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새로운 들을 줄 아는 법[요8:42-59] 본문
43.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이제는
'주님 말씀을 깨달아'
삶에 더 깊이 적용하고
적용을 넘어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내 영혼에 깊이 각인되어
삶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녹아 나와 버리는
그런 자 되기를 원한다.
이 말을 하는 이유...
앎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적용에 실패하는 경우가 너무 많음이다.
아... 이제는 이전보다는 조금은 다르게
내 잘못행동하는 ,판단하는 시간에
말씀이 떠오르기는 한다.
자주..
그러나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주춤하다 말고
내 안의 강력한 반대 드라이브에 밀려
속절없이 지고 말고는
후회와 좌절하는 경우가 많다.
아.. 그러함은 일견
이전에는 인식 조차 못하고 지나가던 것에 비하면
조금 더 발전했다지만
알면서도 하지 않는 것은 '죄'임을 아는 자로서
마음에 부담이 크다는 이야기다.
그 말씀을 하고 싶으신거 같다.
내게...
그렇다면
그 오랜 시간동안
내 이런 오류들을 너무도 많이 알고 계시면서도
인내하고 참아주시던
그 자비하고 세심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어찌하면 제대로 옳게 반응하고 변화되어야 하던가?
아...
나
나 스스로 나를 알지만
홀로 변화되지 못하는 강력한 그런 오류,
어이없는 고집
과거의 편견과 습관화된 죄된 습성들이
참 강하고 진득한 자다.
그러기에 얼른 돌이키고 '회개'는 하려 하지만
그러기보다는 '좌절'이 또 많이 나를 사로잡고
그러함이 늦게 영접한 예수님의 구원으로 부터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지나면서
생물학적 나이가 많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유지되는 그런 미련한 죄,
진득한 미련함에 대하여
좌절하고 있던 참이다.
하나님 아시고 ...
이 주일 아침에
"깨닫지 못함은
말씀을 듣지만
말씀을 제대로 들을 줄 모름" 임이 아니던가...?" 라 하심 처럼 들린다 .
역시
아침 마다 들여다보는 말씀 구절은
묵상,큐티를 시작한 근 이십년이 지났음에도
때로 아주 강하게 이끄시던
하나님의 강권적 성령충만의 시간을 빼고는
매일 매일이 힘들다.
그게 솔직한 심정이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지
무슨 뜻인지 알지 모르고
또 똑같은 구절들이 되풀이 되면서
다 아는 것 같아
매일 말씀을 나누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기에는
내 미련함과 드는 나이, 초조함에 비례하는 죄책감들로
힘이 든다는 이야기다.
그런 가운데
깨달음과
'들을 줄 아는 방법'에 대하여 말씀하심이
새롭게 느껴진다.
45.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날.. 다아시는 하나님께서
당연하시지만
나의 믿음을 터치하고 계심이시다.
그렇다.
말씀을 주시면서
그것을 오늘 어찌 적용할지.................
그런것은 매일매일 뚜렷지 않을때가 많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붙드는
내 작은 움직임 만 가지고도
오늘 하루 또 인도하실 것임을
믿고
오늘 또 하루를 눈뜨고 살아간다.
아. .
그것이
내 이전의 머리,
내 말씀이신 하나님을 체험하기 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의미를 찾기 어려운
이 하루하루의 허무함을 극복하고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는 것 아니겠던가?
주여.
말씀을 들을 줄 아는 방법에 대하여 말씀을 하십니다.
그 말씀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밝혀깨닫지는 못하지만
막연히 나마 알 것 같습니다.
그래도 주신 말씀,
깨달아 질것 같은 느낌이 있사오니
오늘 하루 의미로 붙들고 있겠습니다.
주여.
이전과 다른
한번도 살아보지 않은
이 노년의 나이를 살아갈 때
하루 하루
말씀이 아니고는
어찌 나아갈지 방향조차 갈피 잡기 힘듭니다
말씀을 들을 줄 아는 방법도 달리 하라심 같습니다 .
붙들고 있으려 하오니
깨달음으로 오늘 하루를 밝히실 줄 믿습니다.
이전에 ..........
한번도 와보지 못했던 인생길 동안
매일 말씀으로 인도하셔서
결국 여기까지
믿는 자,
말씀을 묵상하는 자
이전에 전혀 거부하던
'불신의 급박 초조 덩어리 죄하인'이
나름 '말씀을 붙들고 매일을 살려는 주하인'으로
탈바꿈 하게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이제 이후의 삶...
하나님의 매일 말씀을 들을 줄 알아
새로운 깨달음으로
진정한 믿는 자의 모습으로 탈바꿈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옳은 믿음,
옳은 방향.......
기대합니다.
말씀이 있으셔서 그렇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거룩하신 구원의 이름들어 기도하나이다.
아멘
57.유대인들이 이르되 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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