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화는 그 어떤 순간에도 정당할 수 없다[욥32:1-22] 본문
.
1 욥이 자신을 의인으로 여기므로 그 세 사람이 말을 그치니
'의인'의 길.
성화의 과정
'하나님 앞에 가는 인생길'은 '좁은 길'이다.
그 외에 누가 알 수 있을까?
하나님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자가 어디 있을까?
절대로 인간의 눈으로 알 수 없는 길이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의인'은 절대로 누구도 알수 없는 일이다.
'욥'조차 모르지만
욥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하나님과 그 만이 알 수 있는 '의인'의 느낌이 공유될 뿐이다
누가 있어 그를 이해할까?
세상에 '의'로움을 확인 받고
그의 의로운 길에 허락되어지는 모든 어려움들,
그 절절한 고통과 외로움을 이해해달라고 할까?
오늘은 전혀 의외의 인물이 나타나
그렇잖아도 괴로운 좁은 길이지만
이제는 끝날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로 한숨내쉬려 할 그때
또 다시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인물이 나타나
가슴에 대못을 박으려 하고 있다 .
2 람 종족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가 화를 내니 그가 욥에게 화를 냄은 욥이 하나님보다 자기가 의롭다 함이요
3 또 세 친구에게 화를 냄은 그들이 능히 대답하지 못하면서도 욥을 정죄함이라
4 엘리후는 그들의 나이가 자기보다 여러 해 위이므로 욥에게 말하기를 참고 있다가
5 세 사람의 입에 대답이 없음을 보고 화를 내니라
8 그러나 사람의 속에는 영이 있고 전능자의 숨결이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시나니
그리고 그 '인물'은 초대받지 않은 자다.
친구도 아니다.
그러면서 그는 '화'를 대뜸 낸다.
그의 '화'가 '하나님의 이름'을 들이대며 이루어지는
일종의 '급습'이라
잠시 멍 해진다.
15 그들이 놀라서 다시 대답하지 못하니 할 말이 없음이었더라
'그들이 놀라서 '... '대답하지 못'하고 '할 말이 없'어졌다 한다 .
멍한 거다 .
멍한 이유는
그 당시 그 사회의 관습에 어긋나는 일이었던 일이
막상 갑작스레이 벌어짐이 그렇고
그 것조차 '화'로서 다가오니 '멍'해져서도 그러하며
무엇보다
그 논리의 너무도 옳고 명확한 시작에 일시적으로 할 말이 없어짐이다.
단, 논리의 정확함이 그렇다는 거다.
논리는 논리다.
이땅의 논리로
어찌 하나님의 원리를 다 꿰뚫을까?
비록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지만...
18 내 속에는 말이 가득하니 내 영이 나를 압박함이니라
21 나는 결코 사람의 낯을 보지 아니하며 사람에게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리니
오늘 보이시는 관점은
'화'에 대한 거다.
그리고 그 ' 공분, 의분,정의'를 가장한 '화'의 위험성에 대하여 말이다.
심지어 거기에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기 시작하며
자신의 논리를 강요하기 시작하며
타인에게 함부로 징죄하는 위험성을 말씀하심이다.
사람들이 입을 막는 것은
놀람이 우선이다.
그는 친구들이 이야기하는데 끼어들만한 자격이 있는 자가 아닌듯하다 .
그런 그가 '당시'의 시대상황에 맞지 않은 자리에 끼어듦이다.
거기에 '욥'은 절대의 고통에서 허덕이는데
그런 그에게 '위로' 보다는
'자신 만의 철저한 논리와 의로움'으로
대뜸 끼어드는 거다.
더구나 '그 화'의 명분과 상황이 어쩌면 절묘하다.
모든 사람이 논리가 막힐때
짱하고 슈퍼맨 처럼..
모든 것 심판하는 심판자같은 모습으로
단죄하는 분위기로 나타나는 것..
어느 누가 멍하지 않을까?
거기에 '욥'님의 흔들림은 어떨까 싶다.
