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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돈 십일조와 순종의 옷감(출29:1-9)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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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돈 십일조와 순종의 옷감(출29:1-9)

주하인 2009. 5. 29. 11:08

제 25 장 ( Chapter 25, Exodus )

 

아침 개천변을 걸어오다 찍은 사진

 

정말 보이지도 않을 들풀의 꽃이지만

뒤에 비치는 다른 풀의 배경하에

한들거리는 모습이

유혹적입니다.

실처럼 가는 저들의 몸으로

이루어가는 자연의 생기가

놀랍습니다.

 

주님은

부족한 저의

순종의 실을 가지고

오늘도 어떤 문양을 이루실지

심히 기대가 됩니다.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주님이 모세께 말씀하신다.

모세에게 말씀하시지만

나에게 말씀하신다.

나는 모세와 같은 자격은 없지만

모세와 같이 될지도 모를 자이고

모세와 같이 되어야 할 자이기에 그렇다.

 그것은 큐티를 묵상하고 말씀을 기뻐하는 모든 자들에게

그리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

세상의 모든 피조물의 아버지시자

모든 주님을 기뻐하려는 소수자 개인의 '나의 아버지'이신

그 하나님이

나 , 모세될 나에게 말씀하신다.

 그 모세 자신에게 말씀하시지만

세상의 리더로서 남을 이끌어가야 할 자이다.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주님은 나에게 가장 최선의 길을 말씀하시며

그 최선의 길을 남에게도 지도하시길 바라신다.


 

 

3.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예물은 이러하니 금과 은과 놋과  
 부담스럽다.

돈을 내라는 것도 그러시고

강력히 말씀하시는 어조가 반발 잘하는 내 본성을 자극하셔서도 그렇고

이런 십일조에 대한 말씀은 신앙생활이 초기에 있는 자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라는

다소 건방진 생각도 날 부담스럽게 사로잡으려 한다.

 

 

 실은 어제가 월급 날이다.

오래전부터 해온 이야기지만

산부인과 남자 의사로서 중년의 나이에

낙태를 하지 않고서 버티기 힘든

(실은 그것을 한다해도  산부인과 의사의 형편은 정말로...최악이다.)

우리나라 현 의료체계에서

나는 정말 전적인 하나님의 도우심 아래

현 직장을 주셔서

믿음생활에 충실할 수 있고

십일조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신 하나님이

너무도 감사하다.

 아내가 주일날 낼 헌금 봉투에 십일조를 제법 도톰하게 - 기도대로 다 이루어 졌다.  거의 액수까지... 주여...십일조는 당연히도 무조건 채워 드렸다. ^^* - 채워넣고나서

아들에게, 나에게, 월급처럼 봉투에 넣어서 용돈을 챙겨 준다.

바보같이도 - 그렇지만 난 행복하다.  정말이다. - 그 두툼한 월급에서 용돈 밖에 받지 못하며

모든 것을 다 아내에게 빼앗기는 ^^;; 생활을 결혼 20몇 년을 해왔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그래서 그 용돈 중 만원을 확 빼내어 아들에게 한번 더 건넸다.

입이 찢어진다.

어.. 그러다가 갑자기 아들에게 용돈을 주다가

퍼뜩  '십일조' 에 생각이 미쳤다.

월급은 드렸지만 용돈은..?

아이에게 십일조를 주문했다.

 반발이 생긴다.

아이는 항변한다.

'명절 날 생기는 돈도 한번도 빼지 않고 십일조 뜯겼는데.ㅎㅎ.. 또..냐?'

그런가 싶기도 하고

나도 용돈에서 한번도 십일조를 뗀적이 없어서

아내의 지긋한 만류로 모른체 하기로 했다.

 

 어제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찬양을 인도했었다.

병원 및 교회에서 하던 찬양인도를 최근에 손을 놓고 - 사정이 있다.  의도적은 아니었다 - 오랫만에 하는

인도라서인지 늘 찬양인도할 때 마다 부대끼던 부대낌이

어제는 유난히 강하게 왔다.

 그래도 하던 가락(?) 이 있어서 잘 인도하고 나왔지만

마음이 자유롭지 못했다.

하루종일 그렇다.

거기에는 그런 생각이 없지 않아 있었나 보다.

' 주님께 드리는 헌신이 게을러 지니...'

그런데 그게 내 열심인지 주님의 부담이신지 그걸 모르겠다.

날씨는 무척이나 덥다.

마음이 하루종일 무겁다.

 그리고는 십일조에 대한 생각.

크게 감동은 받지 못하며 무거운 마음으로 잠을 자고 일어났다

 

 아침에 묵상집을 펴드니 다가오는

더 무거움.

겨우겨우 아침 묵상기도를  마치고

눈에 들어오는 단어는

 모세 자신에 대한 주님의 십일조에 대한 주문과

다른 이들에게 강하게 권하길 말씀하심이다.

어제 아들에게 강하게 권하지 못하였던 부담이

또 밀려 오려 한다.

 

 

 

4.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털과 
  거기에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가슴에 걸려드는 '실'이라는 구절.

