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예수님 거기 계시는 지 압니다(막4:-41 ) 본문

신약 QT

예수님 거기 계시는 지 압니다(막4:-41 )

주하인 2011. 1. 12. 11:17

제 4 장 ( Chapter 4, Mark )  

 날이 깊이 저물며

세찬 바람과

많은 눈발이

세상을 흔들듯 쏟아집니다

 

주님 계심 잊었더라면

이 혼돈과 흔들림에

자칫

넘어질 뻔 했습니다

 

주님

그래도 제 안에

주님 계심 느껴지기에

참을 수 있었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예수님 거기 계시는 거 압니다(막4:-41 )

35.  그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날 저물 때.

내 나이도 저물어 갈 때.

 

' 저편'

완전한 삶의 행태를 전환하는 경우일 수도,

생각이 완전히 바꾸인 것일 수도

인생의 하프라이프를 생의 전환점으로 삼은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저편으로 건너가는 데는 '함께 ' 감이 필요하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는 소리를 듣고 움직이면

금상 첨화다.

 

 
36.  저희가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지금껏 주님을 모시고 살아왔다 장담할 수 있다.

최소한 난 내 육신의 배에

주인이신 '예수님의 영'을 모시고 살려고 무진 노력을 했다.

그 삶이 이제 어떠한 환경의 변화를 겪어서

'저편'으로 건너갈 이유가 생겨도

난 '내 예수님, 내 성령님'을 내 영에 그대로 모시고 가는,

그런 자임을 확신하고 살아가야 만한다.

 

 
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인생 살면서

광풍이 불지 않을 수야 있겠는가?

또 물이 삶속에 들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갑자기 실직하거나, 병이 들거나 , 자식이....

그러면서 하루 아침에.....


 
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그런데 열심히 믿는 다 해도 

주님의 말씀은 있는데도

그 환경은 그대로라 하면 자칫 많은 당황이 있을 수 있다.

그 표현을 '예수께서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신다'라고 되어 있다.

어찌나 절묘한지..

예수님을 분명히 믿고

예수님의 약속은 분명히 있는데

환경이 변화가 없을 때 자칫 '저런 느낌이 안들을 수 있을까?'  ㅜ.ㅜ;;

 

 그러나 그렇다고

지금 이 제자들이 하는 양,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라고 몸부림칠 수도 없지 않는가?

그래도 다행인 것은

'예수님이 보이지도 않고 예수님께 빌지도 않는 것' 보다는 낫다는 것이다.

   

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그러시니 예수님 그러신다.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이 말씀을 들으며 잠깐 혼란스럽다.

'믿음이 있다'는 것은

예수님이 계시는 것이 보이매

예수님의 이름으로 풍랑을 막고 바람을 다스리고 굳건하게 나가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인가?

 아니면, 풍랑에 상관없이

예수님이 내 곁에 주무시고 계심을 보니

흔들리지 않을 것을 믿고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신가?

예수님이 주무시니

나도 그 편안한 모습으로 있는 것을 '믿음'이라 하실 수도 있다.  
 

 그래도 예수님은 당신을 부르시고 깨우는 제자들의

덜 익은 '풋사과'의 믿음이 그리 밉지는 않으셨던 모양이다.

그런 뉘앙스로 들린다.

그러기에 풍랑을 멈추어 주셨다.

 

만일 예수님을 인식하지도 못하고 벌벌 떨기만 했더라면

그 풍랑의 기간은 훨씬 더 길어질 것이 틀림이 없고

그래도 예수님이 계시기에 배는 넘어지지 않을 것이 맞을 듯 싶다.

 

 

 

 어제 아내를 삼성서울 병원에 입원시키고

큰 아들을 맡겨 놓고 돌아 왔다.

갈 때는 아내 차에 큰 아들이 운전해서 편안히 갔지만

돌아올 때는 '일원 역'에서 전철을 타고

'종로 3가'에서 1번 라인으로 갈아타고 오는데

총 35역을 지나면서 1시간 30여분 이상을 소요하며 돌아왔다.

 사람들도 많아서 참 힘이 들었지만

병원에서 내려와 전철역까지 오는데 이것은

말 그대로 '퍼붓는 ' 정도의 눈이다.

잠시 눈의 탐스러움에 정신이 쏠려 '스마트폰'을 들어

몇 컷을 찍고 나니 금새 온통 전신에 눈 투성이다.

 어쨋든 아내를 내려놓고 차를 세워두었던 병원에 도착하니

10시가 넘었다.

차를 몰고 다시 '시흥'까지 빈집에 들어갔다가 다시 아침에 차를 몰고 나올 생각을 하니

영 마음이 내키지를 않는다.

그래서 '젖은 양말'을 벗어 놓고 수술방에 올라가서 편안한 수술 가운으로 갈아입고

진료실에 놓인 모포를 진료실에 있는 소파에 올려 놓고

대기실에서 몇개의 의자를 가져다가 펼쳐놓으니

그럴 듯한 침대가 된다.

그럭저럭 몸을 닦고 전기 난로를 켜놓으니

그것도 그냥 그냥 지낼 만하다.

