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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상 회복을 넘은 완전한 치유에 대하여[막5:21-34]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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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상 회복을 넘은 완전한 치유에 대하여[막5:21-34]

주하인 2024. 2. 21. 00:05

부제) 예수여 저를 바라봐주소서

(펌)

예수시여

제발 저를 보아주소서

 

(펌)

제 간절함 만을 보시고서라도

저를 구하소서

 

이 질기고도 험한

인생의 풍파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하여주소서

 

내 구원의 하나님

우리 주예수 시여.

 

21 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맞은편으로 건너가시니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이거늘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
22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23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
24 이에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야이로는 그랬다. 

'큰무리' 사이에서 눈에 띄였기에 

선택받았고

그로 인하여

예수께서 '함께 가시게 ' 되었으며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죽은 딸이 살아나게 '되었다.

 

 그러기 위한 전제조건이 그거다.

당연히도 '주님 예수님 ' 앞으로 나와야 한다는 거다. 

 그 후 눈에 띄어야 했으며(오 주여... 저를 제발 바라봐주소서.. )

그러기 위하여 그는 '열렬하고 절절함'이 우선되었다.

 

'간곡'하였고

'발아래 엎드린' 절절함이 우선되었다. 

 


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31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32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kept looking around to see , 아시려고 둘러 보셨다 NIV)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야이로와 오버랩되면서 나오는 인물.

성경에서 아마도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그 사람이 바로 '혈루증' 여인이고

이 여인의 끼어듦으로 인하여 '야이로'의 딸은 시간이 지체되어 죽었는데

이것.. 어떻게 생각하면 '야이로'에게 큰 '부담'이 된 여인이고

자신의 안위를 위하여 타인의 절박함을 무시한 '이기주의' 같은 것 아닌가 싶기도 한데

그것... '예수님이 하나님'이심,

따라서 '죽은 자를 살리시는 능력'을 가지신 것을 배제한 

정말 엉뚱한(그러나 그 엉뚱함은 우리 인생들이 모두 가진 보편적인 오류들 아닌가?  그 마져 주님 앞에서는 이제 내려 놓아도될 ,믿음 성장을 위하여 깨달을 바 이기도 한듯하다 ^^*) 판단이 아닐까 싶다. 

 

 각설하고 

야이로와 이 혈루증 여인의 완전히 다르지만 

공통적인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우선,

큰 무리,

31절에 보면 '에워 싸 밀릴 정도'의 많은 무리들이 

저마다의 소원과 흥미와 다양한 이유로 

예수 앞에 밀려왔는데 

그 큰무리 사이에서도 '눈에 띄일 절절함' (오 주여... 제발 ...이처럼 열렬히 주만 바라오니 저도 제발 보아 주소서)이 그 첫째다. 

 

 보라.

생각함이러라.. 깨달으니라 .. 했지만

저 여인의 25년 이상의 고통 후 마지막 지푸라기 잡는 심경의 절절함을 표현하기에는 

위에 올려 놓은 사진 속의 여인의 포즈가

약간은 기대에 못미치게 그려지기는 했지만 ^^;  ...하여튼 

여인 역시 마찬가지 였으리라.. 

 

 그리고 두번째의 공통점

'열렬함'이다. 

발아래 엎드린 여인...

 27절에 뒤로 와서.. 라고만 나와 았지만

아마도 그림의 표현처럼

뒤로 와서 무릎꿇면서까지 손을 대었을 것이

틀림없이 맞을 것 같다고 생각되어진다.

 그 큰무리의 군중에게 떠밀림 속에서 평범히 '뒤로 와서 손내밀어 쉬이 옷자락을 잡게 되었을리는 없을 거다. 

더구나 여인의 몸으로 ..

그것도 오랫동안 피를 흘린 혈루증 여인은 분명코 빈혈이 있었을 텐데..ㅠ.ㅠ..

힘이 없어서라도 떠밀려 넘어졌을 가능성 많다. 

 그러기에 위의 그림처럼

밀려 떠밀리더라도 악착스레이 손을 내밀어

예수님의 옷자락 만이라도 만지려고

최대한 힘을 다했을 것이니 

저러한 포즈가 나왔을 것이 아마도 맞을 것 같다. 

 

 그리고 세번째,

무엇보다 중요한 것... 

