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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경은 확실히 눈뜨길 원했다 (마 9:27-37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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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경은 확실히 눈뜨길 원했다 (마 9:27-37 )

주하인 2010. 1. 21. 11:31

제 9 장 ( Chapter 9, Matthew )

 

 

눈을 뜨면

아름다움이 보인다

 

마음의 눈을 뜨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

 

영적인 눈을 뜨면

주님의 손길이 보인다

 

바로 그곳에

천국의 모습이 보인다

 

천국의 복음은

누구에게나 기회가 있지만

천국은

갈망하는 자에게만

열려 있다

 


27.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가실새 두 소경이 따라 오며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28.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소경들이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소경이 소리지르며 따라온다.

그 많은 무리의 소리를 뚫고

그들의 소리는 주께 들리었다.

더듬더듬 손을 잡고

두 사람이 최선을 다했으리라.

소리 만으로 의지하는 그들의 방향감각이

전심을 다했기에 주님 앞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

 그리고는 목청을 최대한 높여 소리를 질렀으리라.

그들의 간절함이 느껴진다.

그러한 간절함이 기적을 가져온다.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는가?

 

나.

주님이 이리 물어 보신다 생각하니

갑자기 멍~해진다.

무엇을 간절히 바라던가?

저들 만큼 저리 간절하던가?

난 정말 주님이 능히 도우실줄 믿던가?

간절함은 믿음의 기본이다.

무엇을 간절히 바라면서

난 주님을 좇던가?

 내 터부의 고침이던가?

내 자식들의 문제던가?

내 장래에 대한 안정이던가?

...

그것이 무엇이던간에

난 그것에 대하여

이리 물으신 예수님의 물음에

서슴없이 '예'라 대답하고

내 원함을 빌만큼

'간절히 믿어 왔던가?'

 

 엊저녁 수요예배는 기도원으로 향했다.

비가 추슬추슬 내리는 저녁.

열심히 집중을 했지만

머리가 혼란하더니

예배를 마치고는 '주여..주여..주여' 세번 외치고

내 기도에 들어가서는

자꾸만 걱정이 내 머리를 잡는다.

어제 수술한 환우.

잘했고 최선을 다했고 안심하고 나왔는데

수술 장면이 머리 속에서 빙빙 돌며

괜한 걱정이 날 사로 잡으려 한다.

 아님을 알면서도 믿지 못하던 강한 불안.

날 오랫동안 괴롭히던 이 믿지 못하는 습관.

예수님 앞에서 말씀에 서면서 언제부터인가 없어졌던

이 불안이 올 연초 부터

몇 가지 일을 빌미로 다시 날 사로잡으려 하는 듯하다.

 깨달았다.

'믿음'의 훈련이시다.

믿고는 어제 묵상 중의 관리처럼 가만히 기다리는

서두르지 않는 믿음을 훈련시키실 모양이시다.

 기도원 목사님의 설교는 '막 3:7-12'이었다.

어제 묵상은 소녀에 '손내미시는 ' 예수님의 장면이었었는데

절묘하게도 그 구절에서는 

무리들의 백성들이 예수님을 '만지고자' 손을 내밀었다는 구절이다.

' 내밀어 잡고

 주님의 내미신 손에 붙들리고 ' 

양 손을 의지적으로 ,피동적으로

잡고 잡히는 믿음.

 그게 옳지 않은가?

빙빙 돌며 어제 수술 중 찍은 비디오 얼른 찾아다 보고 싶은

굴뚝같은 초조함을 누르고 주님께 기도했다.

가만히 가만히...

손내밀어 내 어리석은 불신을 내려놓길 기도했다.

잠시의 혼란 후에

난 안정되었다.

성경을 여섯장 읽고는 나왔다.

서두르지 않았고

서두르지 않음을 배워가고

믿음 훈련을 하고 나온 것이다.

훨씬 편안하다.

 병원에 다시 들러 비디오 촬영한 것 가져다가

확인해보아도 역시 괜찮다.

 

 
 
29.  이에 예수께서 저희 눈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신대
 기적은 '믿음대로 되는 것'임이

오늘 말씀을 통해서 확신있게 다가온다.

 그 수많은 무리들 중에

몇명의 이야기 만이

성경에 씌여지는가?
물론 누가복음에 적지못할 정도로 많다는 이야기는 있지만

모두 다는 최소한 아니다.

 지금도 곳곳에서 기도 후 혹은 안수 받으신 후

기적들이 나옴을 많이 보고 있다.

그럼에도 왜 모두가 아니고 몇몇에서만 나오는가?

 왜 선택받은 몇사람에게만 나오는가? 

