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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에( 삼상4:1-11 ) 본문

구약 QT

어느 순간에( 삼상4:1-11 )

주하인 2008. 5. 16. 14:00

제 4 장 ( Chapter 4, 1 Samuel )

 

 어느새

세월은 지나가고

잎은 무성해지고

하늘은 높다.

 

 서두르지 않아도

계절은 변하고

마음은

한껏 넓혀져 있다.

 

 

 

 


1.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

 

 사무엘은

아이고

그냥 순종하고

변화없는 제단 앞의 생활이었는데

그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해졌다.

 

 주님의 뜻을 준행하려는 자들이

세상의 원리에

조금은 손해보고

미련한 자처럼 행동해도

결국은

승리한다.

 시편73편을 보면

記者가

불신 악인들의 형통한 것을 보고

시험에 들다가

주님 제단에 들어가다

불현듯

악인들이 매끄러운 곳에서 잘 사는 듯 하다가

한순간에 멸망에 이를 것이

주님의 뜻임을 깨닫고

놀라운 감탄의 언어를 발하는 장면이 있다.

 

 주님의 길은

어리석고 때로는 바보와 같지만

어느 순간에 보면

그의 길은 놀라울 정도로

형통한 길에 서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서두르지 말자

주하인

기다리자

주하인

인내하자

주하인

주님만 보자

주하인 ..

 


 
 
2.  이스라엘을 대하여 항오를 벌이니라 그 둘이 싸우다가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패하여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싸운다.

 싸움이란

어떤 이기적 목적을 두고 충돌한 현상이다.

그것을

블레셋에 '의하여' 패하였다고 하지 않고
 
3.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로 오늘 블레셋 사람 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블레셋 '앞'이라 표현한다.

두번 씩이나..

 

 마치

주님 '앞'이라 표현 하듯이 그런다.

자신들의 싸움을

하나님의 의도처럼 포장하는 듯한

뉘앙스가 없지 않다.

 이런 이어진 생각들은

하나님의 '궤'를 가져오면

싸움이 이길 것으로 판단하게 한다.

 

 궤가

하나님인가?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충성을 바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스러운 자로서의 관계가 성립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

궤를 우상화하여

자신의 이익에 이용하려는 의도다.

 

 

  

 
 
4.  이에 백성이 실로에 보내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서 가져왔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 있었더라 
 
  그나마 다행이다.

하나님의 궤라도 가져다 놓으면

이길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비록

우상단지 모시는 것 같은 마음이지만..

 

 거기에

홉니와 비느하스는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기는 커녕

궤를 옮겨올 때 같이 왔다.  

 

 제사장의 신분으로 왔겠지만

자신들의 죄를 두려워 할 줄 모르는

그들의 심사가

놀랍다.

 

8.  우리에게 화로다 누가 우리를 이 능한 신들의 손에서 건지리요 그들은 광야에서 여러가지 재앙

     으로 애굽인을 친 신이니라 
  이게

블레셋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다.

그들도

하나님의 두려움을 알긴 알았다.

하지만

신 '들'이라는 표현을 하는 것으로 보아

자신들의

지적 수준에서 국한하여

하나님을 평가하고 있다.

 

 신'들'

유일 신이신 그 분을 '들'이라는 표현으로 보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

 엘리의 아들 제사장들

 블레셋 사람들...

 

모두 다른 조건의 사람들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그들 모두 하나님을 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일을 알고

하나님의 편에 서면

이길 것이란 확신 내지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아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 뿐

그 분의 속성이라든가

믿음의 중요함

회개의 중요성

그 분과의 날마다의 교제 등에 대하여서는

생각지도 않고 있는 자들이다.

 

 

 이러한

믿음의 왜곡과

겉치레 신자로서의 모습이

과연

나 한테는 없는가?

 주위에서 찾아볼 수 없는가?

 

 안타깝게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11.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그 결과는 어떤가?

 궤가 빼앗겼다는 것은

실족했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을까?

그리고

그들의 영혼은

홉니와 비느하스가 그랬듯

죽임을 당하게 되고..

 

 그렇다면

오늘

나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의 의도는 무엇인가?

 

 지금껏 그랫듯...

주님의 일에 집중하고

그 안에서

결과는 주님께 맡기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삶,

그것을 통하여

마치 아이 사무엘이 그랬듯이

주님께서

알아서 높여주시는 결과를

받게 되는 것이

주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일 것이다.

 또한

회개 생활을 열심히 하고,

자신의 믿음의 방향을

늘 점검하는 깨어 있는 삶의 태도가 필요할 듯하다.

 

 

 

기도

 

주님

아이 사무엘 처럼

주어진 환경에서

주님이 주신 것으로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는 노력이 필요할 듯 싶습니다.

 결과는 주님께 맡길 수 있는

여유로움이 필요합니다.

주님 안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갈 방향을 잡고

나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주여

도우소서.

주님 뜻대로

살 수 있기를 원합니다.

회개할 것은 회개하게 하시고

주님 앞에

새로운 믿음의 제가 될 수 있도록

깨어 있을 수 있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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