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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에 대하여[행26:19-32]

주하인 2018. 3. 7. 12:16



주하인의 '묵상시화 전'

안양제일교회 북카페(03.05 -  04.05)


29.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멋지다..

정말.

자기의 죽음, 묶임으로 인한 고난, 묶임 때문에 올 부끄러움.........

모든게 어려움이고 두려움일 텐데...

 그는 자신을 자랑스러워 한다.

아..

자랑이라면

겉모습, 올곳은 육신, 멋진 옷, 가진 배경...으로 인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는 아니다.

그의 고백처럼 그는 대머리이고 그리 뛰어난 육체를 가진 사람은 아니다.

출신과 머리는 비상해도.. .

그러기에 그의 육신 , 더구나 묶인.. 그의 모습을 자랑할 거리는 개연성이 없다.

그렇다면

그의 자랑스러움은 어디서 오는가?


그의 고백을 들여다 보자.

'이렇게 결박된 것 이외엔'.. 이란다.

그것.

보라.

결박이 부끄러움이나 고통이 아니고

아니.. 허세도 아니다.

결박은 그에겐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개념이란 것이다.


아..

그렇다.

그게 멋있게 보이는 단초는 여기에서 볼 수 있다.

'비본질'에 대하여 연연하지 않음.

별것 아닌 것에 대하여 별거 아니게 반응함.

옳은 것을 볼 줄 아는 눈.

그래서 '당당함'이 그 원인의 일차 다.


그렇다면

그의 당당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한다'라 하지 않는가?

하나님이다.

당연히도..

세상의 유혹이나 버거움을 칼 같이 자르고

하나님의 뜻을 직접 볼 줄 알고

인생의 목적으로 적용할 줄 앎.

즉, 삶 속의 영성 .. 말이다.

(내 블로그의 관통하는 주제가 '삶속의 영성'이다 ^^*) 


그래서

그는 인생의 목적이 뚜렷하고

그러함으로 그는 두려울 것이 없고 행복한 사람이다.

그게.. 그의 멋의 원인다.


그 다음에 그가 멋지게 보이는 이유 또 한가지는

어휘.. 구사다 .

'내가 결박당하고 있는 것 이외

나를 닮기를 원한다.

그것을 하나님께 원한다. ' 라고..

짧은 언어의 나열이지만

그 안에 '사람을 배려하는 ' .. (그들은 결박을 당하면 부끄러워 하고 지진 날 거니.. 원..ㅎ) 말과

자신을 닮으라는 '당당함'과

그를 주시는 모든 원인이 '하나님'께 있음을

통쾌하게 지적하는..

그 어휘력 말이다.


배울일이고 사모할 일이다.


 
32.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 하니라
 아그립바가 그런다.

' 사도 바울이 먼저 가이사에게..... 라면.. 뻔 했다. '


그러게..

지금 당장 '풀려 나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러하게 되었음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멋드러진 기회가 되었을지 모르고

자신의 두려움에서 놓여나고

세상적으로 솔직히 '으쓱~'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니

이게 '하나님의 뜻'이지 아니었을까?.... 가

슬쩍 드는 생각이다.


 그런데...

바울이 그 때 풀려 났으면 '로마'를 통하여 

세상에 기독교가 퍼지는 시간이 

몇백년 더 뒤로 늘어지지는 않았을까?

물론,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바울 '말고도 다른 분께서 사용되어서..말이다.

 하지만.. 사도 바울께서도

그 상황에서 그냥 풀려 났더라면

집에가서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며칠은 '후련'하고 '기쁘고 ' 안심이 되었겠지만

'사도'로서 .. '선교사'로서 사명을 받은 자신이기에

일상의 삶에 만족했을까?

'우울'해지지 않았을까?..ㅎ


그렇다.

진정한 하나님의 축복은

순간 풀려남,

눈앞의 축복이 아니다.

'정체'를 확실히 깨닫고

사명을 알며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의 이름'을 드러낼 .. 그것이

우리의 인생이고

우리의 삶의 목표임을 뚜렷이 알아

절대로

하나님이 하심을

내 개인적인 능력이나 기교로 앞서지 아니하고 (그게 비단 하나님의 이름을 들이 밀게 되어도....) 

끝까지 기다리고 인내함으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나아감이다.

 수년전 '내려놓음'이란 책 제목대로 말이다.

내려놓고 기다리고 인도 받음.

그러기 위해 자신이 누구인지. 확실히 아는 것.. 말이다.


그게..

멋이다.


멋은 외적인 거로 (수술, 옷, 재산, 가진것 노출 ... )도 일시적이게 보이지만

누구도 안다.

그것은 진정한 멋이 아니고

그것은 파괴의 전조임을...

요새 보라.

그리 멋있어 보이던 '안 '후보도

더이상 설데 없는 자리로 떨어져 버렸다.

그게.. 겨우 미투라 생각하는가?

누구의 분석처럼 '허전한 마음'을 가녀린 여자를 농락함으로 확인 받기 위한 탓이라 햇다.

 맞다.


진정한 멋이 없는 자들.

진정한 멋이 무엇인지 알수 없는 게 '세상'이다.

아무리 '철학'을 하고

아무리 대화를 잘 하고

아무리 교육을 잘 받아

'마음' 을 잘 구슬려

그리.. 그들.. 세상의 바램의 끝,...까지 가도

결국.. 원죄의 그들은 갈 데가 없는것이다.

그게.. 무슨 멋일까?

결국.. 멋있는 척하다가 나락으로 떨어져 버리는

날파리 꿑따라 가는게

인생인것을....


진정한 멋에 대하여

묶여서 끌려다니는 죄인이신

'대머리'이시고 '안질 '덩어리이신 '사도 바울'을 통해 발견하게 된다.


아..

그 멋에 대하여 알게 됨도

하나님의 은혜다.

감사하다.



주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세상과는 다른 방향을 가니

어느새 사람들이 '멋있다'는 소리 들을 합니다.

주님의 은혜로 14년 가까이 이 블로그에서 이루어진

묵상과 시화의 결과를

'북카페'에 전시하면서 그러합니다.

 오랜 찬양의 인도를 하면서 기다리니

부족한 늙어가는 제게 '멋있는 ' .. 이란 표현을 합니다.

그러합니다.

제게는 제게 주신 주님의 달란트를

성령 충만한 말씀으로 인도하셔서

개발되게 하시니 그렇습니다.

주여.

감사하나이다.


오늘..

그 멋에 대하여 묵상하면서

제가 추구하는 방향이

주님의 은혜, 주님의 뜻을 알고

매일 말씀으로 바꾸어가며 이루어지는

내면의 '정결화'를

외적으로 표출되니

내 현재의 위치나 늙어가는 육신에 상관없이

나타나는 현상이라 이해됩니다.

감사합니다.

주여.

앞으로 더욱 더 주님 만을 바라보겠습니다.

절대로 앞서지 않으렵니다.

더 멋있기 위해

다가오는 외적인 고난을 비켜서려 몸부림치고 앙탈하지 않겠습니다.

주여.

힘을 주소서.

깨달음... 잊지 안도록하소서.

내 주 예수 그리스도 , 그 거룩하신 이름 받들어 기도하였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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