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서로 항상[롬12:9-21] 본문
10 형제를 사랑하며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서로.
서로.
서로가 먼저 눈에 뜨인다.
오늘 말씀은 참 좋은 말씀들이다.
마치 교육적이고 저리 살면 잘 살 수 있는
도덕적 말씀 같다.
그러나 도덕이 없어서, 율법이 없어서 세상은 오늘 같이 되었는가?
아니다.
그것을 기쁨으로 따르고 감동으로 따르는
살아있는 생명력이 없어서이다.
그 없는 생명력,
그것은 말씀을 근거로 나에게 다가온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
그 말씀을 통하여 흐르는 성령의 흐르심,
그 흐르심을 받을 자격이 있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자격.
그 말씀 중에서
'오늘 '내게 주시는 말씀은 '서로'인듯 하시다.
서로... 가 왜 눈에 들어왔을까?
서로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있어야 하는가?
무리다.
그룹이란 이야기다 .
홀로 있어서는 '서로'가 되지 않는다.
서로가 되는 것은
같은 뜻을 가진자들이 모여야 함이다.
같은 뜻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감사하는 자들.
그들이 '서로'가 되어야 하기 위해서는
각 개인이 서로를 배려하고 인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 우애 '하라신다.
내 이웃을 사랑하고
내 동료를 아껴주어야 한다.
먼저 나를 낮추어
그들을 위하여 배려하여야 할 것이다.
서로라는 것은 교통이다.
흐름이다.
나 혼자서는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상대에게 '서로'를 강요해서는 서로가 되지 못한다.
'율법'과 도덕의 짐이상 더 다르지 않다.
그것은 상대도 그렇게 되기 위하여는
내가 먼저 말씀을 통하여 깊이 낮아져야 하고 그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 존경하기를 먼저'하라 신다.
그렇다 .
그 각각이 서로가 되어 상대방에게서 돌아오기 위하여는
그 돌아오게 함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먼저 .. 자신을 낮춤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원리가
오늘날 최소한 '기독교 안'에서만이라도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 내가 나를 낮추어 ' 상대를 '존경'하기를 먼저해야 한다.
그것을 보고 감동하는 상대가
내게 똑같은 느낌으로 대해주게 되면
그때부터 그것은 내가 혼자 하는 존경의 모습이 아니고
상대에게서 나에게로 흘러 다시 다가오는
'서로'의 존경이 된다.
그렇다 .
먼저해야 한다 .
서로를 위하여 먼저 해야 한다.
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그런데
그러한 '서로'의 낮춤과 우애가
그리 쉬운 행동인가?
인격적으로 누구나 다, 언제나 다 그럴 수 있을까?
그리 쉽게 되면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실 일은 없었으리라.
그러나, 이제는 가능하다.
예수께서 오셨고
그분을 이유로 주신 성령의 도우심이 있으시고
말씀을 통하여 하나하나 밝혀 주셨으니 가능하다 .
세상은 안변하고 주위 환경도 그대로여도
우리는 '예수님'과 '성령'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씀을 준행할 결심과
주신 레마를 가슴에 담을 선택만 하면
'소망으로 가득차게 '된다.
비록 그것이 '환난 중'이라도 소망이 유지가 되고
오히려 즐거워 진다.
그게 하나님의 원리시다.
그게 신약시대에 우리에게 열려진 '복음'이다.
Gospel.
그러함을 누리다가 소천하여 주님 곁에 가는 것.
그것이야 말로
우리 '진정한 믿음'을 소유하려 자들의 마땅한 현상 (現狀) 이란 이야기다.
그러기에 그러한 결심과 깨달음과 레마를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
그것도 오늘의 말씀처럼
'항상 '기도해야 한다.
기도에 힘쓰라 하신다.
항상 그렇게 하라신다.
그것은 기도는 우리의 힘씀을 통하여 해진다는
방해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로서로
우애
존경은
우리의 소망을 경험함으로 결심할 수 있다 .
결심함은 '고난'과 '환란' 중에서 이루어짐을 의미하는 단어다.
거기에는 방해가 있을 거란 이야기다 .
방해는 '기도'에 대한 방해다.
그게 바로 일상의 영적 전투다 .
우리가 해야할 일을 교묘히도 헷갈리게 하는 것.
그래서 나아갈 방향을 잃고
서로 등을 지게 하는 것.
세상에 홀로 있는 것 같이 만들어
외로움에 머물게 하고
그 외로움에 지쳐 우울하게 하고
급기야는 세상을 지옥의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 놓는 것.
그러나, 주님은 이 땅에서 '서로서로'를 권하신다.
그 서로서로의 '화합'을 위하여 주님이 오셨다 .
하나님과의 화합을 위하여서도 오셨다 .
그러기에 우리는 무슨 이유라도 '기도'해야 한다 .
힘써서 기도하고
서로서로의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하면
이땅에서의 소망은 점점 더 명확하고 커져
더 이상 세상은 우리를 흔들 수없게 된다.
관조의 삶.
요즈음 내게 허락하신 주님의 선물이시다.
참 감사하다.
귀하신 내 주님
우리 주님의 말씀대로 '서로 '우애하길 원합니다.
'서로 먼저 ' 존경할 수 있길 원합니다.
주여.
솔직히 고백하건데
전 그동안 그리 못살아왔었음을 고백합니다.
아픔과 상처를 이유로 손가락질 하고 살았으며
타인을 무시하기도
너무 높게보기도 하여
바닥과 천장을 오가는 굴곡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았고
그 가운데 내 틀 안에서 저를 가두어
세상을 외롭게 쳐다보았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제 그러한 심사가 깨어지고
말씀으로 인도하셔서 하나하나 껍질을 깨어나오는 것이
마치 타조가 알을 깨고 나오는데 수시간이 걸려서
그러지 못한 새끼는 도태되는 것 같이
제게는 알을 깨는 시간들이 오래 걸렸습니다 .
이제 거의 세상이 보입니다.
맑게 관조가 되어 보입니다 .
제게 소망이 생긴 삶이 된 것입니다.
이제 알을 깨고 나와
두 발로 세상을 딛기 위해
다시 한번 주님의 말씀을 따라 갑니다.
서로 서로
항상
우애와 존경을 위하여
먼저 기도하는 자 되길 원합니다.
항상 그리되길 원합니다 .
주님의 말씀이시니
제 다리가 튼튼해져 어서 뛰어다니는 신앙의 사람이 되기 위하여
그것이 제게 허락하신 진정한 복임을 알기에
주님의 도우심을
다시한번 간구합니다.
서로서로의 주인공이 되게 하소서.
먼저 그리 되는 자 되게 하소서.
그것을 두고 항상 기도하는 자 되게 하소서.
나머지 소망은
주님이 더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제 일상도 변케 해주실 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들어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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