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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한사람 vs 주의 한 사람[행25:13-27]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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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한사람 vs 주의 한 사람[행25:13-27]

주하인 2018. 3. 5. 12:45

인생 ...

여기까지 살면서


참으로 힘들었던 것은

홀로 라는 사실이었다


홀로 버텨야할 한설이고

혼자 이겨내야만 하는 시려움이며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을

흐릿한 흔적의 한사람

그런

의미없는 시간 들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한사람은 맞고

내 걸어 가는 길의 외로움은 맞지만


그 길은 아름다움이며

서설의 포근함이고

만상이 어우러지는 황홀함이기도 하다


그 모든 것...

하나님께서

나를

전적으로 기억하고 보아주시며

내가 주님을 잊지 않는한

진정 의미있는

주님의 한사람임을

내가 알기에 그렇다



 
14.여러 날을 있더니 베스도가 바울의 일로 왕에게 고하여 이르되 벨릭스가 한 사람을 구류하여 두었는데

 베스도 등..

권력자

직접적 관여자가 아닌 '방관자'적 위치.

인생의 끝일 절대절명의 위기에 있을 사람을

' 한 사람'이라는 조금은 무심한 듯한 지칭을 하는 그룹과


 그들에게는 어쩌면 중치 않을 ' 한 사람' 이지만

하나님께 오직 '한사람'으로 기억되는

'사도 바울님' 같은

절대로 옳은 인생길을 가는 (나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

두 부류의 인간의 모습이 보인다.  



15.내가 예루살렘에 있을 때에 유대인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그를 고소하여 정죄하기를 청하기에 
거기에 그 귀한 한 사람을

기득권을 뭉게 뜨리는 '의미있는 한사람' 으로

적대적 ,악의적 대적을 하는

'대제사장과 장로' 파가 또 있다 .


 이 세 인간군...


인생에 맞추어 본다 .


 우선,모든 것을 다 가지고 '금수저'의 레벨에서서

보통 군중들과는 다른 관점에서

판단자의 위치에 서 있는 사람들..

소위 상류층.

이 분들이 부러워 보이지만

꼭 부러워 할 것이 아님은...

아니.. 오히려 불쌍히 여기고 그리 될까 두려워 해야 할 부류 임은

진정 하나님께 오직 '한사람'으로 귀한 대접을 받는

진리의 편에 서지 못하고

이 유한한 땅위에서 그들은 모든 게 끝이 나면서도

그러함을 의식조차 못하고 있으니

이게..

세상의 모든 가짐이 과연 '축복'일까 '해악'일까... 다시 한번 되풀이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당연히도 그게 '복'이라기보다 오히려 '저주'일 수 있는

(영생이란 관점에 들어가기가 바늘 귀 .. ㅠ.ㅠ;)  것임을 앎에도 불구하고

왜 이 미련한 우리, 특별히 나는

가~끔 (이제는 정말 가~끔.. 이 맞다. ㅎ) 부러워 하려 하는가?
가진것.. 강하기만 한것...

'영적 성장을 이루고 가지게 되지 못하고 그냥 갖게됨'은 '축복'이라기보다 저주다.

(솔직히 기독교인이면서도 , 돈많고 부유한 분들이

 진정 깊이 예수님 영접하는 것을 보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였다 .

 L 전직 대통령, ....주변인들 중에도 .. 열심히 하나님 이름 들이대면서도

 엄청난 죄를 아무 꺼리김없이 짓는 많은 분들을 보아왔다.

 그것.. 물질은 성령과 양립하지 못함이다.. 성경에 나와 있다 .

 실제로 내게도 뷰유함이 찾아오는 느낌이면.. 기도가 약해짐을 많이 체험한다. ㅠ.ㅠ;;)


 또 한편.

'대 제사장 '들.

역시 다른 유형의 기득권자들.

일상에서 흔히 보는 '갑'질하고 사는 자들.

갑질의 상황에 여지없이 갑질이 나오는 자들.

그러한 갑질에 당하면서도 갑질을 사모하는 자들...

그러기 위하여 '진리'를 외면하기까지 하는 자들.

거기에 적극적 '죄'에 가담하는 자들.

..........

인생에 너무나 많이 보는 자들이 아닌가?

주변에....

('1' C모씨, J모님.. ㅠ..ㅠ;;'  난.. 당신들을 주님께 일렀답니다. ...ㅜ^^; ')


 '한사람'이 다른 유형이다.

인생의 어려움을 겪는 사람.

그 중에 육신적, 물질적 고통이기도 하지만

'잊혀짐'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는 고통에 묻힌 사람.

하지만,

오직 바라봄이 '하나님' 뿐임 만을 오히려 기뻐하는 사람....

그 사람이

하나님이 진정 기뻐하시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세상에는 비록 잊혀져가게 되고

그의 이름이나 그의 어떠함이

그의 의도와는 별개로 세상의 강한 자들의 기득권 상실에 대한 반발,

그들이 가지지 못한 '진리'에 대한 '질투'로 인하여

비록 흐릿한 '한 사람'으로 기억될 위험이 있을 지  몰라도

그는 하나님께는

진정 또렷한 '한 사람',

오직 '그 만의 하나님'이시고

그가 하나님께는 '진정 의미있는 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자되게 될 그 사람이다.


그렇다면..

난..

일상에서 어찌

오늘 또 하루를 살아야 하던가..


'부러움'.. '외로움'.. '억울함'.. '속상함'...

세상에 도태될지도 모른다는 괜한 어이없는 생각들에

가슴 조릴 이유도 없다는 이야기다.

 아..

그리되기 위해서는

내가 지금..

하나님께서 좋아하지 않으실 '죄'는 없는지.. 돌아보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회개.

그리고 그렇게 잘 떨어지지 않는 죄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식하고

십자가의 의미를 기억하고

성령께서 사해주실 것임을 믿고

또 내려 놓은 후

난.. 주님이 기뻐하시는 '의미있는 오직 한 사람' 이 되었음을

기뻐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


감사하다.



주여.

저도 그랬습니다.

몇년 전 .. 이 블로그에도 고백한 적이 있지만

질투에 근거하고

나의 외부적인 버거움에 ..ㅎ..의하여

눈에 보이는 '기득권 자'의 몸부림을 통해

지금의 이 자리에 오게 된...


그 당시의 그 C씨, J씨가

지금도 불현듯 생각나면

어이없는 그 거짓 '신앙인' (죄송.. 제 판단.. ) 에 대하여 울컥할 때 말입니다.

관계의 버거움에 직면할 때 K... 도요.

하지만..

오늘 '한사람'을 다시 묵상합니다.


제가 속상해 하는 것은

세상이 저를 '한사람' 취급하는 것이었습니다.

주여..

오래 잘못 숙성되어진 '세상적'판단 기준에 근거한 탓인바가 맞습니다.

이제 알지만..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너무 오랫동안 습관되어진 판단 기준이

슬그머니 자리 잡으려 합니다.

용서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내려 놓습니다.

성령으로 깨주소서.


간절히 비올것은

그 약한 한사람이

실제.. 하나님 만의 '한사람'

진정 강한 한 사람임을 인정하고 감사하게 하소서.

그 마져..

이 지력 부족하고

의지력 없으며

습관적 감상 표출자는

세상의 한사람으로 자처하려 하는 것을 막아 주소서.

오직 예수 십자가의 능력과

성령의 보혜를 통해

하나님의 새로 만드실 '중생'의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주여.

도우실 줄 믿습니다.


오늘..

난..

주께서 기억하시는

의미있는 한사람임을

잊지 않고 살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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