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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배(船)에 오르소서( 마 8:23-34)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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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배(船)에 오르소서( 마 8:23-34)

주하인 2010. 1. 18. 11:29

 

 

천국을 향해 가는

인생 여정에

주여 부디

내 손 잡아

인도하소서

 

십자가 만이

인생항해의

나침판 삼게

하여 주소서

 

 

 

 

제 8 장 ( Chapter 8, Matthew )

 


23.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좇았더니  

 나..

일엽편주.

바람 불면 흔들리는 조각배를 몰고

인생항해를 나선 자이다.

 그 배에

주님이 오르시었다.

다행이도...

 

 

 

24.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물결이 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는 주무시는지라 
 하나님을 모신다해도

내게는 환란과 풍파가 없을 것인가?

그것을 바라고

잠시 잘된다고 그것을 복이라 말하는

어리석은 기독교인들의 모습을

나도 과연 취해야 하는가?

아니다.

누구든 인생을 살다보면

풍파가 있게 마련이다.

그게 기독교인이든 불신자든...

잘 믿는 자든 미성숙한 기독교인이든...

 

 그래도 변함이 없는 것은

예수님을 구주라 영접하는 순간

난 구주 예수님을 모시고 다니는 '배'라는 사실이다.

인생바다를 떠다니면서

주인없는 자 어디 있던가?
 

25.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가로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제자.

나.

나를 나로 인정하게 하는 자아.

그 자아가 풍파를 무섭다고 몸부림치고 소리만 지르던가?

그래도 주님을 깨우던가?

아니면 주님의 곁에 누워 

풍파야 와라.. 하던가

모두 '제자'의 선택이다.

그 제자는 나를 의미한다.

선택받고 좁은 길을 갈 자.

큐티를 끊임없이 할 자.

조금씩이나마 성장할 자.

 미성숙하고

넓은길 사모하는 자들은 예외일 수도 있다. 

제자는

나의 레마적 모습이실 수 있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주님은 풍파를 멈추시는 분이시다.

말씀으로 그리하시는 분이시다.

그 분을 찾고 또 찾으면

어찌 응답이 없겠는가?

그러나 오늘 질타는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누구를 말씀하시는 것인가?

믿음이 적은 자들에게 그러시는가?

무서워하는 자들에게 그리하시는가?

 무서워 하지 않고 주님께 아뢰었더라도 저리 하셨을까?

만일 주님이 내 배에 계심을 믿고

주님이 다 알아서 하시겠지 하고 빌지도 않았으면 칭찬하실까?

 

 

 

 

32.  저희더러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 
 배.

제자.

주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그러다가 돼지에 들어가는 귀신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이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육체와 자아라는 개념으로 이루어지되

그 위 존재

영적인 존재가 가만히 있지를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님은 우리 '배'같은 성전 들에게

들어와 누워계시길 원하신다.

그러나 그 주님이 계실 자리가 비어 있다면

사단이 자리를 잡거나 

그러기 위해 공격을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인간은 '육과 혼, 그리고  영'의 존재이다.

무엇에 의하여

나라는 배가 인생을 건널것여진 가는

제자로 표현되는 '자기의 선택'에 따라 달려 있다.

 

 

 오늘 따라 전도를 강하게 하였다.

바빴다.

그러나 두분 전도하니

한분은 그러신다.

'이 말씀 듣게 하시느라

엊 저녁에 언니 둘이 그렇게 날 교회에 가라했구나'라면서

긍정적인 반응과 함께 나갔다.

 

 다른 한 분.

참착하신 분.

배가 아파서 응급실 왔다.

산부인과는 이전에도 염증으로 입원했던 적이 있는데

오늘은 염증은 없어 내과를 들러

외과에 진찰 받고 이상없다면 다시오라 했다.

내과에서 다시 산부인과 들러보라했다해서

재 진찰 하며 대화를 시작했다.

보호자로 따라온 분이 '술과 담배'를 많이 하여 그렇다 한다.

그래서, 오늘 묵상 구절을 이야기 했다.

내가 주인을 누구로 선택하는 가가 인생을 결정한다.

주인이 없는 무주공산에는 '사단'이 틈탄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로서 그 곳에

예수님이외의 존재가 들어오면

누구에게도 표현할 수 없는 갈등과 힘듦이 시작이 된다.

내 간증을..속사포처럼 이어갔다.

난 내 인생 항해의 시간을

예수님으로 영접한 이후에야

정말로 편안하고 좋다.

앞으로의 삶도 그렇다....

환우 분은 눈이 똥그래져서 듣는다.

 기도하겠다며 교회나가라 했더니

그러겠다하고 가신다.

뒤에 대고 화살기도 했다.

 

그렇다.

누구라고 살면서 고난이 없겠는가?
고난이 오면

그 고난을 무서워하고 두려워 하고 피하기만 한다면

어찌 살겠는가?
갈 곳은 뻔하지 않겠는가?

 예수님 믿고서 진정으로 좋은 것은 그것이다.

점차로 편해진다는 것이다.

주님을 믿고도 한참 동안은

고난이 오면 도망치거나

피하기 위하여 갖은 수를 쓰거나

아니면 주님께도 그렇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일쑤였다.

이제는 좀 다르다.

고난이 오면 그냥 가만히 있는다.

그래도 될 거 같아서 그렇게 한다

그렇게 하면 또 그렇게 된다.

물론 내 의지와 책임에 대한 부분 마져 소홀하게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진인사 대천명'

옛말처럼 내 할일 하고 기도하면서

그냥 주님께 맡기는 것이다.

고민해도 소용없고

고민 안해도 그렇다.

그렇다면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된다.

가만히 있을 수 있음은

내 영혼 깊숙한 곳에서 들리는

주님 예수님의 흔적이 있기에 가능하다.

 부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그리 되었으면 좋겠다.

아니..

솔직히 난 좀더 그리 되었으면 좋겠다.

이제 조금씩 조금씩 그런 원리를 깨달아 가고 있다는 말 뿐이다.

 

 

적용

1. 셩경 여덟장 읽겠다.

 

2. 환난이 올 때 내 안에 계시는 예수님 생각한다.

 

 

 

기도

 

주님

늘 주님 제 안에 계심을 압니다.

주님

주님의 그러하심을 잊지 않도록 하소서.

잊는 순간 전 환란의 물결에 휘둘림도 압니다.

그러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

주님의 그 놀라운 사랑과 기적으로 그리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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