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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와 지혜 ( 왕상 1:11-27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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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와 지혜 ( 왕상 1:11-27 )

주하인 2010. 9. 2. 11:54

제 1 장 ( Chapter 1, 1 Kings )

 

 

진정한 지혜는

어떤 상황에도

우리 예수님께

영혼의 모든주파수를 고정하고

청명하고 흔들리지 않으며

고요하고 부드러운

겸손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 왕상 1:11-27 )
11.  나단이 솔로몬의 모친 밧세바에게 고하여 가로되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왕이 됨을 듣지 

      못하였나이까 우리 주 다윗은 알지 못하시나이다  
16.  밧세바가 몸을 굽혀 왕께 절하니 왕이 이르되 어찜이냐  
21.  그렇지 아니하면 내 주 왕께서 그 열조와 함께 잘 때에 나와 내 아들 솔로몬은 죄인이 되리이다 
22.  밧세바가 왕과 말씀할 때에 선지자 나단이 들어온지라 
  나단이 '계책'을 꾸민다.

선지자가 계책이라...

어울리지 않지만 그의 현실적 감각은

주님의 허락하에서 이루어짐을 우리는 안다.

솔로몬이 등극하기 위해서

나단이 세상적 지혜와 모사를 행하도록

주님이 허락하셨다.

그의 계책은 '어둡고 냄새나고 칙칙하지 않다'

정명하고 밝다.

순차적이고 지혜롭다.

 

 밧세바가 움직인다.

나단의 소리를 듣고

나단이 시키는 대로 한마디도 빠지지 않고 다윗에게 고했다.

거기에 20절과 21절의 말이 첨가해졌다.

하등 어두움이나 초조함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비장함이다.

그의 움직임은 조신하다.

다윗에게 허리 굽혀 절했다.

그의 그러한 행동은 모성에 의한 탓이지만

결국은 솔로몬이 왕이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나단의 증언과 더불어 솔로몬이 왕이 되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솔로몬

그는 자신이 왕이 되는 데 아직은 역할을 하지 않았지만

고요함 가운데 있었을 것이 틀림없다.

결국 그는 '지혜의 왕'이 된다.

우주를 움직여 역사의 위대한 왕이 되도록 흐르는

에너지의 방향이 '솔로몬'을 향하고 있다.

솔로몬은 '하나님 앞에서 잠잠하고 '있다.

 

다윗

다윗은 너무 늙어서 천하 미인 동녀가 수종을 들어도

건드리지 조차 못한다.

그는 육신 속에 갇혀 있으면서

거의 하루 대부분을 나른함 속에 거하고 있을 것이다.

많이 피곤하였을 것이다.

그 나른함 속에서 그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아마도 '하나님'과의 고요한 임재 속에서

하늘나라 갈 때까지 영적 고요를 즐기고 있지는 않았을까?

젊을 적 수없는 고난과 역경을 딛고

그 가운데서 파동이 느껴지는 그 하나님의 에너지를 느껴가며

그 인생을 이끌어오는 강력한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하며 홀로 읊조리는 찬양이나 드리며

조용한 말년의 하루를 즐기고 있지는 않을까?

모든 것을 가져보고

우주의 모든 에너지의 중심과 동행하는 영광을 체험하고

모든 아픔을 겪어 보던

그의 영혼은 아마도 '청명한 하늘'과 같은

'無慾'의 한가로움을 즐기고 있지는 않았을까?

 그러다가,

그의 고요를 흔드는 다급한 일이

그와 수넴여인 만 거하던 그 조용한 침실에

갑자기 벌어지게 되었다.

 

나.

이런 상황이 오면 '가슴이 벌렁거리려 한다.'

이게 묵상의 포인트였다.

가만히 그들 네분의 등장 인물 - 수넴여인의 시선은 빼고.. ^^;- 의 입장 속으로 들어가 보다가

다급한 그 환경 속에서

그 자리에는 없지만 주인공의 역할이 되고 있는 솔로몬을 포함한

네 분이 엮이는 박진감 넘치는 역사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리고 그들 마음 속을 하나씩 묵상하다가

노년의 그 고요 속의 '다윗'의 영혼에는

만일 저러한 가슴 흔들거리는 불안의 상황에 어떻게 반응이 던져졌을까 묵상해보니

역시 '다윗'은 흔들림이 없었다.