무엇보다 '의로움'에 대한 확신마져 흔들리면
분명코 깊은 좌절이 있을 만한 당연한 상황에서
'정말 '그게 맞나 싶은
강력한 '혼돈'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하여튼 객관적으로 바라본
바로 이 상황에서 '엘리후'의 존재,
타이밍과 그 논리는
'인간세상의 논리 그 정점'.........의 위상을 접할 수 밖에 없고
'세상의 권세잡은 자(난.. 이 표현이 3차원 세상, 이 물질계에 최고정점의 권위와 능력을 하나님께 허락받은 '사단'을 표현하는 가장 정확한 성경의 표현이라 생각되어져 자주 사용한다. ㅜ.ㅜ;)'의
마지막 타격 논리라 생각되어진다.
어찌 '인간'이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사단' 을 통하여 시험하시는
마지막 시험단계..
궁극의 의인,
완전성화를 위한 마지막 과정임을
이 '먼지보다 작은 행성'의 한점 미물 보다 못한 인간이
이해?... 아니다.. 짐작조차 할 수 있을까?
정말 필요한 것은
'잠잠함'이다.
'하나님의 임재를 통한 깨달음'과
그로 인한 '평강'과 '고요'다.
보라.
엘리후는 ' 그 속에 말이 가득하니 자신의 영이 압박' 당하여서 라고
18절에 분명코 쓰고 있다 .
성령이 아니다 .
하나님의 이름을 들추고 있어서 그렇지
그냥 '영'의 압박에 눌려서 '생각'이 많아지고 (마치 위 사진처럼.. ㅠ.ㅠ.. 그게 화많은 자들의 진실이다. .. 내 .. 과거의.. 얼마전까지의 실제였다... 생각이 너무 많은거... 그게 사단의 소리들, noise,괴전파.......아니라고 어찌 장담하는가? 하나님의 말씀만 들어야 한다 .. 내 생각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으로 정결화 되어야 한다. . .그게 주님이 진정 우리와 원하시는 교통 아니던가?.. 평강, 고요,차분, 정결화.........)함부로 타인에게 손가락질하며
마음대로 '의로운 분노'라 자칭하며
'화'를 쏟아내는 거다.
그렇다 .
'화'에 대하여 묵상하게 하신다 .
특히 '입'을 다물어야 한다 신다.
내가 옳다 생각하는 거.. 멈추어야 한다.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조용하고 고요한 가운데 허락하신 '의'로움이 아닌
많은 생각의 급한 분노를 가져오는 '거짓 의'는
절대로 자제 해야 한다.
분노학기 전
먼저 '타인의 입장'을 역지 사지 해야한다.
분노보다. '긍휼'이 우선이다.
무슨 일이 있고
무슨 생각이 들어도
그들 앞에서 '입'을 열지 말아야 한다.
먼저 '사랑과 긍휼'이 바탕이 되지 않고는
절대로 타인을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가르치려는 격동을 멈추어야 하낟 .
그게..............
오늘 '분'을 막고 '노'를 그치며
화를 발하지 않는 기본이다.
입을 여는 '엘리후'가 아니어야 한다.
끝까지 듣는 '엘리후'여야 한다.
그러한 '나' ..
끝까지 듣는 '주하인'이 되어야 한다.
주님.
오늘은 '화'에 대한 말씀입니다 .
그 어느 것도
화를 동반하는 것은
절대로 '지혜'에 달할 수 없는 것이며
절대로 '의'롭지 못한
미련한 것이 '화'인줄 압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결정하신것
어찌 인생으로 다 알수 잇을까요?
어찌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말씀하시는 거 아니고는 함부로 판단할 수 있을까요?
그냥..
특별히 오늘은
무조건 입을 닫게 하소서.
내 주님이시여.
화는 '미련함'이고
화는 타인을 불태울 뿐 아니라
나 자신을 '사단'에 맡기는 미련한 지름길 임을 알게 하소서.
그 어떠한 상황에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참게 하소서.
주여.
엘리후의 어리석음을 봅니다.
절대로
주님 실망시키지 않도록
오늘도 또 도우소서.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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