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고난은 주님의 사랑의 신호시다[욥7:1-21] 본문

구약 QT

고난은 주님의 사랑의 신호시다[욥7:1-21]

주하인 2023. 11. 10. 06:57

(펌)

몸서리 쳐질듯 힘들다

 

그러나 귀하다

 

그래서 감사하다

 

아주 아주 많이 ...

 


3 이와 같이 내가 여러 달째 고통을 받으니 고달픈 밤이 내게 작정되었구나
 이제 '욥'님의 하소연은 

자기로 향한다. 

 

 그 고난의 강도는 

지금 내게 주어진다면 

과연 나도 '감사가 나오고' 

인내.. 가 나올까?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편히 나오는 소리가 될까?


12 내가 바다니이까 바다 괴물이니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나를 지키시나이까
 어쩌면 이런 하소연 보다 훨씬 더 큰 몸부림이 나오지는 않을까.. 두렵다. 

 

 하지만.. 

욥님은 욥님으로서 맞는 과정을 허락하심이고

또 그때는 그때에 맞는 감해주시는 '은혜'가 있지 않을까?

 

 이 자신을 향하여 

이리 질타하는 듯한 괴로움의 외침을 보며

안타깝기도 죄송하기도 하다. 

'내가 바다니이까 바다괴물... 어찌하여 나를 지키시나이까?'

 

 그런데 이제 드디어 

'타인'의 소리에 반항하듯 외치던 소리에서 

자신에게 향하더니

'하나님'께 대하여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분명코 원망은 아니다 .

하소연이다. 

 

여기에 답이 있지 않을까

'열심히 신앙생활'과 삶 중에서 명령대로 순종하고 순행하지만

그게 모두 인듯 사는 것..

이 인생의 모두가 겪는 오류가 아닐까?

 

 하나님이 소외되는 

'하나님 백성'들의 

'하나님 피조물'들의 

'하나님의 종'들의

'하나님 자녀'들이 

정체성에 어긋나는 어이없는 행동.. 

 

마치... 요즈음 '펫'이 아들이나 딸, 형제자매로 대우 받아

사랑인지 

필요인지

매달림인지 알지 못하는

그래서 웬만한 사람보다 대우 받고 사는 현상들.

뭐.. 자신들의 선택이고 좋은대로 하는 거야 무슨 죄랴 싶지만

씁슬한 마음이 드는 것을 어찌할 수 없이 

전후 좌우 상하가 뒤죽 박죽 되어 버리는 듯한.. 느낌.

 

 뭐 펫과 우리

주인과 하나님 만을 비교하는게 맞지는 않지만

하여튼 우리의 입장을 자칫하면 잃기 쉽고

마치 우리가 세상의 주인인양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우리의 물질적, 시간적 바침으로 족하다는 생각... 

어쩌면 욥의 삶의 태도를 최대한 확장시키면

냉랭한 열심만 보이는 신앙인,

회칠한 무덤받은 유대인, 사두개인.. 같은 모습이 아닐까?

 

 

 욥님의 신세한탄 같던 주절 거림 중에 

하나님의 그러하심에 대한 답이 있지 않는가
드디어 하나님을 향하더니

그의 입에서 답이 나온다. 

어찌하여 나를 지키시나이까


18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순간마다 단련하시나이까
권징, 단련... 
'아침마다' 하시는 권징, 

'순간마다' 하시는 단련은

아침마다 순간마다 나를 지키시는 하나님이시고

아침마다 순간마다 하나님을 놓치지 않는 우리가 되길 바라시며

지금은 고통과 고난으로 하나님께 하소연하듯 외치지만

그 안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성령의 임재로 인한 

진정한 사랑을 체험함으로 

'교통'하시기를 원하시는 거다. 

 

인생.

이 광야를 통하여 

하나님은 더 가까이 하셔서

그 분과 '교통'하는 자 

코람데오하는 삶

내가 주님 안에

주님께서 내안에 사는 

그런 삶을 원하심이시다. 

 

 필립얀시님 책을 다시 읽고 있다고 했다. 

'주님 내가 고통 당할 때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라는 책.