부럽다.

 

 다윗의 그 영혼을 흔들기에

이 소란은 그리 문제가 될 여지가 없었다.

아도니야가 아버지의 뜻, 하나님의 뜻을 배반하고

나라를 찬탈하려는 모사에도

다윗은 수없는 그의 경험과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차분히 준비된 대답을 내 놓게 될 것이다.

 이 지혜.

네분의 공통점이 무엇이던가 고민하면서

잠시 묵상을 해보니

그들 속에 유형은 다르지만

상황보다 훨씬 차분했다.

그러면서 할 수 있는 처신은 가장 합리적으로 진행되었다.

선지자 나단이 어머니 찾아가고

역시 그 어머니는 지혜롭게 다윗에게 고하고

나단이 프로그램된 것 처럼 나타나서 다윗에게 정확히 피드백하고

다윗은 정신이 가물거릴 그 노구 임에도

확실한 대책을 마련하여 주었을 거고

솔로몬은 하나님의 계획대로 차질없이 왕이 됨을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들은 내가 생각하는 그 불안한 상황보다

훨씬 지혜롭게 대처해나간다.

지혜로운 사람들...

 이전의 나 같으면 안절부절 못하고 이것저것 생각하고

이곳저곳 헤매며 몇가지 문제점을 만들어 놓고는

결국은 진화에는 성공을 했을 것이지만

누구도 득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이 이처럼 차분한 지혜를 통하여 차분히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어떠한 이유든가?

그들에게는 어떠한 공통점이 있던가?

그것은 지혜롭기에 가능했다.

지혜는 그렇다면 어떤 지혜인가?

세상의 술수, 그 더러운 권모와 냄새나는 술수와는 어찌 다르던가?

 답이 하나님이다.

'하나님과의 동행'하려는 노력이다.

나단은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서 모시는 분이다.

그런 그 분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중 받았을 지혜가 아니라고는 못하지 않겠는가?

 밧세바.

비록 남편을 배반할 수 밖에 없었던 여인이지만

솔로몬이라는 비상한 천재를 나을 유전인자의 여인이고

예수님 계보에 흔적을 남긴 여인이 아니던가?

 솔로몬.

지혜를 간구하던 왕.

다윗.

늘 하나님을 집중하는 분.

 그들의 지혜는 '하나님'으로 인한 지혜다.

그렇다.

지혜는 더러운 일회성 모사가 아니다.

올바른 지혜는 하나님으로 부터 나온다.

느린 것 같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해결을 하시는 주님과 교통하는 데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능력이다.

사모하는 자,

그러면서 기다리는 자.

주님을 기뻐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능력이다.

 

 나.

참으로 미련한 자였다.

지금도 불같고 조삼모사

콩 볶고 팥죽 끓는 심성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다.

어떤 일이 생기면 특급으로 해결해 놓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그러한 자였다.

그것은 지혜와는 거리가 먼 미련한 자 임이 맞다.

 이제는 지혜에 대하여 조금은 짐작을 한다.

가만히 내려 놓고 기다릴 줄 안다.

지금...

그러고 있다.

내 속에 끓어 오르려 하고 있는 휴화산 용암같은

죄악 덩어리 들이 있다.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못할

큰 어려움 속에 있다.

일주일 정도 되었다.

그럼에도 난 가만히 있다.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일상의 일을 하면서 '판단'을 내려놓고 있을 뿐이다.

내 가슴을 때리면서 밀고 나오는 '화'의 정체를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다.

내 머리를 치고서 쏜살같이 다가오는 '걱정'을 받아

순간 십자가 밑에 내려 놓는 연습을 하고 있다.

판단의 욕구가 밀려올 때도 그렇다.

사단의 손가락질이 느껴지려 할 때도

그 마져 말씀과 기도로 이겨나가고 있을 뿐이다.

 참으로 말씀 묵상, 이 큐티가 아니면

난 여러번 넘어져도 넘어졌을 것이고

흔들려도 백번은 더 흔들렸을 상황이다.

 아무 생각도 안하고 있다.

주님이 판단하시고

주님이 인도하시고

주님이 가라앉혀 주시길 기도하고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때가 되어 나단 같이 '현실적 지혜'를 허락하실 것이고

때가 되어 상황이 변하면 '다윗' 같은 명철한 판단력으로 사세를 바로잡을 것이다.

