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소경'은 진실을 '본다'( 요9:18-34 ) 본문

신약 QT

'소경'은 진실을 '본다'( 요9:18-34 )

주하인 2008. 11. 28. 12:32

제 9 장 ( Chapter 9, John )

 

 

이 아이의 눈......

너무 귀엽다...♥

왜 일까?

이 순수한 관심

이 빨아들일 듯한 호기심

맑은 눈망울.

그것이 그 이유다.

 

소경은 그런 눈을 떴다.

나도 그러고 싶다.

^^*


 

 

 

28.  저희가 욕하여 가로되 너는 그의 제자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29.  하나님이 모세에게는 말씀하신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예수님은 분명히 '소경'을 눈뜨게 하고

그 소경은 분명히 그 들 앞에 있건만

그들은 '예수님' 이 어디에서 왔는 지 알지 못한다는 말로

애써 의식 속에서 기적을 부인하려 한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려 한다.

그런다고, 눈가리고 안본다고  실제가 없어지는가?

미련한 ......

 

 
 
30.  그 사람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이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소경은 눈을 뜨고 진실을 본다.

그 사람이 눈을 뜬 것은 사실이다.

그러기에 사실을 보지 못하는 눈뜬 '바리새인'들이 '이상하다.'

 다른 것은 몰라도 좋다.

그 가 눈뜬 것은 사실이 아닌가?

그것 만 알면 된다.

주님도 그러 셨다.

다른 것 몰라도 예수님 당신이 베푸는 기적 만이라도 보라고..

 

 나에겐 이상한 일이 없나?

수많은 간증거리가 있다.

불면증이 없어지고

담배가 끊기고 -자동으로.. -  그외에

수없는 기적의 체험 들이 있었음에도

어느 순간에 이것은 남들에게 전도나 하는 때 쓰는

전도용 실적 자랑에 지나지 않는 느낌이 없지 않다.

 그것이 정말 기적이었고

기적이었다면 그 분이 계시는 것이 사실이고

사실이면 삶이 지금보다 훨씬 더 경건하고 조심스럽고 조신하고

더욱 힘이 있고 두려움이 없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정말

이상하게도

나는 그러하지 못한다.

10년이 넘어 11년 째를 향해 믿음의 시간이 늘어가건만

어찌 그 날의 감동은 한낱 과거의 이야기거리로만 사라져 가려 하는가?

 다시 주님이 함께 하셨던 기억을 돌이키고

온전히 그것이 주님의 작품이셨음을 잊지 마는 노력을 하여야 겠다.

 

 어제 당직서며

제왕절개 한분, 산모 한분을 받으면서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

그 엄청난 유혹인 ^^;;  TV를 키지 않고

대신 기도와 성경 세장 읽음을 마치고

라면을 끓여 먹으며

순간 어느 사이엔가 그토록 오랫동안

내 턱관절이 안아팠음을 깨달았다.

예수님 믿고도 오랫동안 스트레스가 몸으로 올 때마다

턱이 긴장을 하고 과도한 긴장은 관절염 증세로

욱씬 욱씬하고 머리까지 당기며 입을 앙 다물고 있었었다.

그런데 어느새인가 잊어 먹고

난 편안한 턱을 소유하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그외에도 많다.

이것도 '기적'이다.

잊어먹고 사는 것도 기적이다.

아니., 실은 소경이 눈을 뜬 것도 기적이지만

아래에 보는 것처럼 놀라운 논리의 파워를 겸비한 강직한 대화에

놀라며 보고 있다.

이것도 기적이 아닌가?

실은 ,  내 하나하나의 변화를 찾아보며 기뻐하는 내 모습을 보는 것도

또한 기적 중의 하나이긴하다.

감사할 줄 모르던 사람.

늘, 불평이고 불만이고 내가 중심이던 게 나였었다.

참 감사하다.

 

 이 좋은 주님을 모르는 자 들에 대하여 한마디 하고 싶다.

 

'차~~~~~암~~~~~~~~ 이상도 합니다..............'

