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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예수님과 결혼하기 위하여(요8:1-1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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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예수님과 결혼하기 위하여(요8:1-11)

주하인 2006. 1. 26. 10:24

1 예수는 감람 산(Mount of Olives)으로 가시다

 

 저녁이 되자 감람산으로 가신다.   

집도 아니고 여관도.. 호텔도.. 여인숙도.. 친구도.. 식구도 없는 '산'으로 ... !!

 

'여우도 쉴곳이 있되 인자는 ...' 하시며 한탄하시던 구절이 생각이 나 마음이 찐~하다.

 

주님 예수께서는 비록 신이시지만 죄악성 만을 빼놓고 모든 인성을 다 지니신 분이시다.

감람산... 척박한 곳으로 향하는 그 발길이....

비록 주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평강은 누리시겠지만.. 향하는 발길은 외로움이 느껴진다.

 

 누구를 위하여 그 분은 저 '외로움'과 장래를 다 아시는 고통의 길을 터벅 터벅 가셔야만 하셨다는 말인가?

 

십자가의 고통은 하루의 엄청난 고통이지만..

33년의 시간은 끊임없는 외로움과 장래에 대한 불안- 기도로 막으셨겟지만..-에 대한 도전을 막아내시는 힘겨운 시간이셨을 것이다.

 

 

 

2 아침에(At dawn  새벽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아침 일찍 부터 주님이 산에서 내려와 성전에 들어오시니...

수많은 무리들이 - 역시 여관, 여인숙.. 보다는 노숙햇을 듯한 가난한 자들의 무리 들-이 성전에 몰려들었다.

 그들은 TV,인터넷, 영화, 신문, 비디오, 잡지, 노래방, 룸사롱,...의 문화생활이라곤 전혀 없던 시절에 오직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신비와 기적에 대한 소문 만을 듣고 몰려 들고 있다.

 

 주님은 이들에게 성전에서 '쟁론'을 유발할 지라도 주님의 말씀을 전하시는 것이다.

허락된 짧은 시간에 한사람이라도 더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가르치신다.

 

 

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분명히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여인을 끌고 들어왓다.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초등학교 운동회 시간 '주번'으로 노란 주전자에 물을 떠가서 운동장 가에 쭈구려 앉아 바닥에 물을 쪼르르 붓고 앉아 손가락으로 글을 써본 기억도 있다.

 

 그러나.. 그 글이 가까이 쳐다본들 누가 알아볼 수 있는 글씨를 형성 하였을까?

 

아마도 우리 주님은 굽혀 앉으신 이유는 두가지 였을 것을 짐작케 한다.

 

 

 우선 시간을 주시기 위함이다.

흥분하기 시작하는 군중 들에게 자신을 성찰할 시간적 기회이다.

감정의 홍수에 빠진 자들에게 아무리 이성적 설명과 변론을 해도 통하는가?

차분한 시간과 내적 성찰이 필요하다.

비이성적 군중이 내적성찰이 가능한가?

주님이 계시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 분이 시간을 주면 더 가능하다.

 

 

또, 가만히 계신 예수님을 바라봄이 어떤 현상을 일으키는지 체험케 하기 위하심 !!!

 

 하나님이 세상에 내려 오셔서 인간의 몸을 입고 바로 앞에 실체로 계시다고 상상이 되었다.

난..  군중 속에 일부분으로 그 분을 가운데 두고 빙둘러 앉아서 공터 중앙에 계신 그 분을 내려다 보고 있다고 상상이 되었다.

 쪼그려 앉으신 그 분이 사람으로 보일 것인가?

더구나.. 그 분은 무언가 메시지를 주기 위한 목적으로 쭈그려 앉아 계시다.

 

그 분 주위에 '오로라'같은 것이 어른 거리지 않았을까?

알 수없는 엄청난 기운이 내 심령을 치지 않을까?

천사가 어른 거리고 호위하는 것이 보이지 않지 않을까?

세상이 갑자기 고요해지고 성령의 안위하는 '웅~웅~'소리만 머리속에 들리지는 않았을까?

 

 벌거벗은 임금 처럼....

오직 착한 자의 심령에 착한 정도에 따라 '천국' ~ 약간의 흔들림 만 느껴지는 체험들이 각 사람의 심령에 울려 퍼지지 않았을까?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을 당시 동행하던 사람들에게는 '웅웅'거리는 소리만 들린 것처럼.. 사람마다.. 달리 보였겠지만..

