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요나단의 屍身[삼상31:1-11] 본문

구약 QT

요나단의 屍身[삼상31:1-11]

주하인 2016. 6. 21. 10:13

 


 
2.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그의 아들들을 추격하여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니라

6.사울과 그의 세 아들과 무기를 든 자와 그의 모든 사람이 다 그 날에 함께 죽었더라
 

 요나단.

만년 이인자.

다윗에 가려져 그럭저럭 성경에 이름을 올리다가

결국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그리고 그 가정도

아버지도 죽고 자신도 죽는 패가망신...

 자신도 광야에 쫓겨가다가 사망을 당하는...


과연 이게

다윗을 향하여 그처럼 큰 사랑과

중심잡힌 믿음에 기원한

통큰 인격,

아버지의 병적 횡포에도 흔들리지 않는 균형잡힌 지혜.

전쟁에도 빼지 않고

아랫사람에 대하여 치우친 대접을 했다는 기록도 없는....

한마디로

영웅의 풍모를 지닌 그 요나단이 받아야할

마지막 모습인가?.

어디하나 그의 행동에서 잘못된 일이 성경에 기록되었던가?

그런데 그런 그가

왜 이런 비참한 죽음을 맞아야 하는가?


마치..

열심히 하나님을 믿으며 살았지만

하나님이 안계신 것처럼

자신이 스스로 알지도 못하는 죄로 인하여

주님께 버림을 받은 것 처럼 생각될...

그래서 지금 옳다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여 경주하고 있는 인생의 방향이 잘못된 것 아닌가?

혹시 이 인생이 꿈같은 것 아닌가?....

더더구나 요즈음 인간의 영역을 마구 침범해오는

현대과학으로 인하여

어디까지가

인간의 위엄성이고

어디까를 인간의 할수 잇는 일이고 아니고....

생명이란 무엇인가(복제견이 오래전 부터

공항 검색견 내지 군견으로 많이 쓰이고 있음을 아는가?)..에 대하여

혼란이 올때

그래도 하나님은 나에게

승리이심을 믿기에

그래도 겨우겨우 힘을 내 다시 일어나 여기까지 온 것 아니던가?


그런데...

그 훌륭한 신앙인이자 인격자인 요나단의 마지막이 저러하다면

나같은 너무 부족한 자의 결국은....승리가 아니지 않을수 있는가?


여기서

승리란 ,

하나님이 내게 ,아니 온 인생에 허락하신

"선"이란 무엇이고 어디까지 인가....가 본질적 의문이 아닐런가?

그게 요나단을 통하여

본질을 바라보게 하려 하시려는 하나님의 레마가 아니실런가?



 난..

말씀 묵상을 하면서 10년이 넘는 시간을

정말 영적 지진아처럼 느리게지만

조금씩 깨달아오기 시작하고 있다.

물론, 내 지금의 내게 그런 상황, 절박한 상황이 주어지면

다시 옛날처럼 무너지고 아버지 하나님...살아계세요...?....하고

울부짖을 개연성이 있지만....^^;;;


그런데 조금씩 확신해가는 것은

하나님이

나....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려 애쓰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면서까지 사랑하신

나를 위해서 절대로

내눈에 보이고

내 머리에 제한된 생각으로

제한 받으지 않으실 것이란 확신이다.

즉,

이 인생의 끝까지 만을

선의 기준,

승리의 기준으로 삼지는 않으실 것이란 이야기다.

그렇지 않다면

모든 사람들의  생이

예수님 믿기만하면

마치 유아들의 동화책 같은 권선징악으로 모두 마무리되는

한갓 유치한 스토리로만 모든 믿는 자의 인생이 마무리 될 것 아니던가?


  아님은 . .

누구나 다 안다.

기복의 리더 들조차도. ..


 그러기에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은

 "나님의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영원과 영생까지

  시야를 넓이는 것이."라는 것이다.


요나단.

과연 그 인생이 내가 제시하고

누구라도 막연하게나마 인식하는 것처럼

단지 이인자,

다윗의 일대기를 장식할 단지 엑스트라,

하나님의 유일한 관심인 다윗에서 소모되고 말 소모품.....이런 게

그에게 합당할 것이 아니란 이야기다.


누구나 다...인생이 있다.

그에게 물어보면

책으로 써도 수도없이 많은 책이 나올 스토리들을 가지고 있다.


나...

내 인생에 쓰디쓴 시간들과

눈에 보이는 성공한 다른 자들과의 비교하여 그냥 말단 과장.....

가족들....

나를 둘러싼 어쩌면 있을 그런 옳지 않은 비평들....

....................

어느 하나도 요나단에 비교하여

(그래도 요나단은 왕자였었다...^^;) 나은게 하나도 없지만

난....

지금...

나름...

평강안에....거한다.

너..잘 사느냐...물으면

서슴없이 "그렇다"라고 하고 싶다.

물론 날...아주 잘아는 사람들은 "꺄우뚱"하고 비웃을지 모르지만...ㅜ.ㅜ;;


왜 냐고...?

난..내 표현력과 내 모든 육신의 한계로

내 표면에 나타나는 모든 현상들에도 불구하고

난.. 하루의 많은 부분들을

담담하고

물 흐르는 듯 흐르고

내밀한 기쁨을 느낀다.

