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세상과 생명의 빛[요8:12-20] 본문
12.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세상의 빛'
"생명의 빛"
세상에서 살면서
더 이상 이 어두움을 경험하지 않으며
아니, 정확히는 어두움보다는 밝음에 거하는 빈도와 확률이 높은 것.. 그것을
세상의 빛으로 표현하시는 것 같고 (최소한 내게는 .. )
그러기 위해 내 안에 주님의 생명,
주님의 영이 온전하게 나를 사로 잡는
성령의 내주 합일 되는 현상,
생명의 빛으로 가득차야 한다는 말씀이시다 .
15.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하지
아니하노라
그런데...
나는 생명의 빛을 사모하며 세상의 빛으로 나아가는 자가 맞는가?
그렇게 되어야 할게 내 운명이고
내 살아가는 궁극의 목표인 자로서 정말 맞는 가?
어떻게 아는가?
'말씀'이신 성경 구절, 아.. 성경을 허락하시는 궁극의 원리에 맞추어
말씀대로 , 말씀의 지시하시는 방향대로 잘 나아가고 있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나..
의사.
의사가 '질병'의 여부를 알기 위하여 여러 방법을 쓰는데
'Lab(랩, 검사, laboratory)'의 변화 지표를 보면서 알수 있기도 하지만
'Sx (증상, symptom)'을 통해서 알기도 한다.
무슨 이야기나.....하면..
독감이나 감기가 나아가는 정도를 피검사의 염증수치 등으로 알기도 하지만
기침을 덜하고 열이 덜 나는 증상으로 알 기도 한다는 이야기다.
항상 맞지는 않지만...
그 '지표'로서의 나의 '세상의 빛'된 증상 중 하나.
'판단'하는 버릇.. 이 아닐런가?
그런데 그 기준을 어떻게 잡을 가?
통증은 VAS score라는 통증 수치가 있다.
하나도 안아픈 것을 0
기절할 정도로 아픈 것을 10점으로 해서.. 구분한다.
나.
내 '판단하는 버릇'을 몇점으로 줄수가 있을까?
예수님처럼 오늘 말씀을 기준으로 하나도 안하시는 것을 '0'으로 하실 때
정신병자 같은 수준이면 10 점... (그냥.. 대충..^^;;)
난.. 몇점...인가?
그 점수를 가지고 다시 난.. 성화가 얼마나 되어가는 것일까?
그 판단을 낮추는 게 내 노력 덕이었다면 다시 몇점...오직 하나님의 원리로 되었다면 몇점..
이렇게 계량적으로 나누었다면 과연 난 몇점에 속할까?
아침에 출근하려는 데 '누군가' 눈에 걸린다.
남들에게는 다 반가히 인사를 했는데 그 분에게는 약간 모르는 척 햇다 .
내 안의 반응.
'이구.. 이전 분과 비교하여 어쩌면 저리... '
'하는 짓이 저런데 깨닫지 못하니 이런 대접을 받아도.. ' 라는 묘한 쾌감과 더불어
'아이구.. 죄송히게.. ' 라는 마음이 비집고 잠시 나를 흔든다.
그래도 '예수님'을 의식하며 잠시라도 갈등하는게 오히려 다행이기도 하다.
만일 온전히 '미워한다면' 그거야 말로 0점짜리 아니겠는가?
마음이 아침부터 복잡하다.
왜 나는.. 하는 자책이 들려하며
그러면서도 '미운마음' .... 이 슬그머니 맘에서 떠나지 않는 듯하다.
말씀을 붙들었다.
죄송하려는 마음으로 한동안 날 말씀에서 멀리하게 하려는 '사단'의 궤계는
이제 조금은 습관된 말씀 묵상,
아.. 더 정확히 표현하면 그래도 이제는 묵상을 해야만... 이라는 당연함이 내 안에 자리 잡았다.
다행이다.
하지만 죄된 마음, 갈등하는 마음으로 주 앞에 어\오는 것은 부담이다.
그러나, 부담 마져 넘어서는 게 하나님의 말씀이심을 난 안다.
16.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내가 나를 판단한다.
이 잠시 세상의 시간에 ..
남을 판단하며 흔들리다가
다시 내가 나를 판단하며
주 앞에 올까 말꺼 망설이는 사실 조차가 '죄' 의 유혹 아닐런가?
진짜 죄는 잘못된 결과 보다는 '말씀'대로 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판단은 '빛'된 행동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 어두움은 그를 이유로 당연히 해야할 '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 이라 생각되어진다.
이제는..
다행이도..
그래서 억지로 주님 말씀 앞에 왔다.
얼른 인터넷에 연결된 '기도찬양'을 스피커로 통해서 나오도록 해놓고.. ^^*
짧은 시간이지만 눈을 감고 기도를 하니 마음이 가라앉는다.
그렇다.
굳이 내가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 애쓸이유가 없다.
내가 나를 정죄하고 그런 나를 보호하려고 애쓸 이유가 없다.
세상을 살면서 '빛'되지 못한 어두움이 내 안에 그득함을 보고
굳이 놀라며 당혹하고 벗어냐려 애쓸 이유도 없다.
그냥 말씀이신 '로고스' 하나님 앞에 오면 된다 .
거기까지 내가 할 일이다.
그리고는 말씀으로 허락되어지는 성령의 터치를 바라보면 된다.
그리고 또한 그 감동으로 내 생각을 '십자가' 앞으로 가져오면 된다 .
나머지는 주님이 해결하시리라.
오늘 말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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