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아버지(갈4:1-11) 본문
05.08.26(갈4:1-11) 아버지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자식을 기르다 보니 어렸을 때는 걱정도 많았다.
도처에 위험 만 보이니...
그래서 아이들에게 잔소리도 많이 했다.
이것..해라.. 저것 하지마라. .요렇게 하면 된다. 조렇게 하지 마라.
아들들이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덕분에 그녀석들 아직 교통사고자지 않고 잘 크지 않았는가?
그러다 이제 커버리니 더 이상의 잔소리는 별 의미가 없다.
잘 알아서 하니...
그 아이들에게는 잔소리 보다 지켜보고 믿어줌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규제하고 가르침보다 기도하는 모습 보여줌이 필요하게 되었다.
때가 차매 " 그 아이들에게는 사랑을 베푸는 방법을 가르쳐주어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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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큐티에서 한분이 말씀하셨다.
'아바 아버지'라는 말이 어찌 그리 다정하게 들리냐고..
몇년전에 지인과 식사를 하면서 상대편 분께서 2년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왜이리 매일 같이 번뜩 번뜩 생각나는 지 모른다는 소릴 들으면서 의아해 했다 한다.
그러다가 4년전에 그분의 어머니도 돌아가셨다 한다.
처음에는 덜하다가 4년이 지난 지금 , 그 분의 말씀처럼 본인의 뇌리에도 아주 짧게나마 매일같이 그리운 어머니의 영상이 스치고 지나가며 많이 보고 싶다고 한다.
특히 결단을 내려야 할 필요성을 느낄 때 그렇다 한다.
어머니가 어렸을 적 보여 주셧던 무릎 꿇고 기도하던 모습이 그리 생각난다고 하신다.
그러면서 '아바 아버지'라 부를 때 주는 그 그리움이 이런 감정일 것이라고 하며 약간은 허탈한 표정-그리움-을 지었다.
참으로 많이 부러웠다.
사랑 받고 컸음을 기억하고 있는 행운.
그리하여 '아바 아버지'에 즉각적으로 그 사랑을 연상할 수 있는 가정.......................
아바 아버지를 자연스레이 부르며 연상할 수 있는 대상이 있어서 그렇구나... ...
이러면서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아침에 둘째를 차안에서 혼냈다.
아이의 거친 말투에 대해...
율법으로만 애를 키운다.
사랑이 좀더 필요함을 알면서도.. .
애에게 줄 사랑의 모범이 일률적이게 있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안아주고 평안히 해주고 인내해주고 감사하는 마음을 주도록 해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침.. 주님은 다시금.. 사랑에 대해 확인시켜 주셨다.
눈물이 핑 돌았다.
괜히 코 끝이 매워지고 .. 목소리가 잠기려 했다.
'아바 아버지'
우리 하나님이 ...
내 깊은 속을 감싸 주시는 것을 느낀다.
나에게 다시한번 쓰다듬고 지도해주심이 느껴진다.
주님이 주시는 사랑으로 내 이웃과 자식을 더 감싸야지...
그 아이들에게 아바 아버지의 실체를 느낄 모형을 보여야지....라고 다시금 굳은
결심해본다.
하나님의 작품을 묵상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추론해 낼 수 있다.
- 토마스 아퀴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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