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오늘 입을 내 옷[롬13:1-14] 본문

신약 QT

오늘 입을 내 옷[롬13:1-14]

주하인 2014. 5. 28. 08:24

아무리 싼옷을 입어도

품위가 있어 보이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화려한 옷을 입어도

덕은 가려지지 않으면 좋겠구요

 

그냥 물흐르듯 자유로운

그러한 나의 영혼이

내 속에서 흘러나와 보이는 것 같이

그리 자연스러웠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모두

오늘 입을 내 옷

예수님의 놀라우신 은혜 덕임을

세상 누구든 알아졌으면 합니다

 

제 삶의 움직이는

모든 반경이

예수님의 향기로

은은히 흘렀으면 좋겠습니다

 

내 주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옷입고..

난.. 이 옷입고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

옷을 이것 저것 사서 멋지게 꾸미길 좋아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비싼 옷도 없다 .

내 취향은 주로 'ZS'등의 저가 위주의 디자인과 단 칼라로

그것도 이월 상품을 주로 입긴 한다 .

싫증 나면 바꿔 입기를 좋아해서 그렇기도 하고

재정적 문제도 그렇구..ㅎ

그것보다는 젊은이들이 쓰는 '가성비' - 가격대비 성능비-에 민감해서이다.

싼 가격에 디자인 좋은 ,

그래서 조금은 칼라감각이 어우러지는..

그런 것을 좋아한다.

 

옷은

내면을 반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

그 사람이 좋아하는 취향이 옷에 가장 잘 노출되기 때문이다.

가벼운 옷,

맘에드는 옷을 입을 때 어찌 그리 기분이 좋은지..

 

또 옷은

속을 감추어 주기도 한다 .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가장 먼저 한 일이 치부를 가린 일 아니던가?

 

하지만 옷은 한계가 있다 .

가린다고 내면까지 변할 것인가?

 

나.

예수님 믿고도 수없이 많은 시간을 말씀을 묵상하며

말씀이 하나님이심을 느끼고

자신에게 선포해가면서 까지

아주 많은 부분 변했지만

아직 닦여나와지지 않는 내 검은 속을 들킬 때마다

그래서 그것이 그대로 '외부'를 향해 투영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내가 가린다고 생각될 때마다

얼마나 당혹되었는지 모른다 .

그러다가, 골로새서 3장 12절에서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 라는 구절에서

불현듯 깨달아 지는 바 있었다 .

옷입는다는 것.

한동안 내면과 외면이 일치되어야 정직한 사람이라는 고착된 ㅜ.ㅜ;; 생각에

내면이 걸러지지 않고 외부로 투영되어

내 속의 진심과 달리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한 적이 있었다.

그러한 나에게 겸손과 자비 온유.. 등 성령의 9가지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아

하나님의 향기가 그대로 외부로 투영되어 나오면 더 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옷입어'라는 표현 처럼

의도적으로 자비와 겸손으로 내 외부를 좀 치장할 필요도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

 

아.

그거..

위의 옷의 본질에 대한 몇마디 생각 중

가리기만 하여서는 한계가 있는  것과

하나님이 허락하신

말씀으로 명령하신 '옷'입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

그것.

하나님은 명령하시면 따르기로 결심만 하면

하나님이 이루도록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

다시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시니

' 겸손한 척'

' 자비한 척.. ' ......척..이라는 표현이 맞는 지는 몰라도 ^^;;..

그리한 것처럼 멋~지게 옷을 입은 듯 행동하기로 결심하면

나머진 하나님이 채워주신다는 것이다.

즉...

내 내부적 노력이 먼저 선행되어 내면이 정결되어 외부적 향기로 나오지 못할 바에

옷입은 것 처럼 꾸밀 결심이라도 하면

그때부터 내면까지 그리하게 될 것임을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

 

그렇다.

옷의 치장적 의미가

하나님의 말씀을 만나

옷을 입을 노력의 결심만이라도 하면

하나님이 내면까지 바꾸시겠다는 것이다 .

 

오늘...

예수로 옷입으라 하신다.

예수로 옷입는 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예수님의 십자가 지심,

예수님의 고통을 감내하심

예수님의 피로 인한 죄의 씻으심

예수님의 그 지고지순한 순종

예수님의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능력 마져 내려 놓으신 그 포기

예수님의 나를 향한 그 절절한 사랑....................등의

정말 따를 수 없는

인간으로 흉내낼 수 조차 없는 것을

옷입은 것처럼 흉내내라는 뜻은 아니신거 같다 .

그것, 나에게는 최소한 너무 높은 이상이고

결국 그 옷을 입을 결심하면

또 다른 율법으로 나를 채우는 것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무엇인가?

 

묵상과 감사하는 마음과

틈만 나면 행해지는 절절한 기도로

예수님을 사모하고

오늘 말씀처럼

'예수님을 옷입길' 기도하고 기대하고 기다리기만 하면

하나님이 나를 바꾸실 것이란 이야기시다.

외부적 모습도 달라 보일 것이란 이야기시다.

 

외부적 모습?

정욕적,

탐욕에 이글거리는

그래서 어딘가 모르는 느글 거림.. 이 사라지고

육신의 일..

허덕이고 갈급해하고 안절부절 못하는

육신의 힘이

어느새 자연스레이 감소되어

누가 보아도

평온한 모습,

눈빛이 고요하고

흔들리지 않는 정갈함

보고 만 있어도 행복한.... 그러한 모습으로

점차로 느껴지다가

어느새 시간이 지나

하나님의 영이 그를 차지하는 시간이 점차로 많아지고 길어지면

그의 내면에서 그리도 버글 버글 끓고 있던

수많은 죄성과 욕정과 욕심과

그로 인한 갈등, 갈증, 두려움, 외로움, 분노, 교만..........이 사라지게 되어

예수님의 품성을 그대로 닮은 자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

오늘은 특별히 하루종일 묵상하고 지낼 것이 그것이다 .

예수님을 옷입는다.

오늘 내가 입을 옷은

바로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의 영이 날 도울 것이시다 .

 

 

 

귀하신 내주 하나님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 하루가 열렸지만

어제보다는 훨씬 나은 오늘이 되길 원합니다.

주여.

홀로 아무리 노력하고

내면을 다스리려 그리도 힘들게 왔지만

어느 한계에서 주춤하고는 더이상 오르지 못할 때

주님은 제게 '옷입는다'는 개념을 말씀하십니다.

주님으로 옷입는 것은

외부와 내부의 구분이 없이

외면과 내면의 걸림이 없이

자연스레이 흘러나오고 들어가는 흐름의 현상을 말씀하십니다.

주여.

이 말씀을 묵상하며

옷입는 것 조차

예수 그리스도가 안계시는 불쌍한 자들에게는

더 이상의 발전의 계기가 없구나 하는

가련함이 듭니다.

상대적으로

더 가벼워지는 저희들이 올시다 .

감사합니다.

예수님.

하나님.

주님의 주신 말씀 붙들고

오늘 하루도 지내겠습니다.

제 영혼에 늘 주님의 향기 드리게 하소서.

온전하게 늘 폭포수 같은

주님의 영이 흐를

내 배에서 흐르는 생수의 강의 그날을 기대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신약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령의 화단[롬14:13-23]   (0) 2014.05.30
내 사는 이유[롬14:1-12]  (0) 2014.05.29
서로 항상[롬12:9-21]   (0) 2014.05.27
새로운 변화 온전한 분별[롬12:1-8]   (0) 2014.05.26
말하노라 [롬11:13-24]   (0) 2014.05.24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