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다시 힘내자(갈3:1-9) 본문
1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2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
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4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1. 묵상
1) 눈앞에 밝히 보인다. (영어 : 이전에
바로 그 눈 앞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을 본)..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예수님 돌아가시고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에야 사도바울도 영접하였고, 갈라디아 교인들은 그보다는 훨씬 더 시간이 지난 후에야 영접하였다.
그런데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눈앞에 직접(very eyes) 보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수사어에 의한 과장적 표현 치고는 너무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 밑 구절에 '성령' 얘기가 나온다.
그렇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이야기이다.
가장 뜨거운 '사도행전' 시대의 사람들이 기적이 안일어났다는 것은 최소한 기독교
인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무지한 이야기 이지 않은가?
아마도 이랬을 것이다.
사도 바울께서 '갈라디아' 지방에 처음 도착했을 때 사람들은 재미있는 구경거리 - 텔레비젼, 극장, 인터넷 없는 세대이므로- 찾아서 하나 둘 모여 들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그 입에서 불같이 나오는 소리를 들은 선택 받은 자들은 넘어져 버렸을
것이다.
그 자리에서 성령체험하게 된 것이다.
그런다음 사도 바울의 말씀 공부에 따라서 사람들은 정신을 못차리고 빠져 들어가게 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공부하는 그들의 머리 속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하나도 빠지 없이 심상(心想)으로 그려
졌을 것이다.
그리고 틀림없는 그 심상은 강하게 각인이 되었을 것이고, 갈라디아는 강력한 주님의 교회로 거듭나게 되었을 것이다.
성령의 은사 !
동시 다발적 체험
2) 갈라디아 지방 교인의 영적 상태 짐작
'불처럼 바람처럼' , 강력한 성령의 임재가 처음에 임했을 것이다.
엄청난 기세로 전파가 되었을 것이고 속속들이 이적과 기적을 체험하였을 거이며 날마다 뜨거운 부흥의 물결이 일어났을 것이다.
사도바울의 갈라디아서 첫 장부터 지금까지 강력한 톤으로 증거를 하는 것을 봐서도 알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성령'의 불길 같은 인도하심에 의해서 가능한 일일 것이었다.
이러한 뜨거웠던 열정은 "3절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에 잘 표현되어 있다.
이처럼 성령으로 강하게 체험되었던 갈라디아 교회가
서서히 율법과 육신적 정욕에 의해 서서히 시들거리고 차거워져가고 있었다.
2. 적용
지금도 선교지역에 가면 얼마든지 기적이 많이 일어난다고 한다.
몇 주일전 직장내 화요모임에 나가 앉았다.
바로 전 주에 아프가니스탄에 한달 간 단기 선교
나갔다온 한의사 형제가 있어서 간증을 하였다.
착오로 인하여 한달이나 옷가지 물품이 늦게 도착하여서 그냥 가지고 있는 도구로만 진료를
하였다 한다.
옷도 한벌 만 가지고... ㅎㅎㅎ
그런데 기적이 마구 일어나는 데 귀가 안들리던 사람들이 침 몇방에 들린다고 하고 못걷던 자가 일어나서 걷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엔 자신들도 처음보는 기적에 놀라서 어쩔 줄 몰랐는데 그런 기적이 시술하는 형제들 전부에서 다반사로 일어나자 나중에는 귀머거리가 오면 서로 귀찮아서 '야 ~` 네가 듣게 해줘'라 농담할 정도였다고 한다.
나도 9년 전 12월 말 교회에 끌려나갔다가 눈물 쏟은 후부터 불면증이 없어지고
마음이 둥둥 떠다니더니 얼마 후 2갑씩 피우던 담배가 나도 모르게 없어지는 '성령'체험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이 둔해져 버렸다.
그 뜨겁던 초창기의 열정은 어느새 사그러 지고 아무리 대단한 성령체험을 듣고, 간증을 들어도 "글쎄... 그랬던가... 그렇군.. 그럴수도 있겠지.. 설마.." 하고 끝내버린다.
어느새 마음은 굳어 있고 머리만 부풀어 있는 기형아가 된 듯한 느낌이다.
돌아다 본다.
주님의 강권적 첫사랑에 의한 성령체험이 내 육신적 욕망으로 가끔씩 더럽혀 지고 깊은 회개를 못했던 적이 많다.
주님을 좀더 알고자 하는 욕망에 의해 성령의 인도하심 보다 앞서 나가며 금식, 기도회, 절제- 열정은 좋다 .. 그러나 .. 그후가 문제였다. - 를 하면서 따라오지 못하는 자들을 차겁게 정죄하기도, 스스로 자아의 만족을 만끽하기도 했다.
오늘 사도 바울께서는 " 성령으로 시작하려다가 육체로 마치겠느냐"고 질책하신다.
갈라디아 사람들의 영적 상태를 느껴가며 마치 오늘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일견 답답함을 금할 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이처럼 사랑하셔서 다시금 다시금 다져 주시는 우리 귀한 주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어 마음 한구석은 포근하기도 하다.
또, 큐티를 아니고는 이러한 기쁨과 기회와 행운 - 다시 돌아갈 수 있는 - 을 얻을 수 없음을 생각하면 이 행운이 참 감사하다.
나눔방 여러분 같이 회복하고 주님 곁 가까이 같이 갑시다. 화이팅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신다면 우리 역시 자신을
용서해야 한다. - C.S.루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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