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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적인 편함은 위험할 수 있다( 삼상 4: 12-2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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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적인 편함은 위험할 수 있다( 삼상 4: 12-22)

주하인 2008. 5. 17. 09:51

제 4 장 ( Chapter 4, 1 Samuel )

 

 

 

 

 

 
13.  그가 이를 때는 엘리가 길 곁 자기 의자에 앉아 기다리며 그 마음이 여호와의 궤로 인하여

     떨릴 즈음이라 그 사람이 성에 들어오며 고하매 온 성이 부르짖는지라 

15.  때에 엘리의 나이 구십 팔이라 그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18.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자빠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

     많고 비둔한(heavy) 연고라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된지 사십년이었더라 
 

 NIV에는  마음이 여호와의 궤로 인하여 떨릴 즈음을

심히 두려워 하였다...라고 나와 있다.

어찌 되었던 간에

98살의 노구라 눈도 보이지 않고

의자에 앉아서 생활할 정도로

육신의 기력이 쇠하여 있지만

아직 영적인 감응성은

남아 있어서인지

그곳에 앉아 있어도

마음이 떨린다.

 

 또한

전령이

아들이 죽었음을 얘기할 때가 아니고

하나님 궤를 말할 때

자빠져 목이 부러졌다는 것을 보아서

그의 영적인 상태는

아직은 타락한 듯 싶지는 않다.

 

 문제는

나이가 들어

눈이 쇠하고

움직임이 게을러져

의자에 앉아서 생활할 수 밖에 없고

비둔한 것

즉 heavy, 즉 비만한 것으로 보아

깨어 있지는 못한 상태로 보인다.

 

 영적인 나태함.

 

 영적과 육적인 소욕은 양립하지 못한다고 한다.

배가 부르면 기도가 잘 안된다.

배가 부르면 잠이 잘온다.

몸에 살이 붙으면 자꾸만 눕고 싶다.

 금식은 몸을 쳐서 주님의 응답을 받기 위한 영적인 노력이다.

이처럼

몸과 영혼의 상태는

서로 반 비례 하는 게 보통이다.

 

 엘리는

그 제사장 생활 동안

큰 고난이나

대사가 없었다.

 사무엘이 임신되기 전부터

그가 크고 남들에게 칭찬을 받고

나이 98세 될 때까지

자식으로 인해 질책 받은 것 이외에는

고난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오질 않는다.

 나이 들어도

문 앞

길 옆에 한가로이 앉아서

한가로이

살만 찌게 되는 그런

평안한 삶을 살았다.

 

 대부분

이러한 평안한 삶을 바란다.

무병장수

자식들 잘크고

돈이 잘벌리면

이게

이 땅에서

한 세상 잘 살았다고 바라는

그러한 가치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게 정말 행복이 맞는가?

엘리는

목이 부러져 죽었고

자손은 결국 ..

 

 이것을 레위 제사장 일가의 특별한 이야기라고 볼 수가 있는가?

 

평안할 때가

가장 위험할 때이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축복을 받고

물질이 많아지며

믿음이 나약해져 간다.

 유럽이나

미주..

한국도

어려울 때는

믿음이 뜨거웠었다.

그러나,

잘 살고 물질이 풍요해지자

교회는 날로 텅 비어 간다.

금요예배는 옛 말이 되어가고

새벽 예배를 나가는 자를 비웃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에 따라

사람들은 날로 강팍해져간다.

 

꼭 고개 부러져 죽는게 무서운게 아니다.

하나님의 궤가 빼앗기는게 무섭다.

엘리도

마음 한구석으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는

기본 심성이 되어 있다.

그러나,

그가 나태하여지자

자식들이 타락하고 죽어가며

자신도 결국은 죽지 않았던가?

 

뱃살은

영혼의 타락과 비례한다.

 

 

적용

 

1. 고난은 유익임을 명심하자 .

  고난은 그리스도의 뜻에 참예하는 것이라 베드로 전서에서 묵상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난을 받을 때

참으면 하나님의 영광이 머리 위에 있다고 나와 있다.

너무 편한 것은 위험하다.

 

2. 깨어 있자 , 주하인.

 틈나면 기도하자.

 틈나면 묵상하자.

 좋은 영적인 교류가 필요하다.

 

3. 성경 여섯 장 읽겠다.

 

4.  원우회를 위해서 기도한다.

 

 

기도

 

주님

너무 편한 것은

주님이 원하는 게 아님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전 쉬고 싶다는 생각이 늘 머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주님은

지나친 쉼은 원하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실은 다시 기도원에 열심이며

마음 한구석이 든든함을 느낍니다.

다른 분들과는 달리

어쩔 수 없는

주님의 간섭 안에 있어야  할까 봅니다.

그게 한편으로 힘들지만

한편으로 기쁩니다.

다른게 싫지만

싫지 않습니다.

싫지 않은 부분이 더 커지게 하소서.

주님.

엘리의 나태함을 이제는

닮지 않게 하소서.

그것 마져 주님이 알아서 도우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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