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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너머( 행 25:13-27 ) 본문

신약 QT

어둠 너머( 행 25:13-27 )

주하인 2011. 10. 15. 10:51

제 25 장 ( Chapter 25, Acts )  

잠시 안 보인다고

꼭 절망이어야 하던가

 

앞이 조금 어둡다고

끝 보이지 않는 밤이던가

 

조금 더 기다리면

곧 해를 보게 되리라

 

기도하고 기다리면

찬란한 빛을 보게 되리라

 

13.  수일 후에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베스도에게 문안하러 가이사랴에 와서 
  사도 바울님이 등장하지 않는다.

아그립바왕과

버니게와

베스도가 중심등장 인물이다.
  
  
 
23.  이튿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의를 베풀고 와서 천부장들과 성중의 높은 사람들과 함께

      신문소에 들어오고 베스도의 명으로 바울을 데려오니 
  그들이 격식을 차리고 그들끼리의 대화를 이루어 간다.

그런데 그들은 이스라엘의 왕이기도 로마 총독이기도 하다.

 

사도 바울을 그의 거취를 두고

그들이 서로 설왕설래 하고 있다.

 

그때 그들이 그랬을 시간에 사도 바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혹여 자신의 일에 타인이 결정권을 가지고 대화를 나눔을 알면

초조하기도 불쾌하기도 두렵기도 했을 것을

과연 사도 바울님은 그를 알고 있었을까?

 

 아침에 나도 모르게 불쾌한 꿈을 꾸다가

벌떡 일어났다.

내 주위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

내가 선택하여 여기까지 오게 된 인생길이 분명코 맞긴 하지만

어쩌면 그 선택을 있도록 계기를 마련한 강한 힘에 저항하지 못하여

있을 수 밖에 없는 일.

그리고는 이제는 그 일에 대하여

난 도저히 힘을 쓰지도 못하고 속수 무책으로 허용되고 있는 일....

바꾸기에도 저항하 힘이 없다 느껴져 한없이 무력해지려 한다.

그리고는 금요일 당직서느라 몇 시간 자지 못하고

어제도 느즈막히 잠들어 피곤해야 함에도

그 마음이 뒤죽 박죽이려 한다.

 

잠시 당황했다.

마음이 혼란 스럽다.

힘내어 말씀을 잡으니 나랑 상관없는 듯,

뜬금없는 사람들이 나와서 자신들을 변론한다.

아무래도 묵상의 요점이 잡히지 않아 그냥 주석을 들여다 보았지만

가슴에 오는 게 없다.

 도덕적 분석 같은.........

 

 출근하는 찻속에서

소리내며 기도하며 갔다.

요즈음 .. 내 혼자의 생각처럼 들려오는 답이 있다.

때로는 내가 기도하며 '주님 어떻게 해요.. ' 하면 말씀 구절을 통해

내 혼자의 생각처럼 떠오르기도 하고 한다.

그런데 그때 불현듯 깨달음이 올때도 있다.

그래서 그게 어쩌면 하나님의 응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기도 중에도 사단의 소리들이 내 알고 있는 지식의 한계 내에서 헷갈리게도 할수는 있기에

무조건 '하나님의 응답'으로 혼자의 소리를 취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 하며 선언하기도 한다.

그리고는 성경의 원리에 어긋나는 생각 같은 소리는 배제하려 노력한다.

또한 , 그 소리가 내 평강을 더해주면 하나님의 세미한 소리일 수도 있겠다고 느낀다.

 오늘 아침은 머리가 복잡해서

주여.. 저에게 무얼 원하세요.. 하니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인데

무엇을 걱정하느냐... ' 하시는 것 같다.

' 내 자식들은 요..?   마음에 안들어요.. ' 하니

' 그 아이들도 내가 다루고 있다. . ' 하시는 것 만 같다.

마음이 가라 앉는다.

 도저히 말씀 묵상이 되지를 않았는데 '무슨 말씀이세요.. '하니

불현듯 '사도 바울님'을 두고 그 분이 원치 않지만

그 분의 운명을 결정할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게 아니던가?

바울님은 어찌할래야 어찌할 수도 없는 불가항력적인..

그러나 바울님은 '흔들리지' 않았을 것임이 당연히도 느껴진다.

그리고 그 당연함은

그가 그 시점, 그들의 꾸미고 가꾸면서 자기합리화에만 관심을 가지면서도

한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데 부담을 가지지는 않는

그 어이없는 상황에 분개하거나 무기력해 하기 보다는

그 일을 통하여 '로마'까지 가게 되고

전세계 복음화를 이루어내는 '결국 ' 선을 이루어내시는

그 과정 임을 '사도 바울님'이 알아

담담하고 담대 했을 것임을 묵상하게 하시는 것 아닌가?

 

그렇다.

주님은 내 혼자 되지 않으니

이처럼 내 목소리처럼 찾아오셔서

부족한 나에게 깨달음을 허락하신다.

살아계신 하나님.

마음이 착~~~ 가라앉으며 차분해진다.

 

 나.

무기력하고 어쩔 수 없이 묶인 듯한 아침의 혼란은

사도 바울님이 그 상황에만 집중 할 때는 '저항하지 못할 두려운 일'이지만

하나님의 뜻 가운데, 끝을 보면 '무조건 '선이고

따라서 지금은 과정상의 불가피한 일이 아니던가?

그 과정을 통하여 '연단'을 받고 자신은 더욱 깊은 믿음으로 거듭나고..   

 

그렇다면 나에게 주실 레마는 이것이다.

이것 마져 '선'이다.

어쩌면 이 외로움, 무기력 , 괴로움, 혼란 마져도

주님의 앞에 가져오면

나의 성숙과 성화를 위한 깊은 도구일 뿐이다.

내 끝은 무조건 '선'일 뿐이다.

 

감사하다.

마음이 날아갈 듯

비록 막힌 도로지만 뚫고 출근했다.

 

 

 

 

주님.

귀하신 내 하나님

감사합니다.

약함도 강함이고

무능력함도 강력한 능력이고

무소유도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며

근심도 기쁨이고

낮아짐도 높아짐임임을 다시한번 잊지 않게 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지금 만 바라보지 않게 하소서.

지금 만 보면 '저항하지 못할 일'에 대한 그러한 어려움 만 생길 뿐임을

다시한번 체험했습니다.

주님의 뜻 가운데 가장 선이 내 앞에 놓여진 결과임을 잊지 않을 때

다시 한번 전 주님 안에서 승리 하게 되었습니다.

주님.

제 자식들.

그들은 그들에 맞게 그들의 하나님이신 주님이 치리하실 줄도 믿습니다.

그 마져도 주님께 내려 놓고 맡깁니다 .

내 사랑하시는 아버지.

그들의 어려움

제 외로움

살아있는 모든 자들의 숙명인 이 괴로움을

이제 주님을 깊게 영접함으로 내려 놓을 수 잇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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