 잠시 눈을 감고 외부에 서슬 퍼런 눈내리는 깊은 밤에

홀로 푸근한 진료실의 공기를 만끽하며

깊은 기도에 들어갔다.

 

  괜찮다.

 

 아내를 50대에 자칫 잃을 뻔했다.

하나님의 절묘한 타임에 그 위험한 동맥류를 미리 발견케 해주셔서

예방적으로 치료하게 하심이 너무나 감사하지만

그래도 50대에 삶의 변화가 일어남이 한편으로 불안함이 몰려오려 함을 느낀다.

의사니 나름 , 그 병의 위험성과 그 병을 치료하면 안전함과 ............대충은 알지만

그러함에도 병원에 막상 입원시켜 놓고 돌아 나오려니 생각이 많다.

 '역지사지'

환우의 보호자 입장이 되어서

의사의 입을 들여다 보고 있는 내 마음과

진료진의 마음 깊이 친절하지 못함이 얼마나 환우 일행에게 부담이 될지

깨닫게 되는 이유가 되어서 감사하기도 하다.

 큰 아들.

아이를 '책임지는 영역'에 데리고 다니며

아이가 하여야 할 일을 '하나님의 뜻'이란 부분에서

차분히 가르치게 됨도 많은 발전이다.

여러번 고백했지만 난 역기능 가정의 아버지였기에

회복이 여기까지 오는데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쳤었기에

더구나 아이의 그 거부하지 않는 자연스러움과 나의 관계,

... 그런면 역시 요번 어려움으로 많이 깨닫게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함에도 마음은 부담이 온다.

아내나 나.. 말은 안했지만 긴장이 되었던 모양이다.

늦게 아내를 두고 나오면서

아내의 손을 잡고 마주 앉았다.

그리고는 기도해주고 오려는데 '깊은 눈물'이 나와 한동안 말을 잊지 못했다.

왜인지 모르겠다.

별로 긴장도 안하고 

별로 ....쑥스러운 것은 잘못하는데.. 그런다.

 깊은 눈물이라 표현한 것은

예수님을 믿고서 나도 모르는 영혼 깊은 저 안쪽에서

이전과는 다른 하등 감정적 걸림이 없는 가슴 절절한 눈물로

막기 힘든.....꺼이꺼이..와는 다른 그런

안구 뒷쪽에서 습기가 올라오는................

얼른 기도를 마치고 돌아나오는데 아내도 그런 마음인가보다.

 아..

주님이 도우시지만

나이든 자들로서 인생의 하프라이프를 넘어

'저 편으로 건너가는 ' 인생의 변화를 겪을것 같은 조짐을 느끼는 ..

그러나,  혹시 약해질 것 같은 마음을  우리의 영 가운데 계신 예수님을 인식하는 자로서

한편 평강을 누리기도 하는.. 그런 복잡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아내는 아침에 무사히 잘 검사를 마치었다고 전화가 왔다.

아직은 정확한 판정은 회진을 돌아야 받겠지만

2월 중순에 시술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

수술을 마치고 나오니 아내가 전화왔다.

머리를 열고 수술을 해야한단다.

결과야 괜찮겠지만..그래도 가슴이 미어진다.

 

아침에 전화를 받고

메일을 들여다 보니 '논문 심사' 결과가 통보가 왔다.

'불가'.

힘이 든다.

많이 마음에 부담이 온다.

지난해 열심히 준비했던 것.

 

식사를 하러가도

회진을 가도

만나는 부담스러운.....

 

영 흔들리는 하루다.

분명히 예수님이 눈에 보이니

흔들리지는 않는 듯 한데

풍랑에 마음이 흔들거리듯

어질 어질 하려 한다.

소리 소리 한번 지르고는 싶다.

그러나 어쩌랴?

저물 때 저편에 넘어가자는 예수님의 싸인 같은 것을..

그러나, 난 흔들리는 풍랑에 마구 소리소리 지르고 싶다.

이럴 때 주님이 나에게 무엇이라 하실까?

'주하인아.

내가 자고 있는데 무엇이 그리 흔들릴 것인가?

내가 평안히 자니 너도 평안히 있어도 되지 않는가?

그게 믿음아닌가?' 하시지는 않을까?

'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동맥류는 자연치유되고

 안된 논문통과는 다시 통과되고

 그 사람은 나에게 더욱 정중한 태도로............' 할까?

그게 온전한 믿음인가?

아니면 흔들리는 상황이지만

평안하신

내 곁에 계신

그 예수님을 보듯이 느끼고

그냥 흔들리지 않아야 할 것인가?

 

기도할바다.

 

주님

아시지요?

주님

아시지요?

제 마음아시지요?

제 인생을 보시고

제 흔들림도 아시지요?

저..

그런데

주님이 계심을 압니다.

그러기에 예수님 만 쳐다 봅니다.

주님 거기 계시는 거 압니다.

인생의 저물 이때에

저편으로 옮겨가야할 듯

지축이 흔들리는 듯 합니다.

주여.

도우소서.

절 붙드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