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아마샤 보다는 아모스로(암7:12~18) 본문
화려한 손님 보다는
벗 들로 스스럼 없이 지칭해주시는
소박하지만 마음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친구들도
또 사랑스럽습니다♥
12. 아마샤가 또 아모스에게 이르되 선견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에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에서나 예언하고
세속의 대표적 상징인 거짓 선지자인 아마샤가 진짜 선지자 아모스에게 비아냥 댄다.
' 네 나라에나가서...
예언하든지 떡먹든지 맘대로... '
14. 아모스가 아마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라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
선지자 아모스는 자신은 선자자라기 보다 목자나 뽕나무재배자라 한다.
겸손한 자기 인식.
어쩌면 실제일지 모르지만 그 겸손을 하나님이 들어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사람.
아내를 어제 입원시키고
새벽같이 수술을 준비하고 휠체어에 태워 수술방에 들여보내는 순간
나도 모르는 복 받치는 눈물이 쏟아지려 하여
겨우 겨우 애를 써 참으며
아내를 수술실로 들여보내 놓고는
아들과 장모님 눈을 피하여
멀찌기감치 대기실로 얼른 피해들어가고도 한참이나 자제가 어려웠다.
난 이 나도모르는
요 몇번의 눈물의 이유를 생각하 보았으나 알길이 없다.
하지만 확실 한 것은 순수한 깨끗한 눈물이라는 것이다.
아내를 향하여 내가 그동안 잘못 했던 것에 대한 회한이나 반성도 아닌것 같다.
그렇다면 이리개운할수 없다.
혹시 내 신세 한탄일까?
그렇다면 몸이훨씬 더 무겁고 어두울 것이다.
두려움일까?
그리 생각하기에 나는 의학적 상식을 너무 많이 아는 의사고
그런 오래되고 친숙했지만 이제는 주님말씀앞에서 사라져 가는
오래 유지되는 그런 '두려움'은 더더구나 아니다.
계속 고백해오다시피 서운함의 흔적인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깊고 맑은 감정이다.
사람이 깊은 카타리시스를 맛볼 때는 순수한 눈물로 웃거나 감동 섞인 통쾌한 웃음을 웃을 때라한다.
특별히 순수한 눈물 속에 섞여 흘러 나오는 눈물 속의 독소는 벌레 상당랑을 죽일 수있는 체내 독소 제거 역할을 한다는 글 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있다.
내 .. 아내에 대한 울음은 나도 모르는,허락된 타력적인 그런 눈물인 것으로 난 느껴졌다.
타력~!
하나님의 성령~
아내의 아픔을 허락하셔야하는 주님의 그 사랑.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우선 순위를 두고사는 내 아내.
기도의 용사.
나를 위해 타인을 위해 자신을 낮출 노럭을 하는 지혜의 아내.
내어머니,할머니, 나와 우리 가족과 사촌들까지의 예수님 영접을 이루어낸 기도와 인내의 내 아내~!
그 아내의 숨겨졌던 무서운 질병을 미리 발견하게 하심으로 잠시 고통 을 허락하게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아픈 가슴을 감성어린 내 영혼의눈을 통해 눈물 나게 하심으로 그분은 내 오랜 아픔이었던 아마샤같은 뷸신 시절의 독소를 뽑아내시고 계시는 것 만 같았다.
그렇다.
정말 기도로 치유가 되어버렸다면 난 어쩌면 아모스님이 오늘 '난 선지자라기 보다 목자요 뽕~'이란 소리는 안하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나..
수술하게 되면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 실체에 조금 더 맞 닦드리게 되었다.
어려울 때 진정 한 복작거림을 얻지 못함은 내 행실의 잘못된 결과였음을남들을 원망하는 대신 들여다보고 받아들이게 된것도 하다님이 내가 뽕나무 농군 임을 부끄랍지 않게 선포하게하시는 것만같다.
그러면서 다른 얻은 것도 많다..
아마샤..
세상의 위선.
거짓 자아로 자신이 이룬게 온 우주인양
그 기득권- 자리,주위의 사람들,권세,인정... -을 놓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기 보다는
비록 농군이나 목자같은 자신 이지만 하나님 안에서 쓰임 받음을 그냥 기뻐하며 ,
그런 적은 자신을 기쁘게,
오늘의순수한 눈물을 허락 받음과 ,
등뒤로 햇살 비취이는 회복 중인 아내가 입원한 S병원 대기실에앉아서 고요히 스마트폰으로나마 글을 올리고 있는 현재의 내가 더 다행스러이 느껴진다.
참 감사하다.
여러가지..
불신의 아마샤만큼은 아니지만 기도해주고 염려해주고 전화주고 눈물 흘려주는 사귄지얼마않되는 소박한 우리부부의 동역 자들 이 참 귀하다.
기도
귀하시고 너무도 감사한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주님 안에서 회복되어가는 내 자신이 너무 감사하고 자랑스럽고 사랑스럽습니다.
아마샤 보다는 아모스님 편에 서게 되고 그런 내 자신을하나둘 씩 깨달아가고 회복되어감을 느낌이 더욱 놀랍습니다.
주님!
진정으로 나이들어감이 무섭고 두려움은 세속적인 아마사의 가치에 함몰되어가고 그런 자신을 알면서도 세상의 그러함에 그냥 터내려가며 비교하고 허덕이다가 불행 중예 죽어갈 영혼의 운명을 이리 캐닫게 하시거 받아들이고 아프지만 주님 앞에서 자꾸 낮아져 순수한 눈물과 진정한 평강을 회복하는 아모스님의 그 영혼의 기회를 허락하셔서 참으로 감사함다.
주님 영접하게 해주심이 제 인생의 영광이자기적의 최고입니다.
아울러 더 간구할것은 목자의 나, 낮은 나를 인정하고 기뻐하게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구약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돌아볼 때(민1:1-54) (0) | 2011.03.01 |
---|---|
더욱 말씀에(암8:1~14) (0) | 2011.02.18 |
뇌동맥류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암 7:1-9) (0) | 2011.02.16 |
요셉의 환란과 다윗의 찬송( 암 6:1-14 ) (0) | 2011.02.15 |
모두 나를 위하여 (암4:1-13) (0) | 2011.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