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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의 이름은 아버지시고 나의 이름은 아들이다(시75:1-10) 본문

구약 QT

그분의 이름은 아버지시고 나의 이름은 아들이다(시75:1-10)

주하인 2009. 8. 28. 12:25

제 75 장 ( Chapter 75, Psalm )

 

나비가

꽃에 가깝듯이

주님에 가까울수 있길..

 

 

 


1.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께 감사하고 감사함은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   
  

주님께 감사하던가?

진짜로 감사하던가?

오늘 표현대로 '감사하고 감사하던가?

그래

감사하였다.

감사하고 감사 하였다.

그렇지만

그게 언제인지는 잊어간다.

그 만큼 내 영혼은 감성이 무디어져 가고 있다.

 

 주의 이름이 가까움.

이름.

다다름이시던가?

아니다.

NIV로 보아도 name이시다.

이름 ,

말 그대로 성함이시다.

주의 이름이 가깝다는 말은 무슨 말이던가?

 

 오늘은 어제 보다 더욱 늦게 일어났다.

자꾸.

주님과의 그 고요한 묵상의 시간의 감동을 잊어간다.

그래.

감사한 마음이 줄어가는 것이다.

점차로 마음은 무디어 가는 것 맞다.

감사함은 머리 속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만 같아지는

그런 상황이 하루하루 되풀이 되어가는 것만 같다.

아침의 감동이 줄어 들어도

그냥 그냥 하루 하루 넘어가는 게 더 두렵다.

말씀을 준행하고

말씀을 목숨처럼 붙들고 사는 것이

내 인생의 숙명이라고

소명이라고 선언하며 감동하던 것이 어느새 흐려져 가는 것이다.

 

주님의 이름.

무엇인가 늦은 상태에서 들여다 보고 나온 묵상구절에서

느껴지는 듯하지만 도저히

게으르고 메마른 심령에

바쁜 일과를 가지고는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하지만이다.

나도 모르게 구절 하나를 붙잡고 하루 종일 생각하고 있었다.

 저녁 금요 예배.

예배 중에도 계속 '주님의 이름'이라는 명제가 머리 속을 스친다.

목사님의 설교가 점점 박진감있게 -정말 우리 교회 홍목사님의 설교는

간결 명료 박진감 감동 유머로 이어진다... 행운아인 교인들이다.^^*- 진행되면서

'소명'에 대하여 명쾌하게 설명해 가신다.

소위 '비전'이라는 이름 ㅏ하에 행해지는 많은 하나님의 일들 중에서

진짜로 '소명'에 해당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주님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 전하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가치가 있는 결단을 이야기 하는 것이고

그것은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에서 고백한 것처럼

'사는 것도 그리스도요,

 죽는 것도 그리스도'라는 고백에 일치하는 것이다.

 나머지 돈을 주고, 치료를 하고 , 학교를 세우고.. .하는 부수적인 것은

온전한 소명에 따라오는 부수적 현상일 따름이다.

 소명은 반드시 '선교'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고

일상의 삶에서도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헌신이 될 수있다면

그 자리가 소명의 자리다...라는 것이다.

 들어가며 '옳다'했다.

옳은 생각을 난 지니고 있어 왔고

그 생각을 그 분은 간결하고 명쾌히 설명하고 계시는 것이었다.

 내 가슴의 한구석에 불이 붙듯 뜨거워 졌다.

그래.

성령이 움직이심이 난 느껴지는 것이다.

 

주님의 이름.

이해가 간다.

주님은 내 아버지시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날 위해 보내신 당신의 아들이시다.

그게 막연한 개념이 아니고 뜨거운 눈물로서 나에게 느껴지려 한다.

그렇다.

그 분은 '내 아버지'시다.

'예로부터 내 왕이시다. '

그걸 난 몰랐던가?

알았다.

나의 죄가 가까이 못하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확신을 못하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감동이 깨이면 난 또 잊어버릴 진 모르지만

난 감사하고 감사하다.

그 분의 이름이 나에게 가까이 오신다.

나에게 '소명'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계시다.

그 분은 나에게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다가오신다.

난 그 분의 아들이라는 이름이었던 것이다.

 

감사하고 감사하다.

예배 내내 난 뜨거웠다.

누가 쳐다보아도 상관없다.

다른 사람들의 두배이상 큰 목소리로

그들보다 몇 톤은 높고 낮은 음역으로

그들보다 훨씬 큰 바이브레이션으로

그들보다 멋지려는 화음으로

난 찬양을 했다.

물론, 내 생각이다.

난 그냥 그러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감사와 감사를 표현할 방법임을 절감했을 뿐이다.

난 금요 성령찬양 예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감사의 방법이

목소리 높여 찬양을 드리고 기도를 하는 것 밖에 없음을

그 시간 만큼은 확신했다.

감사하고 감사하다.

가까이 하게 하여 주신.. 주님이

너무 너무 감사하다.

감사하고 감사하다.

 

 

 

주님 감사합니다.

깨닫게 해주심을 감사합니다.

주님은 나의 아버지 셨습니다.

비록 나의 죄로 인하여

비록 나의 게으름으로 인하여

비록 인지하지 못하는 지혜의 부족으로 인하여

주님을 깊이 감사하고 또 감사하지 못했지만

또한 주님의 이름이 내 아버지시 임을 감동있게 소리내지는 못했었지만

주님은 내 아버지 셧습니다.

주여

저를 죄에서 멀리하게 하시고

주여

저를 깨어있게 하시사

날 아들로서 받아주시고

아들로서 붙들어 주시는

그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늘 주님 만을 찬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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