 

 

 

31.  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죄를 지으면

당장 공의적 재판이 권선징악의 차원으로는 오지는 안하지만

두려운 것은 주님이 멀어지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죄'를 짓기 싫어진다.

점차로...

보라.

이 놀라운 소경이 육신의 눈을 뜨면서 우주를 흐르는 원리를 깨달아 버렸다.

정말 비상한 영적 맑음을 소유한 자이다.

눈을 감고 있었으되 눈을 뜨고 있던 사람이다.

육신은 감고 있으되 영은 뜨고 있었다.

그는........

 주님이 응답을 하지 않으시는 것이야 말로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다.

난 그리 느낀다.

내 기도 들어주시지 않으면 그것이야 말로 지옥이다.

심령지옥..

 

 

 

32.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33.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이 간단한 사실.

현대과학으로도 선천성 실명자를 눈뜨게 하는가?

그래 ,, 수술로 비슷하게 할 가능성 있는 자들을 이식해서는 가능치도 하겠지만,

솔직히 '침비벼 흙을 개서' 현대적으로 눈뜨게 하라면

그것이야 말로 기적이 아닌가?

소경은 그 기적의 한 가운데 있다.

그는 보고 있다.

세상을 보고 있고 기적을 보고 있고

기적을 만드신 예수님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또 보고 있고 볼 것이다.

곧..

 

그는 힘이 있는 언어로

"세상에 누가 있어 소경의 눈을 뜨게 하는가?

 창세로 부터 그리할 수 있는 자는

하나님께로 부터 온 자 뿐이 없다. "

 

짝짝짝.........

 

시원 시원

정확정확

 

아........

못배운 자의

이런 현명한 논리가

그 분 예수님의 기적을 또한 번 느끼게 한다.

 

배움보다 놀라운 것은 '주님의 지혜'다.

 



34.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이에 쫓아내어 보내니라 
 

 질병은 죄의 결과라는 자신 만의 사고의 갇힌 틀 안에서 '진실'을 외면하는 인간의 어리석음.

우리는 아닌가?

눈에 보이는 것 아니면 믿지 않는 현대과학 소산물로

내게 벌어진 간증을  나 스스로도 어느 순간 그 분이 하셨음을

잊어버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믿지 않으려는 불신의 틈 속으로 들어 가버리는

나는 그들과 또  다른가.. 과연?

 

 

 오늘 주님은

갇힌 틀을 벗어나길 원하시는 것 만 같다.

그 틀을 벗기 어려우면

돌아보아 내게 베푸셨던 그 개인적인, 내밀한 기적을 돌아보아

살아계신 주님,

살아계신 바로 그 분을 다시금 느끼고 알아듣기를 원하시는 것이시다.

 

 

 

적용

 

1. 금요 예배에 적극 참여 하겠다.

 

2. 내 간증에 함께하셨던 살아계신 주님을 묵상한다.

 

3.  주님은 진실이시다.

    그분은 놀라운 열정이시다.

    살아계신 싱그러운 전율이다.

  감사하는 하루가 된다.

 

4. 성경 여섯 장 읽겠다.

 

5. 한명이라도 전도한다.

  그 기쁨을 알리자.

 

6. 정직하고 솔직한다.

   주님의 이름으로 받는 고난위에는 주의 영이 함께하신다고 하신다.

 

7. 죄 짓지 말자.

   주님을 뵙기 어려워 진다.

  얼른 얼른 회개하러 주님 앞에 가자.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눈뜬 소경이 보는 진실의 진실을

눈뜨고 있는 제가 진실을 외면 , 둔해져가고 있었습니다.

다시금 살아서 내 삶에 역사하시는

우리 주님 하나님,예수님,  성령님을 찬양하여이다.

감사합니다.

살아계시고 아버지 같고 친절하시고 사랑이 넘치시고 늘 지혜롭고 자상하고 따사하고 정열이고 전율이시고 놀라우심이고 방패시고 요새시고 안전하신 보호자신 ..................우리 주님.

사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기도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