'예수님의 관심'을 끌게 된 거다. 

누구나 열심을 가지고 해결할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이 두사람을 제외하고 

저 많은 밀리는 무리들 속에는 아무도 없다?...생각하기 힘들지 않은가?

 

 그런데 왜 하필 둘일까?

'예수님의 관심을 끌 만한 '

32절의 표현처럼 

예수께서 '보려고 둘러보시게' 할 만한 열정과 절절함이다. 

그 많은 무리 속에서

목표를 가지고 한 곳, 야이로의 집으로 가시고 있는 중에도

단지 옷에 손을 대었을 뿐임에도 

예수께서 아시고 보시려고 둘러보실 만한 

관심을 돌릴 만한데는

'절절한 간구' 만한 것이 없음이다. 

 

 그 둘은

절절함으로 주님 앞에 나왔고

최선을 다해

주님의 '눈에 띄였다.'

 

그리고 마침내

야이로도 곧 그리 이루어질 것이지만

혈루증 여인도 '회복'이 즉각 이루어졌다.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 지어다"라 선언 받았다 .

 

 여기서 또하나 드는 깨달음이 있다 .

 

벌써 .. 여인은 '혈루증'이 나았음을 느꼈고 

현재 진행형이었으며 

예수께서 눈을 마주치는 시간부터 말씀으로 선언하기까지의 선언은

과거로 흘러가고 있는 '이미의 이루어짐'인데도

왜 주님께서는

'앞으로 나을 것이다.. 곧.. '이라시는

미래시제의 표현을 한 것이었을까?

 

 그 말씀  선언하시기까지 안나았다는 이야기 아닌가?
 왜 이실까?

 

 이런 거 아닌가 싶다. 

난 의사다. 

그래서 병에 대하여 잘안다. 

비교적..ㅎ

 

 여인이 느낀 것은 '단지' 증상이 나은 것.

'혈루' .. Menorragia (월경과다라는 증상 ㅎㅎ)가 잠시 멈춘 현상에 지나지 않지만

주께서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심은 

원인까지도 완전히 제거되었다.. 

즉 완전히 나았으니 앞으로 그럴 일이 없을 것이다.. 라는 것.

 

그러니.. 

완전히 살 야이로의 딸과

완전히 병으로 부터 회복을 경험한

두 사람의 공통점이 또 하나 있는 것.. 

 

 그리고 또 하나 더 

병에서 놓임 받은 것.. 

죽음에서 벗어나게 된 것... 

다 절절하고 필요함 이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면

며칠 전에도 묵상했던 지속적인 '믿음의 본질'.. 

그러하신 기적과 치유의 본 목적...

더 깊은 본질에 대한 것이 잊혀진다 .

거기에서 끝나면 안아프고 구경하러 온 자들이

가장 뛰어난 신앙인이란 이야기다. ㅠ.ㅠ

 

 회복 받고나서.. 가 진정 중요한 것이다.

끝까지 '구원의 존재'..

주님 은혜 입은 자의  위치를 놓으면 안된다. 

그것을 위하여 예수께서 구원해주시고 치료해주신거다. 

'제자들의 삶'..  

좁은 길, 좁은 문의 삶.. 말이다. 

 

예수가 내 안에 계시고

풍랑 , 풍파, 혈우증, 영적으로 더러운 영의 .. .그 모든 것을 주장하시는 분이 

그 분이시며

그 모든 인생의 어려움.. 그로 인한 회복의 감사함들이

'예수께서 내 안에 계심'을 잊지 않게 하는 도구.. 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회복'을 주셔서 놓여났음은

완전히 죄에서 벗어날 그날까지의 유지를 원하심이시다. 

 

 깨달음이 감사하다. 

 

 

 

 

주여...

알람이 울렸습니다. 

깨달음 통해 오늘도 하루 

주님 말씀 붙들고 살겠습니다 

 

저의 '매일 증상의 회복'을 경험함.. 

말씀으로 그러하심을 

다 나은 것으로 착각하여 '죄의 근처'로 회귀하는 이 버릇.. 

완전히 낫는 자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주님 오실 그날까지

주께서 기뻐하시는 만큼 영적으로 성장하기를 위하여

더욱더 간절히 기도합니다. 

 

감사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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