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우리가 짐작을 포기해야할 이유[삿9:22-45] 본문
22 아비멜렉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삼 년에
이 악한 아비멜렉이
삼년 동안이나 이스라엘을 다스리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을 것이다 .
생각키는 '죄'로 승한 자
온통 유혹적이고 도발적이 말초 자극에
많은 재미를 누렸을 것이다 .
그의 생각으로는 '태평성대'...
그의 원수들에게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 하면서 땅을 쳤을.. .
그 삼년 동안이나 말이다.
23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내시매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였으니
그러나, 삼년이 지나서야
'악한 영'을 보내시는 하나님을 우린 보고 있다.
악한 영조차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야
굳이 욥이나 여기의 표현을 들지 않더라도 당연하지만,
왜 하나님은 그들을 그렇게나 오래 인내하셨을까?
바쁘셨을까?
그게 그들에게 더 나았을까?
그들이 그렇게나 죄가 많았지만 기회를 주시려 했을까?
그게 우주적으로 어떤 걸린 다른 '나비효과'가 있었을까?
Butterfly Effect?
하나님의 세상에 대한 최소한의 간섭이 원칙이시라서?
주님나라의 하루가 이곳의 천년과 같아서 시간을 놓치셨을까?
...
어떤 것이든 '다 내가 짐작' 가능한 추론이지만
그거 개미가 사람의 일, 컴퓨터를 짐작하지 못하는 이유와
너무나 당연하게도 동일한 이유가 아닐까?
어찌 내가 다 알수 있을까?
'불가지론 자 (不可知論子)'는 아닐지라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으면 조금더 믿음이 편했을텐데..
지난 주일 ,
목사님 설교 중에 빌 목사님과 동행하시며 큰 설교자로 행하시는
모 목사님 (죄송 , 이름을 못외우는게 제 가장 큰 단점 중 하나랍니다. ^^;;;)께서
아주 대단하셨는데 단 한장의 사진으로
하나님이 안계신다는 책을 써내고 실족하셨다는데
거기에는 아프리카 여인이 아기의 죽은 시체를 앉고 앉아
하늘을 보며 울며 절규하는 장면이었다 한다.
나.
막상 이렇게 다 아는 것 처럼 행동하지만
내게 저런 불쾌한 일이 벌어지거나
극도의 절망에 빠졌을 때
그렇지 않을 수 있을까?
솔직히 고백한다.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인도하심에 의하여
내 인생이 이렇듯 상전벽해의 변화를 보였음에도
너무도 빠른 의학기술의 발전으로
사람들의 의식의 변화로 인하여
더 큰 병원,
인터넷에서 이것이 옳다... 하면 모조리 그리로 몰리는
최신의 기술로 인하여
내 의술적 능력의 정점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우'들이 내 기대나 바램과 달리 줄거나
점차 산부인과 의사들(아니다. 모든 전문 가의 일마져 AI, 인공지능이 빼앗을 것이다 )의
할 일이 줄어든다는 현실적 암울함을 생각하면
이 적은 고난에 난.. 흔~들 한다
불가지론의 그 큰 죄악은 아니어도
마음 속에 '불안'이 싹트고 안절 부절 못하려 함은
거기에 주님을 깊~이 인식하고 의지하는 '믿음'의 문제는 아닐런가?
그래도 난 '말씀'을 보고
묵상을 하려고 몸부림 치는 자다.
그래서 인지 성경 말씀의 ' 약할 때 강함'임을 인정할
또 다른 기회가 내게 주어진 것임을
서서히 깨달아 가고 있다 .
위의 고백처럼 '위기 의식'이 있으며
하나님이 보내신 것이라 생각할 또 다른 기회가 주어져있는 것 같다.
이거..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내 생각, 내 자아의 강력한 바램일 것에 의하여
쓸데없이 쓸려 내려갈 내 죄악일까
기도하며 기다리고 준비하고는 있지만
이렇듯 깨어있지 못할 때에는
그 약함이 얼마나 큰 고통이 될 지 모르겟다 .
말씀 중에
'삼년이 지나서 부리시는 악한 영'으로
아비멜렉 등을 정죄하시는 것을 본다.
