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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토피 청년을 가장한 예수님(갈1:13-24) 본문

주변 얘기

아토피 청년을 가장한 예수님(갈1:13-24)

주하인 2005. 8. 19. 12:21
2005.08.18 9시 못되어..
 

 저녁이다.

 

 

 

집사람과 권사님, 사모님은 시장통 과일가게에서 수다를 떠시기에 먼저 (지하에 있는 아주 자그마한 ) 우리 교회를 향해  내려갔다.

 

 머리가 더부룩한 어떤 남자 청년아이가 고개를 푹 처박고 의자에 앉아서 훌쩍 거리고 있었다.

 

의외였다.

우리교회는 아주 조그마한 교회라서 청년부라면 목사님 아들 딸 하나 밖에 없는데...

등치로 봐서 그들은 아니고 머리통 크고 머리가 부하며 키큰 거로 봐서는 우리 첫째같은데, 그 아이는 이 저녁 혼자 여기와서 은혜 받을 사람이 아닌데.. 누굴까?

 

잠시  그 젊은 청년의 깊은 영성에 감동하며 주님께 인사드리고 눈을 떳다.

 

그런데,  아니었다.

 

 교회의 불은 어두컴컴했는데...

대뜸 봐도 어수룩한 행색이었다.

 

젊은 청년은 맞긴 맞지만 내 아들은 아니었다.

그리고 훌쩍거리는 것은 눈물이 아니고 콧물이었다.

 

엥..

이것은 교회만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신세대 노숙자인가?

순간 머리 속을 몇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하나는 성서적 행동 양식에 대한 검토였다.

'거지를 예수님으로 보라 ~! '

'아냐.. 상습적 구걸 행위는 나쁜 길... '

 

또하나는 성서적으로 그를 대해도 10여명의 최소규모를 자랑하는 교인수를 가진 교회에서

어찌 봉사의 달란트를 감내할까?...  등의 현실적 고민이었다.

 

그러다가 '성서적 대응'과 '주님이 하시겠지'하는 마음으로 결정을 내렸다.

 

마음을 순간 정하고 나서 차분히 태도를 결정하였다.

 

총각에게 조용히 어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가를 물어 보았다.

 

 

사연인 즉 이렇다.

 

나이는 21살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전에 안양 살았었고,부산에 살던 중 부모님의 이혼과 더불어 8개월 전에 직장을 구해 나왔다.

 

3개월간 모진 고생을 하며 직장생활을 하던 중 사장이 임금체불과 더불어 폭행을 가했단다.

그래서 견디다 못해 대들어 같이 싸웠단다.

그게 사건이 커져서 안양 교도소에 수개월 구속 되었다가 나온지 한달이란다.

 

그런데, 나와보니 아버지는 여동생만 데리고 이사 가버려서 연락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자리를 알아보니, 아무데도 아토피 환자를 써주는데가 없다고 하였다.

 

쉼터를 알아보니 20살 이상을 받아주는데는 어디에도 없었다.

목욕도 못하고 1달 간을 거의 길거리에서 쪼그려 앉아서 자다보니 냄새도 나서

더더구나 그랬단다.

 

 얘기를 하던 중  집사람 일행이 교회 부엌을 뒤지더니만 놀래서 성전으로 들어왔다.

나랑 대화를 하더 그 청년이 쌀을 씻어서 김치만 가지고 밥을 해먹고는 엉망으로 방치해 두었던 모양이다.

허겁지겁 교회로 들어와 불을 켜보니 나랑 대화를 하고 있는 그를 발견하였다. 

 

불을 켜고 본 그는 180정도에 잘생긴 청년이었다.

그러나 반팔티에 반바지를 입고 콧물을 흘리고 있었다.

몸은 얼굴 부터 손등까지 많이 긁어서 태선화되어 있었다.

 눈물을 머금은 콧물같은 콧물은 감기로 인한 콧물이었다.

 

그러나, 눈은 맑았다.

목소리도 차분하였다.

 

 뭔가 한마디 하려다가 청년의 얘기를 같이 듣게 되었다.

 

청년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청년은 나름대로 사회복지센터로 이곳저곳 구제해줄 방안을 찾았었으나 아무데도 길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초등학교 때 다녔던 교회를 생각하고 지하에 있는 우리 교회 쪽으로 내려오다 보니 문이 열려 있어서 - 지하라 습기가 너무 많이 찬다.   카타콤처럼.. 그래서 문을 열어놓고 다닌다. - 뒤져 보니 쌀이 있고 김치 냉장고에 김치가 있어서 정신 못차리고 밥을 해먹었던 모양이다.