조건이 있어야 느낄 것이라 생각하는 세상의 기준에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을

그런 현상들이..

난..말씀을 통한 성령의 인도하심 임을 안다.

나..

내 마지막이 어쩌면 독거 노인일 수도 있다.

누가 아는가?


하지만 난...그래도 절대로 불해아다고 느끼지 않을 것이다.

난..

나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이유로

이전 수십년을 불행하고 불안하다고 알..시간들이

지금은 이렇듯 고요하고 행복한 ㅅ샬롬의 ㅅ시간들로 이끌어지고 있고

그것은

그때 그토록 갈구하던 시간들이다.


나..

정말이다.

다른 어떤 것을 포기하더ㅗ라도

주님.... 평평안하게 해주세요.....

그래서 난...십수년간...샬롬을 그렇게 외쳤다.

그리고 이제진정한 샬롬이 무엇인지 그 정체를 눈치채고 있다.

천국의 기본심성이 샬롬임을 알고 있고

영생이 무엇일지 깨달아가는자가 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

이것이면 족한 것 아니고

이제 기도제목들이 서서히 형태를 드러내는데

과연 내가 승리가 아니고

하나님이 내게서 선이 아닐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비록 요나단이 산속에 버려진 시체로 누어질 운명이라도

승리와 선의 삶,

가장 귀한 자로 살아오고 영생을 살 자가 맞는다.

난...

오늘 말씀을 보면서 강하게 그런 느낌이  들어왔다.


생을 그림자로 살아왔어도

그는 하나님과

내밀한 교류와 그로 인한 그와 하나님 만이 아실

샬롬의 인생을 살아왔다.

그리고 드디어...

영생의 문에 들어섰다.

비록 이 땅, 외진 산속에

지난 수십년을 빌려 입었던

그 육신을 누이고 왔어도 말이다.

그것...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온전한 육신, 결점없는 육신으로

새롭게 덧입혀 질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하나님 가까운 자리에

어쩌면 앉혀질것 아니겠는가?


어찌...

선을...

승리를...

이 좁은 육신의 틀안에서

제한된  탄소의 구조물을 가진 뇌에서 이루어지는 생각의 한게를 가지고

하나님의 선,

하나님의 승리의 약속의한계를 짐작하려 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주하인...아직 덜 성장한 주하인아...

세상아....................



주님.

귀하신 내 주님.

주님의 말씀 가운데서

안타까운 시신을 발견했습니다.


산에 누여져..

어쩌면 공중에 날던 대머리 독수리가 입 한번 댓을지도 모를

요나단의 시신 말입니다.

그 시신을 통하여

많은 갈등을 갈무리하며

스치덧 지나가던 장면들에서

오늘은 말씀을 멈추고 새로운 관점을 가지게 하십니다.

내 눈으로 보고

내 머리로 생각하고

내 가슴에서 마음대로 울렁이던 현상을 조합한

세속의 생각들이

하나님의 선이나

하나님의 존재하심에 대한

하등의 제한이 되지 못한다는 것말입니다.


주여.

오랜 시간

제게 갈등과 불안과 힘듦과 어두움을 허락하셨던

그 이유....

그리고 아직도 세상에서 뚜렷이 선이라 할만한

축복이 허락되어지지 만은 않던 이유....등이

되새겨지고

다시한번 자유를 누릴

진리에 가까운 논리를

메 영혼에 담아가게 됩니다.


주님.

제안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재하시던

은혜의 체험을 통해서 말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제게 바라시는 것이

겨우 이 땅에 제한시킬 어떠한 이유도 업음도 깨달으며

하나 더

하나님이 제게 허락하시는 것은

매사매사가 선이고 승리일 수도 있는...

온전한 행복...

온전한 선...

온전한 기쁨...

즉, 샬롬이 무엇인가 알게 하는 것이십니다.


주님.

그러기 위하여

죽어 주님 곁에 갈 때까지 성령을 놓치지 않도록 몸부림 치겠나이다.

그러기 위하여 이 곳,

이 장소

이 시간에서

제 능력으로

제가 가진 최선은

그래도 말씀 묵상을 놓치지 않고

그러함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베풀어 주시는 것을

나름 세상에 내려 놓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이곳에 와,

이 불신의 병원에서 결신을 두분이나 이루게 해주심입니다.

그래도

소리내어 기도하고 일을 시작하는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 위한 기본을

제게맞추어

제성품대로 이뤄어주시고

그런 나를 제가 하나님의 인도하심가운데

열심을 보이고 있음을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는사실입니다.


오늘 요나단의 죽음,시신을 통하여

그래도 하나님이 기뻐하심이 무엇인지

다시한번 실체를 느끼고 갑니다.

주여.

이 평화,이 자유의 본질을

모든 하나님을 사모하는 자들이

같이 누리게 하소서.


특별히 제 가정...

기억하소서.

몸부림치는 소수의 구성원들입니다.

그 현상을 좌절하지 않는 가정이 되게 하소서.

현상의 풀림도 더 풀릴 것을 기도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아멘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