그것은 절실히 믿는 자들에게 만 나온다는 증거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기적을 주시지만

그 기적이 우리에게 나오기 위하여는

믿음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것 자체를 믿지 않는 불신이 문제다.

'설마..

 그것도 기적이 안나타나는 것을

 변명하기 위한... '이란 '의혹'의 그림자 탓이다.

그것 자체가 '불신'이다.

  양자 의학에서

불신자 의사께서 '믿음'으로 '물질'과 '파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과학으로 증명해놓았다고

수년전부터 이곳에 썼다.

그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진

이 물질계에서

어쩌면 파동일지도 모를 영계와

둘이 아니고 하나인데

그 둘 사이를 가로지르는 고리가

'믿음'이란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 불신자 의사선생께서

전혀 믿음을 의식하지 않으시었지만

증거로 우리 앞에 내어 놓은 것이다.

 

이들.. 소경 둘.

절실함으로 예수님 앞에 더듬거리며

같이

나올 때는

그들을 고치실 분은 예수님이시란 확신을 했을 것이다.

절절한 바램은

믿음의 전제 조건이다.

그들 소경 둘은

'확실히 눈뜨길 원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알았다.

그리고 또,

그들은 철저히 예수님께 매달리고 의지했다.

그들에게 예수님을 믿음은 절대 절명이었다.

둘 모두 손을 잡고 망신 당할 각오를 할 정도로..


 
30.  그 눈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계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게 하지 말라 하셨으나
  눈 '들' 이라 나온다.

눈이 두개도 아니고

네개다.

그 눈들이 또랑또랑 쳐다보며

신기한 빛을 발하는 것이 순간 연상된다.

주님이 그들의

눈이 없는 안와(眼窩)를 만지시자

'무'에서 '유'가 창조되기 시작한 것이다.

눈알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는 뜨지 못하는 눈 근육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없는 눈알이

마치 줄기세포가 분화하듯

안구 세포가 튀어나오고

그 안구 세포가 급속도로 분화되기 시작하고

점차 조그만 깨알 같던 안구가

포도알 같아지더니

마치 뱃속에 넣고 풍선 불때

볼록해지듯

순간적으로 눈알이 그들의 빈 안와를 채우고

드디어는 떠본적이 없었던 눈꺼풀을 밀어

그들의 안구와 눈꺼풀 근육을 들어올리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그들 안구에 맺힌

세상의 잔영이 시신경을 타고

급속히 뇌 속으로 퍼져 들어가며

후두부 어딘가에 전기적 자극이 피어올랐을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눈을 뜨고 바라보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 현상은 그들 뇌의 어느 부위에

감동을 자극하는 중추를 자극하고

감동은 눈을 통해 빠르게 빛을 내어 보내게 되었을 것이다.

네 개의 눈들에선 일제히 '번쩍'하고 빛을 냈을 것이다.

할렐루야.'

 이 일련의 일들은

주님이 눈을 만지시자 일어났고

그 일은

무에서 창조된 기적이지만

그 무에서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파동을 물질로 만들 재료가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안구를 만들 재료는 '믿음'이라는 사실이다.

주님은 그 재료를 가지고

기적을 만드신 '요리사'이시고..ㅎㅎ

 

 
 
 
35.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라 나온다.

가르치시고

기적을 보이시고

고치시는 일련의 행위와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는 것을 같이하시었다는 이야기다.

천국복음 전하기 위해

나머지는 부수적이라는 이야기다.

 

 그들 소경은 눈 뜨고

주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 아마 주님께서는 당신의 시간(크로노스)이 안되셨음에도

당신의 기적이 알려지는 속도가 빨라지면

십자가 , 그 고통의 극한을 생각나게 하실까

힘이 들어 하시며 막으신 것은 아니신가 싶다. ㅜ.ㅜ;;;

 하지만 막음이 막아지지 않는 것도

그냥 두신 것은

그것 조차 주님 하나님의 뜻이심을 알기에 그러신 것 같다.

그런 흐름... 그것을 조금씩 깨달아 간다.

주님 께 맡기고 내 생각과 판단마져 보류하는 것.

그것이 내 평화를 보장해간다.

-동네 방네 떠들고 돌아다닌다.

그들은 그들의 감동을 억제할 수가 없는 것이다.

여기서 한번 더 생각할 것은

만일

나에게 내가 원하는 것이 더 뚜렷해지고

그 뚜렷한 것이 이들 소경이 눈뜨는 것처럼

당연히도 떠진다면

단지 그 기쁨이외에

난 단지 내 문제가 해결된 이외에

그를 주신 더 깊은 이유

즉, 천국 복음을 전파하라고 나의 문제 해결하시는 것을  알고

더 열렬히 복음을 전파할 수가 있겠는가?