양푼 큰 곳에 김치만 넣어서 볶아 먹었단다.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자니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지갑을 뒤져 2만원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주었다.

 

그는 안받으려 했다. 

그게 감사했다.

아직은 자기의 의지로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기특햇다.

 

권사님은 없으신 호주머니를 털어 4000원을 툭하고 건네 주었다.

 

그는 너무나 미안해 했다.

 

그것 가지고 목욕하고 주민등록증 새로 만들고 취직자리 다시 알아보라 했다.

 

그리고 마침 교회에 성가대 입으려고 준비했던 깨끗한 티 몇장이 있어서 꺼내와 입으라고 건넸다.

 

그는 너무 머쓱해 하며 가려고 했다.

 

잡았다.

그리고 둘러 앉았다.

 

우리 넷은 정말 눈물로서 그를 위하여 중보를 했다.

 

 

 

갈라디아서 1:13-24)

13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 my previous way of life )
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16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 나를 출생 때 부터 특별하게 성별하시고 그의 은혜 가운데서 부르신 그 하나님

께서 내 안에 계신 그 분의 아들을 이방인들에게 전파하려고 기쁘게 날 부르셨을

때, 나는 어떤 사람도 상의하질 않았다.) 

 

 

 이 아이의 새로운 startline , 때가 되셔서 태로 부터 선택하신 하나님이 , 그 속에 들어가게 하신 예수님과 합작하여 , 성령님의 파워로  이 아이의 모든 걸 변케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그는 갔다.

 

 

가고 나서도 남은 우리들은 아무 소리 못했다.

 

뿔뿔이 자리에 나누어 앉은 채로 오랜 시간을 흐느껴 울었면서  기도했다.

 

 

참 희한한 느낌이었다.

 

기도하는 중에 계속 저 아이는 '예수님'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아이의 육신은 예수님 때문에 우리 교회에 들르게 되었고 자칫 험한 세상의 풍파에 원망하고 차갑게 변해버릴 깊은 상처에 아주 잠깐이고 적은 분량이지만 우리 교회에서 그나마 '사랑'을 받았다.

 예수님 덕분에 받은 사랑으로 다시금 초등학교 시절의 믿음을 회복할 기회를 또 받았다.

 

 

그는 나를 포함한 우리 교인들에게는 깊은 중보의 기회를 주었다.

나는  고백하건데... 많은 부분 중보 대상자를 위해 깊게 공감하질 못했었다.

 

그런데, 어제 저녁은 네 사람 모두 한마디 입을 떼지 못하고 한시간 이상을 마치 각본에 의해서 중보를 하는 것인양 흐느끼며 기도를 했다.

 

희한했다.

 

그러면서 기도하는 내내 영혼 속 깊은 곳을 후벼내는 긍휼이 여김이 터져나왔다.

 

또하나...

 

난, 공부를 잘못하고 반항적인... (세상적인 눈으로 봐서는 둘도 없이 착한) 큰아이를 이상하게 가슴깊이 이해 하려 하지 못했다.

 

잘못만 눈에 띨 뿐, 그아이의 장점에 대해서는 생각하려 하지 않았다.

 

그게 그제 밤에 한번 화로 터져나올 뻔 한 적있다.

다행이도 잘 참았지만...

 

요새.. 점차 그런 깊은 부분을 기도로 다스리도록 주님께서 인도하고 계신다.

회개 기도하고 주님에게 맡기는 연습을 하다 보니...

주님이 어제는 특별한 체험을 하게 하신 것이란 생각을 했다.

 

 

저 아이는 내 큰애보다 단지 2살 많을 뿐이다.

나머지는 우리 애와 비슷했다.

체격 조건.

생김새..

순한 말투..

 

 

기도하는 도중 내내.. 우리 첫째와 오버랩이 되어 .....눈물이 막 쏟아져 나왔다.

 

내가 저 아이의 아버지와 뭐가 다른가?

현실적으로 버리지만 안했지.. ....사랑을 주지 못하지 않았던가?

 

주님이 회개를 시키셨다.

 

그리고 또하나의 생각을 허락하셨다.

 

이혼가정이 늘면서 어쩔 수 없는 고통을 겪는 청소년들...

 

불가항력적으로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환경을 이 사회는 모른체 하고 있었다.

 

비록 그 수가 많지는 않고 드러내 놓을 만큼 멋진 봉사는 안될지 몰라도 저런 환경의 청년들을 진심으로 끌어 안을 수 있는 봉사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제의 청년의 예기치 않은 방문은 틀림 없는 '예수님'의 작품이었다.

 

 

 

 

젊은 시절의 폭풍에 당황하지 말라. 앞으로 더 좋은 시간이 올 것이다.

 - 제임스 돕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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