이제야 시원하다.
그 엉터리 같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정의'를 ??
우리의 바램대로 보이시는 것 같아 시원하다. ^^;;;
내 이런 반어법 적 표현은
나에대한 스스로의 경계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시간과 하나님의 뜻이 있으시다. '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 분이 우리에게 행하실 것은 반드시 '선'이시라는 것이다 '
지금 흔들리고 속상하고 이해가 가지 않아도
이해할 생각을 포기하라.
그게 하나님이 내게 하시는 오늘 말씀의 레마이신 듯하다.
정말 , 내게 자식을 잃게 하는 것 같은
받아 들이기 힘든 일이 벌어진다 해도
난.. 그리 받아 들일 수 있어야 함은
내 영적 성장이 이루어져야 함이다.
하나님은 무조건 선이시고
그때와 그 시기는 하나님 만이 아실 것이고
그 시기가 비록
이땅에서 이루어지지 않아도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의 '영원' 까지 미치기에
비록 우리의 살아 있는 눈으로 보아 알 수는 없을 지라도
하나님 나라에서라도 이루어질 수 있음을
우리는 깊은 이해로 받아 들여질 만큼
영혼이 '성숙'해져야 한다.
어찌 이 땅에서만 국한 되어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이라 생각할까?
그 생각의 근저, base야 말로
하나님을 이땅의 축복의 도구로 여기는
잡신앙, 무당 신앙과 무엇이 다른가?
내 , 오늘 하루의 레마를 붙들면서
삶에 적용 시킬 것이 있다 .
흔들릴 일에 '감사'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냥 구호가 아니다.
기도 중에 더 자연스레이 나와야 하고
하나님이 내 구원자 이심 만을 가지고
성령이 은혜를 주시는 것 만 가지고
내게는 이 땅에서 받을 모든 것 보다 귀한 것임의 고백이
더욱 더 커져야 한다.
하나님 , 예수님, 성령님..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지금 뜨거워지는 이 순간 처럼,
그런 감동이 매시간 물결치는 그런 내가 되어야 한다 .
그리고 모든 것,
다 감사함으로 받으신
주기철 목사님 .. 들과 같은 그런 신앙이 되어야
위의 메시지에 합당한 온전한 신앙의 틀이 될 것임을
오늘은 특히 가슴 깊이 인정하고 받아 들여야 할 것이다.
주님.
말씀이 너무 어렵고 단순한 교훈 같아서
레마로 받기가 힘들었습니다.
거기에 아닐 것을 앎에도 순간순간 나를 잡아서는
부족한 믿음 탓에
불안과 속상함이 올 때 라서
더욱 그랬습니다.
주여.
말씀을 통하여
모든 짐작할 것들,
불안이나 부정의 모든 생각들,
현실을 통하여 미래를 추정하려는 모든 어리석은 대뇌 작용들을
주님을 믿음 앞에 내려 놓아야 겠습니다 .
에벤 에셀 하나님,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돌아보아 추정하면
여호와 이레, 장래에도 인도하실 하나님을
어찌 맞다 않겠나이까?
제가 추정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러함에도 그런 거짓된 추정으로 넘어질 뻔 한게
제 인생을 살아오며 얼마나 많은 경험을 했나이까?
그러함에도 아직도 미래를 그런식으로 예측하려는
하나님은 무조건 선이심,
무조건 살아계신 하나님의 뜻이심을 믿지 못하는
저를
아비멜렉의 말초적 누림의 삼년을 묵상케 하심으로
깨달음을 주십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주님의 그 세심하심,
가장 정확하신 지적,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이유로
내 부족함을 들여다 보니
다른 더 선한 길의 기회,
즉 더 강함의 원리를 주심의 뜻이심을
이제는 알았습니다.
주여.
말씀을 통한 성령의 깨닫게 하심이 우선이었습니다.
그 후에 주님이 주시는 평안과 평강이 따라오네요.
늘 그러하시듯이
제게 부족한 부분을 깨우시고 일구시며
이렇듯 인도하십니다.
감사하신 살아계신 내 주님이시여
하나님 홀로 영광 받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감사하고 기뻐하는 믿음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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