 

그 짧은 시간은 사람마다의 가슴에 '천둥처럼' '천지 개벽처럼' ..  약간의 흔들림만.. 이라도 심정적 변화를 가져왔다.

 

 

7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그래도 자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들...

내 속의 심한 죄성...이 요동친다.

 

'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 ' 어리석음을 펼치자...

 

주님께서 '일어나셔서'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주님 앞에 나가 십자가 앞에 무릎 꿇을 때..

주님이 느껴지면 내 가슴의 불안과 죄책감.. 죄.. 툭~툭 .. 소리를 내며 터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도 안되는 강한 요동이 있을 경우...

어느때... 주님께서 '얘야...'하시는 소리가 들릴 경우가 있다.

 

 

 

8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리고는 주님은 마치 아버지가 아들의 답을 기다리시는 것 처럼 가만히 부드러운 눈길로 쳐다보시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의 무엇인가 깨닫기를 바라시면서 얼굴에 미소를 띠우시고 정말 다정한 눈빛으로 가만히 보시고 계신다.

 

 

 이때가 그런 것 같다.

군중이 당신의 한마디 말씀을 듣고 다시 '십자가' 예수 앞에 나와 앉아 묵상함으로 깊은 틀하나가 깨져 나가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이다.

 

 어떤 틀인가?

비록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직접 데리고 와서 정죄하지만.. 군중 모두의 심령에 똑같은 손가락질과 정죄감이 있다.

 

 

9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분명히.. 모두 다 나갔다.

주님 예수님께서 한마디 하시고 쭈그려 앉으니...

모두가... 나갔다.

 

서기관만도.. 바리새인 만도... 아니다.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온자 들 조차...

 

 사람들은 누구나 원죄가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지각체계'의 틀이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틀 속에 남들을 집어 넣는다.

 

 이 보편적이고 인식하지 못하던 바리새인들처럼 적극적으로 짓는 죄이던....주님 앞에 나와서 십자가를 바라봄 만이 죄를 해결하는 유일한 해결책이다.

 

내가 몸부림치고 노력 안해도 된다.

그냥.. 주님 제가 이랬습니다.

그리고 그냥 바라보면..

그것들은 어느샌가 사라져 버리고 없다.

그리도 요동치면서

나의 삶을 흔들던 불안과

손가락질과

자책과 혼돈은 ...

사라져 없어져 버리고 내 앞에는 '은은한 주님의 향기(fragrance of Jesus)' 만 맡아진다.

그리고 그 분의 고요한 음성 만이 존재한다.

아..

신랑 예수님..

가슴 떨리는 기쁨 만 있을 뿐이다.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그 분이 일어나서 내 손을 잡는다.

이 때쯤.. '보라'라는 CCM 곡이 배후에서 흐르면 더 멋질 것 같다.

'보라..

너희는 두려워 말고..

보라..

너희를 인도한 나를..

보라..

.............

너희를 치던 적은 어디있느냐...

너희를 짓누르던 원수는 어디있느냐... ?

보라.. 하나님 능력을 .. !

보라.. 하나님.. .......................♬ "

(눌러주세요.. 누미님 찬조출연 )

기도

 주님..

오늘은 주님 예수께서

우리가 할 수없는 죄의 해결 문제에 대하여 보여 주고 계십니다.

수도 없이 우리의 영혼을 할퀴고 지나가는

죄의 문제는...

그냥

주님 앞에 들고 나와..

가만히 주님 예수님의 십자가와 .. 보혈을 바라보는

용기와 약간의 의지만 발휘하면..

어느샌가 폭풍우는 사라지고

손가락질하던 군중의 소음도 없어지고

천상천하..

오직 신랑이신 우리 예수님의

그 고요함과

그 인자하심과

그 긍휼하심과

그 평안함을 느낄 수 있게 해주신다고 말씀해주시고 계십니다.

주님의 그 고요한 음성..

주님의 그 차분한 향기

주님의 그 다정한 눈빛은

저희의 영혼에 더 할 수 없는 기쁨을 주시리라 압니다.

이제 주님 예수님.. .

알고 모르고 지은 죄..

주님 앞에 나와 해결 받기를 원합니다.

도와주시길 소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겸손한 죄인이 교만한 천사보다 낫다.

-토마스 왓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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