 어쩌면 그 달콤함에

주님찾는 절실함을 잊을 수 있을 지 모른다.

 그게 어쩌면 날 확실히 바라게 하지 못하는 원인일 수도 있다.

솔직히 내가 가지고 있는 터부는

참으로 곤란하다.

삶이 내가 가지고 있는 달란트보다 훨씬 질이 떨어짐을 느끼고 있다.

훨씬 덜 벌고

훨씬 덜 칭찬 받게 하고

훨씬 덜 풍요하다.

여러가지..

 하지만 난 그 터부로 인하여

더욱 깨달음을 많이 얻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나에게 개발되어지는 달란트는 더욱 많아지고

난 겸손해질 기회를 얻고 있다.

주님 만 쳐다 볼 유일한 끈이고

그게 아니면 나 는 그 분의 말씀이 확실히 느껴지지 않을 것이고

훨씬 인격적으로 덜 성숙되어질 것만 같다는 생각도 없지 않아 있다.

 그러기에 이들 소경 분들 같은

더욱 단순하고 힘이 있는 원함이 부러울 때가 있었다.

 

 이제 더 근원적인 묵상을 해 보아야 한다.

'내 바램은 좀 더 뚜렷해졌다.

 믿음은 더 강해져 가는 듯 하다.

 흔들림이 있을 때에도 믿고 의지하는 훈련을 시키어오신다.

 그렇다면 난 강하게 고치어 달라고 기도할 것인가?

 고치어 주시면 지금같은 절실하고 깊은 영적 감응이 유지될 것인가?

 주님의 천국 복음을 전하는 에너지인

 이 절절한 평강을 잊지 않을 수 있는가?' 다.

 

솔직히 이런 생각 조차도 의미가 없을 지 모른다.

이전의 내 상황 , 내 감정의 흐름에 맞추어

그런 상황에서 벗어날시

나는 자신이 없다... 라는 전제가 있어서 그럴 지 모른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고쳐진 후의 상황에서도

절절한 평강의 기쁨은 유지될 것이고

그로 인하여 더욱 더 천국 복음을 전파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게 하고 말고 조차

주님이 알아서 하실 것임을 믿고

단순히 난 '주님의 고치심' 만을 믿고

내 머리를 들이대고

목소리를 높이고

손잡고 주님 앞에 나가야 함 만이

내 일이 맞을 수도 있다.

 

기도해볼 일이다.

 

 

적용

1. 예수님은 기다리시는 분이시다.

 서두르는 것은 자아다.

 흐름에 맡기는 것이 주님 원리다.

 내 생각 , 내 자아를 내려 놓자.

 

2. 강한 원함이 무엇이던가?

 . 자식

 . 터부

 

3. 믿음을 가로막는 의혹은 무엇인가?

 

4.  모든 게 '주님을 위하여 '라는 전제에 맞는가?

 

5. 성경 여덟장 읽자

 

 

 

기도

 

 늘

기도해도 안될 것 같은 부정감이 가로막는 일이 많았습니다.

주님.

 이 의혹을 주님 십자가에 내려놓습니다.

힘없는 믿음 생활을 불쌍히 여기소서.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는가?

물으실 때

서슴없이 '예'라 대답하고

너희 믿음대로 이루어지라는

주님의 약속의 예언이  

제 얘기가 되길 원합니다.

주여.

정말 간절히 비오니

제 속의 믿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낮추어 주시고

저를 가로막는 오랜 부정의 생각을 없애주시어

긍정적이고 긍휼한 생각

성령의 생각으로 넘치게 하시고

저에게 강한 원함,

마치 소경이 눈뜨기 위한 절실한 바램을

저에게도 주시어

저로 벗어나게 하시고

저의 일생에

드라마틱한 변화 있게 하소서.

주여.

그 변화로

정말 중요한

주님의 나라 전파하는 사명을 잃지 않기를 원합니다.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전파하게 되게 하시오되

편협하고 자아 중심적인

주님을 앞서는 행위가 되지 않게 하시고

늘 물흐르듯

주님의 임재안에서

감동으로 전파하게 하소서.

주여.

절 도우소서.

절 도우셔서

제 자식들이 절 닮게 하시사

제 가정이

주님의 역사의 큰 틀이 되게 하소서.

주여.

이곳에 오시는 모든 분들이 그리하게 하소서.

이 놀라운 원리 가운데

주님을 앞서지 않고

주님의 인도하심 따라

통합적이고 균형잡힌

주님의 용사들로 전 세계를 채우게 하소서.

주여.

더욱 바랄 것은

저로 세상을 향해

더욱 깊은 긍휼한 사랑으로 세상을 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펌 / 빛에스더님 방 ) 

곡명/ 모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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