 오래다.

마치 습관처럼 되뇌이고 되뇌이는 것이

말장난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죄송스러운 마음이 날 사로 잡으려 한다.

과거의 글을 돌아보았다.

정말 주님께서 '영감'을 놀랍게 베풀어 주시던 시절.

감동이다.

내가 읽어도 이때는 정말 풍성했다.

 .......

사방팔방으로 내 '눈치를 살피는 레이더 망'에 여러가지 조건들이

'내가 너무 부족하다'

그래서 '난 혼나는 중일 수 있다'는 쪽으로 결론 지어져 가려 하고 있다.

흔들린다.

 사막에 홀로 떨어져 있는 것 같은 외로움.

 

 어제는 수요예배 날.

수영 시간이 늦어 기도원으로 가서 예배 드리려다

비도 오고 게을러 져서 가고 싶지를 않다.

버스를 타고 질벅질벅 내리는 비를 뚫고 집으로 향했다.

마침  메시지 왔다.

오늘 낮에 목사 취임하시는 '아버지 학교 스텝 형제'의 취임식에 가잖다.

낮에...

못간다고 답을 쓰다가 부리나케 내 집 앞 정류장에서 내렸다.

내리는 비를 피하려 건물 안에 들어가 마져 문자 쓰기를 마치고 보내고 나니

수영 가방을 실은 버스는 가버린 후였다.

겨우겨우 집에 들어가니 허탈하다.

이유없이 이렇게도 멍하다.

안하던 .........휴..........

주님의 은혜가 떨어지며 혼나는 중 같다.

 

 집에 가서도 망설망설였다.

이럴 때 하나님 앞으로 가면 더 은혜인데...

몸이 피곤을 부르짖는다.

마음은 갈등을 호소한다.

헷갈리는 비오는 밤, 얼른 자버리면 될 것 같다.

배도 봉긋이 불리고 극세사 이불 속에들어가 자면 세상 편할 것을..

예전부터 '비오는 소리' 들으며 눈을 감고 있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가?

 겨우 겨우 힘을 내서 닦고 나와 거실을 몇번 어슬렁 거리다가

침대머리에 걸터 앉았다.

눈을 감으니 기도가 된다.

생각이 정리가 된다.

마음은 말씀앞에서 고리가 꿰지듯이 하나로 정리가 된다.

성경 읽었다.

 아내와 아들과 몇마디 대화 후

가까운 갈멜 산으로 향했다.

너무 좋다.

성전에 들어가 이전에 MP3 에 녹음해 놓았던 찬양들을 틀어

가장 앞에 가 앉았다.

찬양을 따라 기도했다.

내 목소리.

내가 부르는 찬양.

수도 없이 되풀이 들었지만 그 때마다 기분은 내 잘난 맛이었다.

주님 이름을 부르지만,

아 .. 저때 저리 부르는 게 아닌데

아...그래도 제법이다. 

아... 은혜롭네?

혼자 잘난체 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어제는 좀 다른 느낌이었다.

내 찬양을 통해 그때에 잠시나마 하나님과 하나로 동화되어 불렀을

그 은혜의 감각으로 날 인도하시는 것 같다.

내내 내 찬양의 '가사'에 맞추어 기도하듯 아뢰었다.

'어느날 다가온 주님의 이름을...♪' 하면 그렇게 기도했고

'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   하며 내 두팔은 쭉~ 하고 올려져

나도 모르게 손가락 하나씩 펴지며 바로 내 앞에 계신 십자가를 향하게 되고.....

한참을 난 '은혜 '가운데 기도했다.

마음이 참 좋다.

고향에 온 것 같다.

깨달았다.

'주님은 날 메마르도록 허락하시는 것일 수도 있겠구나'

' 주님이 은혜로 이끌어 가시던 어린 영혼에서

 이제는 조금은 내 의지로 말씀을 선택하고

 은혜 떨어진 상태에서도 흔들리는 마음을 정리하고

 '한마음'과 한 길을 선택하려 결심하고

 그리하여 승리하는 성품을 기르려 하시는 구나' ... 하는 것을..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전혀 내 찬양 가지고는

스스로 은혜를 받는다는 것이나

주님께 기도드리는 행위는 불가할 것이라는

내 선입견을 깨고

무엇을 통하여서도 주님은 역사하실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오늘 묵상에 '갇혀 있는 자' 가 나온다.

갇혀 있는 자...그렇다.

주님을 진짜로 멀리 떨어져 있다면 내 죄로 인하여 갇힌 자가 맞겠지만

어떠함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인식한다면 '괜한 갇힌 자'다.