 청색, 자색, 홍색 실로...  


  
8.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주님의 성소를 짓는 도구로 삼는다...신다.

 

 실로 엮어 천을 짠다.

이 실과 저 실로 가로와 세로로 엮고

꼬고 연결하여 천을 이룬다.

  무엇하나 헛되이 버릴 것이 없다.

아닐 것 같은 손짓하나 하나의 엮음이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낸다.

거기에 '실'로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나중에 단지 '천'으로서 거듭날 수 있다는 사실과

다른 색깔의 '실'끼리 엮이고 묶일 운명이라는 사실 밖에 ..

그 과정에서 끊기면 천은 이루어 내기 힘들 것이다. .. 라는 막연한 생각.

 

 

 요새 요령이 생겨 시간에 쫓기면

MP3에 목소리로 묵상 구절을 녹음시켜 놓고 걸어가며 듣는다.

집중하기 쉽지는 않지만 그랬다.

 조금 일찍 나와 개천가로 걸어 내려 갔다.

 어제의 여파와 묵상구절의 답답함이 어우러져

몸에 힘이 없고 뻐근하려한다.

  그러나 , 걸어가면서 달라진다.

하늘은 청명하고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하다.

사진을 찍기 위해 혈안(^^;;)되어 있는 내 눈에는

곳곳이 아름답다.

  도로변에 올라서 버스를 타고 출근했다.

좌석에 앉으니 들어오지 않던 묵상녹음 구절이 귀에 들어온다.

'청색. 자색...실... '

 

그래.

다른 때는 몰라도 오늘 만큼은 용돈 십일조를 더 해보자.

 이상하게도 큰돈은 아깝지 않았는데 이까짓 몇푼이 뭐 아까울꼬..

그런 생각이 들며 순종하기로 선택하자 행복감이 밀려온다.

 

 

9.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출근해서 블로그를 들여다 보았다.

아..

오랫만에 뵙던 분도

가까이 뵙던 분도

좋은 글을 많이 남겨 놓으셨다.

어제보다 훨씬 시원하다.

 환자를 본다.

간호사가 들어와서

며칠전 초음파 보면서 내가 그 분에게

'대변이 가득찼다.  내과를 보라'라고 권했었는데

바로 그 분이 금방 순종해서 내과에 진찰을 받고는

암 전단계의 커다란 대장용종(폴립)을 발견했다고

감사의 인사하려 왔다갔다는 말을 전한다.

순종은 모두에게 복이다.

 올만에 들르신 님의 방에서 들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찬양이 가슴을 친다.

그래서 긁어왔다.

  기분이 좋다.  

 어제의 목을 조이듯 답답하던 마음이 하나도 없다.

아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지도하듯

주님이 십일조를 순종하라 하셨다는 메시지를 아들에게 보냈다.

묵묵답답이지만 아이에게 순종의 기회를 주는 맘으로 기다린다.

 잠시 시간이 나서 진료실  의자를 뒤로 돌리고 창밖을 내다 보았다.

날이 참으로 맑은 가운데 병원 정원의 분수대가 시원히 보인다.

늘 그렇듯 '묵상기도'를 잠깐 하였다.

'오늘 문을 열고 들어오는 환우 분들을 예수님으로 보기로 선택합니다.

주여 난 안되는 성품인것 아시지요?'

 마음이 날아갈 듯하다.

 

 

아.

깨달았다.

 

 난 주님의 이 기쁨을 잠깐 잊었었다.

그래서 갈등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주님의 기쁨으로 하루를 엮어야 하는 것이다.

주님의 기쁨은 말씀을 순종하려는 적극적 선택하에서 시작이 된다.

주님의 기쁨은 모든 갈등을 다 녹이신다.

 내 일상에 놓여진 모든 일이 다 하나로 엮여지는 천으로 나온다.

나의 움직임 생각 하나하나가 다 '실'이다.

그 실을 어떻게 엮어가느냐는 주님의 기쁨을 선택하는가에 달렸다.

주님의 기쁨으로 엮어지는 천은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 아름다울 수 밖에 없다.

 주님이 보이시려는 것은 순종할 때 보인다.

난, 그냥 내가 가진 각양의 실 - 그것이 달란트든, 위치든, 실수든... 무엇이든 간에  모두 실이다 ,   실이 천을 위해 쓰이기 위해서는 주님의 말씀대로 살려는 선택이 실행되는 순간에 결정된다. - 을

주님이 이루시도록 맡기는 것이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 용돈 십일조를 떼겠나이다.

생각도 못하고 있다가 거부감이 들려던 것을

결심하고 나니 주님이 기뻐하심이 느껴집니다.

큰 곳에서 주님의 뜻을 이루기도 하지만

적은 곳에서도 동일한 주님의 기뻐하심을 느끼니 좋습니다.

어찌 기분이 좋은지요.

주님은 주님의 식양대로 따르는 자식을 좋아하시는

기쁜 아버지 이심을 오늘도 깨닫습니다.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전 제 실을 맡깁니다 .

주님이 문양을 넣으시고 천을 짜소서.

믿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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