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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신과 고집 사이(막10:46-5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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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신과 고집 사이(막10:46-52)

주하인 2015. 3. 17. 11:34

 

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누가 뭐래도 흔들리지 않는 것.

고집인가?

소신인가?

고집과 소신의 차이.

그 차이를 어찌 알 수 있는가?

이제는 안다.

주 앞에서

부끄럽지 않는 고집은 고집이 아니다 .

선한 소신이다.

그게 비록 내 일신 상의 문제이든

거대한 우주적 원리 안에서 깨달은 바,

아주 큰 이타주의의 원함이든

그게 무슨 상관일까?

 

일단 소신은 흔들리지 않는다.

고집은 모든 것을 물리치는 내적인 고통이 수반되고

마음의 평안이 없겠지만

소신은 다르다 .

희망이 있다 .

 

 

49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언젠가 부르실 그때가 있음을

기대하는 소망 말이다.

 

그때.. .주님이 오셔서

'일어나라

하나님이 널 부르신다.' 하시면

얼마나 좋을까?

 

 

50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주님 앞에 나가게 될 것 아닐까?

 

정말.. 그런데

난.. 이런 기대함과

이런 소망은

지금

내게 있던가?

 

내 삶의 바램은 뚜렷하던가?

 

소신이나 고집이나

원함이 있어야 한다.

원함이 뚜렷해야 한다

 

비록 위에 비교한 대로

고집은

그리 평탄하지 않아 보이지만...

 

 

51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소신을 가질 만한 믿음의 워함 말이다.

 

' 오래된 고질적 허리 병.. '

그것도 원함이 될 것인가?

소신이란 큰 이름 앞에

너무 유치한 믿음의 바탕, 원함이 아닐까?

그런데

오늘 소경이 주님께 바란 것은

큰 것이 아니다.

단지 눈뜸이다.

'보기를 원하나이다' ..하였다.

고작 보기를 원하는 자,

그게 그의 유일한 소망이고

타인의 무게를 누르고 결국 주님을 만날 만한

믿음이었던가?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보라.

주님께서

네 믿음이.. 라 하셨다.

그래서 구원을 받아

보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던가?

여기서 '구원'과 '눈뜸'의 관계가 새롭다,

 

그것이 무엇이든

주님은 하실 것을 믿어야

어떤 것이든 '원함'이 된다. .

그러한 주님을 바탕으로 한 '원함'의 강렬함이야 말로

주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것이시다.

그게 비록 장님이 눈 뜨는 바램이고 원함일 지언정

소신이 될 조건은

'하나님이 날 구원하실 것'

'예수님이 반드시 날 찾으실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타인을 무시하고 자신의 유익만을 찾는

요즈음  세상에서 흔히 보는

유치한 자기 고집

고집 불통이 되고야 말 것이다.

 

오늘 내가 할 원함,

그리하기 위하여

내가 가져야 할 주님이 날 반드시 구원하실 것임을

어찌 믿어야 하는가?

일단은 허리가 안 아픔이다.

나음이다.

강력하게 원함을 함 만이 내가 할 일인 듯 하다 .

그외의 바램도 생각해 보겟다.

 

 

주님.

원함과 믿음,

그리고 구원 받음,

그래서 주님과 나 만이 아는 절절한 구원의 세밀하심을

오늘 말씀으로 받고 있습니다 .

 

주여.

전 주님이 해주실 것임을 믿어 알고

그 믿어 앎이 돌아 보면 주신

하나님의 살아계신 축복의 결과물임을 알지만

이제 주께서는 저에게 원하시는 것이

일상의 어떤 것이라도

주님이 오시고

주님이 말씀하시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

소신있는 믿음을 연습케 하심인 듯합니다.

그래서

주님

오늘은 조금 더 주님의 직접적인 손길을 기대합니다.

내 안에서는

나도 모르게 '설마'하는

이 엉터리의 믿음을 내리게 하소서

허리낫게 하심으로

내 믿음이 더 커지는

소망의 상태로 절 더 만드는 하루가 되길 원합니다.

내주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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