예레미야님처럼...

그 괜한 갇힌 자에게는 '하나님'이 임하신다.

나.

이전처럼 흔들리고 있지만

이전과 다른 갇힘이다.

나.

하나님 안에서 타인을 위한 이타적인 삶을 살기 위한

고비에서 갇힌 자다.

아직 저 분 예레미야님 처럼 올곧은 이타주의의 삶은 아니지만

내 정체가 '나' 중심에서 '주님과 타인'을 위한 중심으로 비뀌어 가는 중의

갇힌 자다.

그러기에 난 곧 주님이 임하실 조건이 된다.

즉, 난 버려지는 자가 아니고 

'성장을 위하여 갇힌 자' 라는 것이시다.

 그 성장을 하는 자는 '주님이 곧 임하실 것이고'

그 임하심을 위해서

더욱 크게 부르짖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시다.

 그렇다면 요즈음의 내 상태는

'혼란'이 아니고 '기뻐해야 할' 고난이다.

그렇다 .

막연히 깨달았던 것을 이렇게 살아계신 주님은 말씀으로 인도하신다.

크고 비밀한 사실.

그것을 말씀하시기에

그동안 난 인내하고 기다리기에 부족한 자였고

그런 나는 스스로 시험에 들을 위험이 다분하였던 어린 영혼이었으니

주님이 크고 비밀한 응답을 허락지 않으신 것 맞다.

이제 지금은 '경계'에 서 있다.

더 클 자와 주저 앉을 자.

더 크기 위해서는 주님 말씀을 더 믿고 더 인내하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은혜가 떨어져도

메말라도 가만히 주님을 인내하고 기다리는 것,

그리고 내 후반에는 늘 말씀에서 강조하시는 것 처럼

더 크고 비밀한 응답이 기다리고 있을 것을 기뻐 하는 것이 그것이다.

 치료가 급속히 일어날 것이고

평강과 풍성함이 나와 내 식구들과 내 주위에 일어날 것임을

기뻐 믿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적용

 

1. 오늘 '모임'이 있다.

 그리 즐기지 않는 모임.

 그럼에도 나를 위하여 거쳐가야 할 모임.

성장을 위해 인내하고 낮출 수 있을 훈련 장소.

아직은 '갇힌 내'가 느끼는 연단의 장소.

거기에 가겠다.

기도했다.

이루어 주시리라.

 

2. 부르짖어라.

 기도한다.

 부르짖는 기도하겠다.

내 원함을 뚜렷이 하고 부르짖는 다.

이웃을 위한 삶.

주님을 전하는 것이 최종의 목표인 , 수단 적인 삶

그러기 위해 날 온전히 낮출 수 있는 삶.

 내 자식들의 온전한 신앙적, 현실적 바탕이 될 수 있는 삶

 

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 외우겠다.

  100번 읊겠다.

 

4. 감사하는 하루가 된다.

  성질 부리지 않겠다.  ^^;;

 주님이 나보고 '너는, 내게, 내가 , 네게 , 네가 , 네게 ' 하신다.

 내 친밀하신, 나의 하나님이시다.

 그 '나의' 하나님이 이제 때가 되어'나 보고 ' 응답하신단다.

크고 비밀한...

감사하다.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고

내 하나님이신게 감사하고

고생한게 헛되지 않아 감사하고

치료와 평강의 약속..

모든게 감사하다.

 

 

5. 성경 여덟장 읽겠다.

 

6.  내 원함은 겸손이다.

 내 원함은 주님 뜻을 전파함이고

 내 원함은 타인을 위하여 나를 낮춤이다.

 

 

기도

 주님.

요사이 좀 흔들립니다.

그래서 더 흔들렸습니다

열심히 잘 나가던 게 헛것이 아닌가 하는

사단의 속삭임에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또 말씀 중에 발휘되는 제 의지를 훈련시키시려는

주님의 의도이셨음을 깨달았고

과정 중에 주님의 약속을 이해하게 되어서 감사하고

내 조금씩이나마 전진해나가는 스스로의 모습을 확인 받아서 감사하고

기다리면 결국 있을 내 크고 비밀한 상급에 대하여도 감사하고

너무나도 감사할 일 뿐임이 감사합니다.

주님.

귀하신 주님.

이제 부르짖겠습니다.

내 원함을 뚜렷이 하게 하소서.

좀더 겸손하게 도우시고

인도하소서.

주님의 오늘 약속하신 말씀이 이루어짐을 보기 원합니다.

치료하소서.

깨끗게 하소서.

그 마져 인도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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