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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렬한 사랑을 위하여(아3:1-1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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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렬한 사랑을 위하여(아3:1-11)

주하인 2012. 4. 13. 10:32

(아3:1-11)

1. 내가 밤에 침상에서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 찾았노라 찾아도 찾아내지 못하였노라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

여기 찾는 주인공은 '여자'다.

그(him)를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그는 '그 분' 예수님을 상징한다.

우리 모두가 그분을 저처럼 '마음으로 사랑하여'

자다가 벌떡 일어나 그리워하고

길거리로 뛰어나가 찾는

진정 '마음으로 사랑하는 '

그 사랑의 마음을 회복하였으면.......

 그래서 나도 모르는

그분에 대한 '허겁증'으로

찾고 찾고 또 찾을 수 있는

그 마음을 회복하길 원한다.

 

반드시는 아니겠지만

요 며칠

시도 사진도 잘 안나온다.

그것은 날씨 탓도 있겠고

사진을 찍을 시간적 기회도 없었서 이기도 하겠지만

아마, 나의 영적 갈급함이 떨어져서 인게 실은 맞을 듯 싶다.

 

아들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 출근은 일찍하고

기도하려는 시도는 열심히 하고

아직도 아침 큐티는 빼먹지 않을려 습관적으로

큐티 책을 들여다보고는 있지만

솔직히, 감동이나 열심,

그리고 내 게으름에 대한 부담이 덜한 게 사실이다.

그것은 어쩌면 영혼이 비교적 덜흔들리는 정황이라서

덜 갈급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성장이나 발전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닐 수도 있던가?

아니다.

 

어쩌면 '갈급함',

사랑에 대한 갈급함은 '의도적 노력'이 필요한 것일 수도 잇다.

오늘 '술람미' 여인의 왕에 대한 사랑에 눈이 먼듯

마음 깊이 사랑하여

그분을 찾고 또 찾는 저런 모습을 보일 정도로

그 간절함을 회복하길 바라시는 듯하다.

 

 

부정적 감정은 '원죄'의 이유로 해서 '본능'에 가깝다.

하지만 긍정적 감정은 '노력'이 필요하단다.

그거......맞는 이야기다.

'사랑'은 긍정적 감정의 최고봉이다.

물론, 생물학적 이유로 인한

남녀간의 사랑,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등은 안배워도 가능한 분야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차원 높은 사랑,

더욱 열정적이며

더욱 순수한 사랑

아가페의 사랑은

갈고 닦아야 이루어진다.

모든 긍정적인 감정에는

'선택'이 필요하고

그들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침에 버스를 타고 왔다.

엊저녁,

결혼 25주년 기념이라 병원으로 온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식사를 마치고 집에 가느라 '내 차'를 두고 가서였다.

일찍 나와서 타는데도 만원이다.

오랫만에 시큰하게 아파오는 디스크에도 불구하고

나름 운동으로 단련된 다리에 힘을 주고는 꿋꿋이 버텼다. ^^;

앞에 힘을 잔뜩 주고 서 있던 청년 - 나중에 보니 좀 나이는 있는것 같긴 했지만 ㅎㅎ - 이

자리가 나자 얼른 비집고 들어가 앉는다.

 한 걸음 떨어진 곳에 '녹색'옷을 입고

그 자리를 위해 열심히 사람을 뚫고 오시다가

실망어린 어르신 - 정말 마르셨고 꾸부정하시고 힘들어 하셨다 -이 눈에 들어왔다.

그 어르신 서 있는 자리 앞의 젊은 총각도 아예 고개를 숙이고 있고

자리 잡은 청년도 못본 체한다.

시대 사조인가 보긴 하다.

하긴 어르신들이 '적극적'으로 자리양보를 강요한

거부감도 없지 않아 있기도 하고

솔직히 아침의 출근 시간이 힘들긴 하고....

요새 젊은 아이들 생각보다 다리힘이 약한 것은 알아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그것은..좀 아니다....란 생각이 들었다.

 조금 있다 그 어르신 자리를 바꾸어 반대 방향에 돌아서서

여전히 이곳 저곳 자리를 탐색하시는 게 많이 힘들어 보인다.

 한참을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고

아파오는 허리를 조심스레이 비껴가며 자세를 바꾸었다.

그러다가 우르르..하고 사람들이 내린다.

좌석이 났다.

앉아서 가려다가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할아버지 쪽을 쳐다보았다.

좌석 두서너개는 멀리 떨어져서 아직 많이 남아 있는 사람들 사이로

눈치는 안보이지만

그래도.. 싶다.

그 사이를 눈치채고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아이'가 적극적으로 밀고 온다

손으로 슬쩍  제지했다 .

그리고는 '할아버지......이리 오세요' 하니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얼른 오신다.

이거.

아침에 '사랑'이란 단어를 보지 못했으면

나도 가능치 않았을..

그러면서 이전처럼 '자랑스러운 교만함' 이 그러지 못한

요즘 세대 것들 ^^/;; 에 대하여 터져나왔을 것을

그냥 아무렇지 않다.

아마도 개중 누구는

'존경'과 '사랑'에 대하여 한번은 생각할 기회는

되었으리라.........면

내 .....착각일까?ㅎ

 

 잠시 묵상을 했다.

'찾고 또 찾고 또 찾을' 만큼

'마음으로 사랑하 위해'선

얼만큼이나 더 연습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강제적 첫사랑 ^^*에 감동하던

그 얼마의 열정을 제외하곤

난 .....정말 미지근한 사랑이 아니던가?

주님을 정말 열렬히 사랑해왔던가?

하지만, 이제는 조금은 맑아진 사랑을 올릴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바라는 것은

'주기철 목사님'이나 다른 성자의 반열에 오를 만큼

주님을 사랑하시었던 이긴 자들의 경지까지

정말 주님을 깊이 사랑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오늘 하루 종일 ,

내 부족한 심성으로는 가능치 못하지만

우리 주님을 열렬히 사랑할 수 있길

간절히 간구해보자.

 

 

기도

 

나의 하나님.

내 주시여

나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정말 사랑합니다.

내 사랑하는 주님이시여.

오늘 저에게

주님을 더욱 열렬히 사랑할 마음을 주소서.

얼마나 사랑하는 지

자다가 깨어서 주님께 기도할 정도로

그리 사랑하게 하소서.

내 하나님.

주님 때문에

주님이 만드신 그 모든 것사랑하하게 하소서.

주님이 만드신 피조물들을 귀히 여기게 하소서.

모든 사람들을 긍휼한 마음으로 보게 하소서.

하나님.

이 땅을 살면서

아무리 생각해보고 머리를 돌려 보아도

주님을 더욱 더 깊이 사랑하는 마음이 늘어나는 것 이외에

삶의 어떠한 목적도 발견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주여.

비록 술람미여인의 자다가 깨어 일어나

찾고 또 찾을 정도의 그 열렬함은

저에게 부족하더라도

주님

..이제 더욱 더 그리되게 하소서.

주님이 사랑하시는 모든 것을 점점더 사랑하게 하소서.

균형잡히게 하시고

그를 막아서는 싸늘한 반항을 내려 놓을 수 있길 원합니다.

주여.

제 자아의 막아섬을 녹이길 원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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