그것은 나를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것은 내 주위를 위해서이기도 한다.

어이없는 일.

그 어이없는 아도니야의 반역 같은 일이

정말 세상의 모든 욕심을 내려 놓길 원하는 내 주위에서 벌어져 버렸다.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이 뒤집혀 버릴 듯한...........................

 그러나 감사하다.

감사한 것은

상황이 그럼에도 주님을 붙들고 있는 내가 되어감이 감사한 것이다.

그 엄청난 하나님의 도우심이 감사하다.

성경의 인물들이 행하는 그 행태를

내가 조금이나마 흉내내게 됨이 감사하다.

 

 나에게 무엇이 중요하단  말인가?

다윗도 그 엄청난 왕국과 위명과 수없이 많은 여자들이 곁에 있어도

하나도 쓸모없는 상태가 되어 버리지 않았던가?

그에게 중요한 것은

그에게 남아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과의 고요한 대화의 여명' 뿐 아니던가?

 내가 애쓸일이 무엇이던가?

솔로몬도 어리고 상황에 손쓸 여지하나 없었지만

그는 지혜 하나로 하나님께서 손들어 왕 만들어 주신 것 아니던가?

지혜가 중요하다.

사람의 지혜?

그게 어디 있는가?

가장 지혜로운 자들 모인 곳에서 '인생의 의미'를 적어내랐더니

30%에서 '알게 되면 가르쳐 달라'는 쪽지를 받았다는

글도 있지 않던가?

하나님 만이 진실이 맞는 것을 ..

하나님과의 동행 만이 진실이던 것을..

흔들리는 세상의 유혹들이 아무리 그래도

그들이 내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고작 10여년.

그 후는 나도 다윗같은 육신의 껍질 속에 하나 둘 침잠해 갈 것을..

오직 내 노년 삶의 의미는 '하나님' 이외의 것은 하나도 될 것이 없을 것을..

이제 .

하나하나 내려놓자.

무엇이 의미이고 무엇이 문제인가?

기다리며 주님의 지혜를 기다리자.

 

 

적용

1. 지혜를 구하자.

 하나님의 주시는 지혜.

 공명하고 정대한 지혜.

 흔들리지 않는 기쁜 지혜.

 

2. 내려놓자.

 붙드는 정욕, 애정........조차도 맑게 정리하고 내려 놓자.

 돈............내려 놓자.

 아직은 어렵지만 그래도 기다린다.

 주님이 그리하여 주시길..

 

3. 성경 세장 읽겠다.

 말씀 만이 살길이다.

 

4. 걱정, 근심.

 주님 앞에 내려 놓는다.

 

5. 세상 일.

 맑은 느낌으로 주어진 지혜는 과감히 행한다.

 

6. 지금은 정리의 시간.

 내 인생 후반 이후의 태도를 결정하는 시간이다.

 흔들리지 말자.

  오래 걸려도.......................

 

 

 

 

기도

귀하신 주님.

귀한 분들 네분 보고 있습니다.

그들 속에 각기 분량은 다르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지혜를 통해 하나로 작품을 엮어가는 모습을 봅니다.

주님.

그들을 닮게 하소서.

저로 .. 지혜를 허락하소서.

어제 .. 많이 흔들릴 뻔 했지만 그럼에도 기도로 예배로 해결되게 해주신 주님,

참으로 감사합니다.

고요한 나날이되고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주님.

어제 그 세찬 바람 소리 한번 듣지 못한

깊은 꿀잠을 허락하시고

아침 일찍 주님 만나게 해주신 그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주님.

제 인생 나머지 시간을

어떻게 설계해 나가야 할지 저로 지혜를 주소서.

깨달음 주소서.

다른 이들 아프지 않게 하고

주님의 원리 가운데서

잘 내 영혼 지켜나갈 수 있도록 하소서.

예수님.

아침.

잠시 흔들렸습니다.

고요하고 있지만

주님.. 절 호시탐탐 흔들려는 사단의 궤계에 잠시 그랬습니다.

용서하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일일히 반응하지 않게 하소서.

참새의 떠도는 것 처럼 제비의 날아가는 것 처럼

그리 느끼고 반응하게 하소서.

그게 지혜로 제 영혼의 한 부분을 강하게 차지하게 하소서.

제 아들..

모두 지켜 주시고

제 가정 지키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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