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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짐과 앎[고후5:11-2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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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짐과 앎[고후5:11-21]

주하인 2013. 4. 10. 12:43

 

 


11.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들을 권면하거니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으니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라노라

 나는 하나님 앞에 어떻게 알려졌을까?

사람들은 또 나를 어떻게 알고 있을까?

아니..

나는 내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알려졌기를 바랄까?

그렇게 나는 살고 있는가?

 

 

16.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나는 사람들을 볼 때 어떻게 이해하여 알고 있는가?

내가 바라보는 사람들을 나는 어떤 기준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내가 규정지어 그들을 대할 때 내가 그들을 '알고 있는 기준'이

과연 정확한가?

 

 

17.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잠깐 머리를 숙여 십자가 앞에 나를 투영한 타음

내가 알려지기를 바라는 것의 중심을 바라보려 하고

내가 사람들을 '좋은 사람' 나쁜 사람 구분하는 '알고 있는 ' 기준점을 생각해보려 했다.

정확히는 아니지만 막연히 짐작이 가는 바가 있다.

 

나는 많이 탈피했지만

아직도 하나님 앞에서 내가 행한 '실적'이나

하나님 앞에서 좋은 점 등을 들어

하나님이 날 사랑하실 거란 막연한 생각이 남아 있고

또 세상을 바라보고 주위사람을 '알려는 기본'에는

그들이 나에게 잘하여 주는 가 못하여 주는 가가 기준이 되는 것 같은

그러한 느낌이 든다.

그거.. 어쩌면 당연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요새 '안양시 도서관'홈페이지에 들어가 'E book'을 빌려다 보고 있는데

그게 참으로 쏠쏠한 재미가 있다.

스마트 폰에 다운받아 맘껏 빌려다 보고 아무 때나 반납하니 좋다.

바로 전까지는 교보 문고에서 사다 봤는데

이 e book은 서재에 차곡차곡 쌓이는 진짜책보다는 실적을 눈으로 누리지 못하고

종이책이 주는 질감을 누리지 못하는 단점은 있지만

빨리 빨리 간편하게 보는 재미가 있어서 좋다.

그 책 중의 하나에서

사람은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이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 못해주는 사람'일 뿐.. 이라는 명쾌한 분석을 하고 있다.

 

오늘 내가 세상을 보는 눈은

역시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알려하고 있다는 경향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도 역시

나는 그 분에게 좋은 신앙인으로 알려지기를 바라고

그 분에게 사랑받는 자로 알려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내가 그 분에게 해올리는 '약간의 충성심' 만이라도 (이것만도 많이 발전한 것이다. .. ^^;;)

주님의 사랑의 특성상 나를 받아 주시고

그래서 나를 사랑하는 자로서 인식하고 계실 것이란...

그분에게 그렇게 알려지기를 원하는 바가 내 안에 있음을

눈감고 잠시 묵상하려는 순간 깨달아 진다.

 즉, 육신의 실적으로 '좋은 자'로 알려지는 조건을 삼는 다는 이야기다.

 

오늘 말씀 중에 '육신을 따라 알다'라는 주제가

외적인 것,

그 실적 위주의 ,

얼마나 많이 해드렸는가

얼마나 하나님과 타인에게 ,

또 나에게 타인이 해주었는가에 따라..

나의 '보는 눈'이 결정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듯함을 알았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신다.

그냥 날 '나' 자신으로 보신다.

일단 예수님의 구원을 받은 '나'

그 안에서 보이는 나의 하나님으로 통해 기뻐하는 자로서의 '나'를 보시는 것이다.

그것... 돌아보면 내가 내 자식들에 대하여 안그럴까?

그들이 잘하면 더욱 기쁘겠지만

그냥 그들은 내 자식이다.

그것으로 족하다.

"나는 그렇게 그렇게 주님의 사랑하는 아들로 알려졌다. "

너무도 당연한 것이지만 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내 영혼 속에 깊이 받아 들여야 한다.

그리고 자유로와야 한다.

 

 타인에게도 마찬가지다.

난 주님의 선택받는 사랑받는 자다.

그것으로 족하다.

그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바에 맞추어 조금 더 잘해주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내 존재 자체는 그들에게 결국 선이 된다.

난 .. 이제 내 인식 뿐 아니라

그들에 투영되어 왜곡되어 돌아오는 반향에 대하여서도

그리 흔들릴 일이 없다.

난.. 나 자체로 족하다.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

 

그리고 타인들에 대하여서도

하나님이 그처럼 사랑하사 '예수 그리스도 '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낼 만큼

사랑할 가치가 있는 자로 이해하고 알아가야 한다.

아직 말의 유희처럼

깊이 가슴에 오지는 못하지만

내게 잘하는 자,

내 전도하는 말에 쑥쑥 빨아들이는 자들만 좋아하려는

이 육신의 반응에 따라 '알려는' 이 어이없는 인지력을 바꾸어야 한다.

 

아직은 그리 가슴에 깊이 오지는 못한다.

그러나 말씀을 통해 조금 깨닫게 되었으니

그 "알려짐과 앎"에 대하여 조금 더 깊이 묵상하고 인식하여야 한다.

그래야 더 깊은 자유를 누릴 수 잇을 듯하다.

 

 

주님.

귀하신 제 아버지/

오늘의 깨달음을 가슴깊이 누리게 하사

주님 안에서의 자유..

세상을 향한 밝은 눈과 담대함을 누릴 수 있게 하소서.

내주 예수시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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