새롭다 .

 

그런 그 분 .. 께서 요즈음 뜸하셔서 

검색을 해보았더니

' 파킨슨' ..

'김ㄷㅎ' 목사님이란 귀하신 분도 '암'투병..

......욥..님..

'예수님'.. 

고난은 대단하신 분들에게도 예외는 아닌 모양이다. 

 

그들에게 어떤 원하심이있으셔서

그토록힘듦을 허락하셨는 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 

분명코 더 가까이 하시길 바라심이 맞으시다. 

 

 아.. 

오늘 욥님의 부르짖음이 

이젠 자신을 향하더니

하나님 쪽으로 얼굴을 향하신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심한 고난이 내게 주어진다면...이라는 전제,

거기에 하나님을 놓치지 않으려 했던

목사님들의 고난.. 

예수님의 고난을 통해서 

다시한번 더 생각하게 되는 것.. 

그리고 이전의 지나온 고난들..과정 속에

정말 뜨겁게 임재하시어

둥둥 뜨는 것같이

어찌 지내온지 모르는 것 처럼 거쳐나오게 하신 것.. 

그리고 훨 강해진 '감사'의 마음.. 

주님 안에서 '행복'함.. 

... 

초연의 느낌을 알게 된것들... 을 통하여 깨달아지는 게 있다. 

 

하나님은 

나와 처음부터 끝까지 동행하시며

이 삶을 걸어가길 분명코 원하심이시다. 

내가 주안에

주께서 내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면서 

같이 겉길 원하심이다. 

 

그리고는 

결국 '이땅'에 고착되어 있는

우리네 모든 관심의 대상이 

눈을 들어 '영원'까지 펼쳐지고

그게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으면 하시는 거 같다는 이야기다. 

 

 '필립얀시'님.. ㄱㄷㅎ 목사님.. 

그리고 어제 갑자기 신문에서 보게된

내 영적 발달 과정에 정확히도 한 획을 그어주신

박상ㅇ 원장님의 부고를 듣고는 

다시한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

 

모든 '판단'은 이땅에 고착되어서는 될 수 없다 .

모든 고난을 허락하심의 이유는

하나님 안.. 에 이유가 있으며

이땅에서 원인 결과를 찾으려면 절대로 할 수 없을 뿐더러

이땅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모든 선한 숙명의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거다 .

 

이땅은 광야.. 시험대다. 

그리고 그 이후 영원까지 주님과 함께 살아가야할 자로

이땅은 연습시간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연습.

과정에서 불필요한 거 빼나가는 연습.

영생을 기쁘게 함께 살아가야할 시민으로 가져야 할 태도 연습.. 말이다. 

 

그러기에 

어찌하여 나를 지키시나이까는 절규가 아니고

"어찌하여 감사하고 몸둘바 모르게도 

나를 붙들어 주시고 관심을 가지시나이까.. 

이 부족한자 몸불바를 모르겠습니다... "가 되어야 할것이다 

 

 

주님

감사하나이다. 

오늘도 역시 너무도 큰 고난 가운데

어찌 편안히 앉아... 라는 감정적 괴리를 마주하며

말씀을 묵상합니다. 

 

 

하지만.. 

저 고난이 '사랑'이심... 

고난을 통하여 주님 과 더 가깝게 됨..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안에 계심을 놓치지 않게 하시는 

절대의 연단과정,

그 절정에 있으심을 깨달아 알며

결국 이 삶은 '시험'과정이지

목표나 결과가 아님을 다시한번 깨닫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저희에게 바라시는 시선은

'이땅의 시험을 넘어서

저 천국까지 펼쳐지는

확장되어진 시선을 유지'하기 바라심 인듯합니다. 

저.. 주님.

부족하여 

또 잊겠지만

오늘 하루도 허락되어진 삶속에서

덜 고생하고도

주님 하나되신 하루 보내길 원합니다. 

주여..

제 안의 더럽고 추악한 것들... 

욥님의 수준에 달하도록

어서 어서 더 제하여 주소서.

그래서 '고난'이 죄가 이유가 아니게 하소서

주여.

감사하오며 거룩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아멘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