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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물에서 일하는 자, 깊은 풍랑에서 주님을 뵙게 된다[시107:23-4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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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물에서 일하는 자, 깊은 풍랑에서 주님을 뵙게 된다[시107:23-43]

주하인 2024. 10. 30. 07:06

부제) 일상에서 주님의 뜻을 깨달으며 사는 삶

        매일 주님 앞에서 사는 삶과 그 원리

        고난이 유익인 그 깊은 원리를 깨달음

주제에 맞추어 DAL.E3로 그린 그림

 

난 몰랐다

 

깊은 물 위에서 일하는 자들을

경외의 대상으로 바라보면서도

그들의 깊고 큰 고난이 두려워

그냥 얕은 물가에서 만 빙빙도는

그런 자의 시선만으로

나를 바라보며

그냥 그냥 그렇게 살아왔던 거다

 

그런데 갑자기

내 겪어왔던

그 수없이 많은 풍랑과 밤 바다의 괴로움이

과연 얕은 물가의 그것이 맞던가 하는 깨달음이

묵상하려 감았던

내 눈, 내 뇌리를

강하게 때리면서 밀려왔다

 

깊은 바다에서만 얻을 수 있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과

그 기이하신 생명의 일들이

어찌 내게 없다 단정할 수 있던가

 

그랬다

난 어쩌면

깊은 물가에서 일을 하는 자의 영역에

어느새 서 있을수도 있음이다

 

확실히 깨닫고 안다

말씀으로 그러셨고

은혜로 그리하셨다

 

그 깊고 무서운 풍파 속에서도

내 구하고 외칠 것은

멈추어주실 하나님의 손길이기도 하지만

 

내 영혼이 온전히

나와 같은 영혼의 밤배에 타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

내 영육혼

온전한 나의 주님이신

그 분의 등을 바라보고

모든 풍랑을 잊어버릴 수 있는 것.. 

그것이었다

 

어느새 난

 기도의 방향을

그리함으로 잡고 있었으며

어느새 또 

더 이상 깊은 밤바다의 풍랑은

내게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그 지경

 

나머지

그 모든 생명의 잔잔한 기쁨이

내 영혼을 온통 채워질 것을

오히려 기대하는 마음으로 

일생과 일상을 살아가는 연습을 

내 일상에서 점점 더

강하게 하고 있어왔음을

불현듯

알게 모르게

스스로 깨닫고 있음이었다

 

참.. 가슴이 아련하고 

마음이 푸근해지며

행복이

내 온 전신과 영혼을 채우려 함을 느낀다

 

할렐루야다

 

이제 조금 더 후면

더 깊은 고난이 아니어도

내 삶의 어떠함 속에서도 

살아계신 내 주 하나님을

자연스레이 만나뵈는

그런 날이 

곧 예상이 되어진다

 

진정

감사하다

내 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이

내 주님이시며 주인이신 것이..

 


23 배들을 바다에 띄우며 큰 물에서 일을 하는 자는

 배를 타고 큰 물에서 일을 하는...

스케일이 큰 일을 하는 자 들.

 

우리의 이 작은 일상보다

훨씬 큰 물에서 사는-아 더 정확히 ... 노는 ^^;- 자들 조차도 ^^;

 

24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들과 그의 기이한 일들을 깊은 바다에서 보나니

고난은 필연이다.

 

그리고 그들의 고난은 더 '크고' , 더 '깊다'. 

그에 따라 그들의 고통은 훨씬 그 강도가 크고 두려우리라..

당연히.. 

 

 그것을 '깊은 바다에서 보'는 '기이한 일'이라 표현했다. 

그런데...

더욱 당연히 

그 안에 내포되어 있는 본질...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이며 기이한 일'로서

더 깊이 깨닫게 될 개연성이 많음을 말씀하고 계심이다. 

 

 고난이 클수록 유익도 크다.. 

말씀을 묵상하며 떠오르는 원리다. 

 

 누구나 다 '매일'이 고난이다.

부러워하는 삶을 사는 자들에게는 더 큰 '의무'와 부담'이 있다.

그게 '큰물의 풍랑'이다. 

그 안에서 정신을 잃지 않고 제대로 사는 유일한 길은

'여호와 하나님이 하신 기이한 일'임을

어떠한 일에서도 발견해내는 것.. 즉,

"깊은 바다에서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을 보는 것".. 

그것 만이

우리가 살아서 이루어 내야할 당연한 삶의 태도.. 

옳은 인생방향이 될 것이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인생의 목적, 살아갈 이유에 대하여

발견할 개연성 조차도 없음을

말씀하고 자 하심이다 .

 

그것을 

큰 물에서 일하는 자는

깊은 바다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본다...라고

오늘 말씀에서 표현하고 있으시다. 

 

25 여호와께서 명령하신즉 광풍이 일어나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

 그 어떤 것,

심지어는 

'광풍'으로 

깊은 바다에서 

바다물결을 일으켜지는 것 조차

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즉' 일어나는 거다.

 

 그것을 깨닫게 하시기 위하여

광풍을 허락하시는 거다 .

그것을 깨닫는 순간 !

 

26 그들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깊은 곳으로 내려가나니 그 위험 때문에 그들의 영혼이 녹는도다

 비록,

삶이 우리를- 그들이, 그들이...라는 표현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ㅜ.ㅜ-

하늘로 솟구치다가 깊은 곳으로 내려가

영혼이 녹는듯 하게 하고

 

27 그들이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 자 같이 비틀거리니 그들의 모든 지각이 혼돈 속에 빠지는도다

취한 자처럼 비틀거리고

그 고난에 빠져 '지각이 혼돈에 빠지게 되어'

 

28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심하게 고통에 뭄부림 치게 되지만

 

그들, 옳은 선택을 허락받은 그들은

누구나 인생의 허락된 그 고통 - 깊은 바다, 큰 바다에 노는 스케일 큰 , 비례하여 더 커진 고통 ㅜ.ㅜ-때문에 

드디어는 더 크게 '부르짖게 ' 된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인도하여 내시고' 

 

29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
30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31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광풍과 물결'을 잔잔하고 고요하게 하시며

그들이 '평온함'을 누리게 하셔서

고난 이전 보다 훨씬 큰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 

 

 그게

원리다. 

당연한.. 

 

 그러나, 

우리..

이땅,

이 세상,

이 물질계,

이 3차원의 세계에 발을 딛고 사는 우리.

이 풍랑 치는 바다 물결위에 떠 있는 

불안정한 삶을 살수 밖에 없게 허락된 자들...이

과연 우리만의 힘으로 

잠시의 안정이 영원할 수 있던가?

 

 당연히도 

아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도

늘, 항상 그리 잊고 망각하며 살던가?

 왜 굳이 '풍랑'이 일어야 정신을 차리고 주님을 찾게 되던가?

 왜 그리 썩어나가고 일시적인 이땅의 허상들에

그리 비교를 하고 헛된 욕심으로 주님을 잊고 살던가?
 왜 지금 사는 이곳이 모두인 것처럼 매몰되어 살던가?

하늘을 펴고 땅의 기초를 정하고 너를 지은 자

여호와를 어찌하여 잊어버렸느냐

너를 멸하려고 준비하는 저 학대자의 분노를

어찌하여

항상 종일 두려워하느냐

학대자의 분노가 어디 있느냐 (사51:13)

 주께선

그 모든것, 

'허락되어진 광풍' , 물결, 깊은 바다의 공포.. 

심지어는 '큰 물에서 일하는 자 '에 대한 비교의식 조차

다 허락하신 거다 .

 

 문제는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고는 있을 수 없음,

우리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허락되어지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음을 

완전히 인식하고 깨닫지 않고는

그 어디에서도 

지금까지 되풀이 되어온 이 인생의 고통과 고난에서 

벗어날 기회와 가능성이 조금도 없다는 사실이다. 

 

 분명코

큰물, 작은 물에서 일하는 것

허락되어진 고난의 크기가 크고 작은 것.. 

그 어떤 것도 주님이 허락하신 것이시고

우리의 일상의 처하는 위치에서 

허락되어진 그 어떤 것도 

주님이 원하시는 뜻 가운데서 벌어지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풍랑은 잦아들고 고난은 줄어들며

드디어는 '평온'이 찾아들고

'기쁨', 온전한 감사의 기쁨이 찾아 들게 된다는 것이다 .

 그 원리를 깨닫는 순간,

더 이상 이 세상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흐름은 자유롭고 고요해지며'

평온해진다. 

 

주님이 허락하셨고

주님이 함께하시니

무엇이 걱정이고 

무엇이 비교가 될까?

 이 일상에서 우리를 흔들려고 다가오는 그 어떤 고난도

주님을 더 깊이 만나게 하기 위한 도구일뿐... 

그렇다면 두려움은 잠시,

곧 만나게 될 주님안에서의 '평온'과 평강이 기대가 되고

우리의 내면은 

곧 평정을 넘어선

기쁨으로 찾아들게 될 것을... 

 

 큰 바다의 깊은 물결로 인한 더 큰 두려움은

더 큰 감사와 기쁨으로 오겠지만

이 작은 삶의 반경에서 

조금은 더 작은 고난은

주님이 

주님께서 

그동안 수고 했으니.. .아니시면

너는 여리고 

더 큰 죄에 대한 더 큰 고통을 수반해내는 깍아냄이 필요없으니

그정도만 고생하거라.. 시는 위로이기도 하지 않을까?

 오늘 말씀이 많이 위로가 된다 .

 

주님... 

이 고단하고 지루한 삶에도

위로의 하나님의 말씀이 

많이도 위로가 되고 '또 움직여 살 동기'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내 주여.

 

큰 물, 

큰 풍랑은 

더 깊은 고난을 초래하고 

그 고난은 

주님을 인정하고 열렬히 간구하는 순간

더 큰 평온함과 

더 큰 기쁨으로 보응해주실 것임을

이제는 너무도 잘압니다. 

 

그 큰 기쁨을 위하여

더 큰 고통을 기대하는 것 ,

그것 역시 어이없는 인식의 왜곡인 바

가장 본질인 '평온'함은

이 일상에서 주님을 만나면

어떤 것을 통해서도 

주님의 평온과 기쁨을 누리게 되고

그보다 더 큰 본질.. 

주님을 일상에서 만나 사는 삶,

코람데오의 삶의 기쁨과 행복과 평온함에대하여

묵상하며 누리는 매일에 대한 것입니다. 

 

주여.

말씀을 오늘 더 가슴에 갈무리하고 살기를 결심합니다. 

거룩하고 귀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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