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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아무런[요7:14-24]

주하인 2017. 1. 26. 15:10


 


14.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버렸다...

형제들의 권면의 시간은 '이미' 한참 지나서 '벌써' 명절의 중간이 되어 버렷다.. 는 뉘앙스로 들린다.

왜 내게는 그리 들릴까?

그게 '사람들의 초조함' , 나이들어가는 자의 세월감 탓은 아닐런가?


하지만 주께서는

'이미' '되어'버렸지만

아무런 상관없이 담대히 성전에 올라가 가르치시었다.

그것.

내 생각, 인간들의 생각, 인지상정, 세월의 흐름., 속절없음...에

아무런 상관없이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시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흐르시는 것을 보이시려함이 아니실런가?


난 ..

오늘..

그리 느껴진다. ^^*



15.유대인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명절의 흥취와 흥청망청의 분위기에 상관없이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이들은 놀란다.


 '관심'의 전환이다.

그들의 삶과 그들의 관심과 그들의 처함...

즉 우리들의 '실존'과는 별개로

새로운 진실이 있다.

새로운 진리가 있다..는 것을 몸소 보이심이다.


나.

우리..

우리들...

모두 이 세상의 삶과는 떨어질래야 떨어지지 못하는 상황.

심지어는 기도하는 대부분... 믿는 대부분의 관심이

이땅의 것들에 대한 것을 위하여

주님께 바라기 위한 것이 대부분 아니던가?
솔직히?

그리고 그 기대하고 예정되고 당연하다는 시간에 맞추어 되지 않으면

우리는 얼마나 안절부절 못하던가?

 나.. 아닌가?


 하지만 주님은 주님의 시간이 있으시고

그 분은 세상의 흐름은 존중하되

그분이 우리에게 바라시고 가르치시려 하시는 것은

조금은 다른 것이다.

그것을 알고 깨닫고 감탄하고 ...를 넘어서

진정한 진리에 더욱 다가서야 함을

넌지시 말씀하시는 듯 하다.   ^^*



18.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그리고 그 이유를

그 분은 이렇게 찍어 말씀하신다.

'보내신이의 영광을구하기 위하여 살라' 고 하신다.

그 속에 '불의가 없기 위해서다.

의롭기 위해서다.



19.무리가 대답하되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까 
  무리는 '예수님의 말씀'에 딱 잡아 떼며 '죽이기를 모의함'을 부정한다.

그러면서 '귀신이들렸다'고 몰아세운다.

이게 .. 바로 전,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라던 자들의 반응이다.


세상.

그렇다.

마치 '최모'씨와 '박'모씨가 세상을 뒤집을 듯 잘못하면서도

'민주투사'인양 하고

인터넷 방송에 나와 '자기 이외' 모든 백성이 다 거짓 산을 쌓는 다고 뒤집어 씌우는 모습...과

아주 유사하다.

거짓과 음모.. 투성이다.

그들은 그들이 잘못인지도 모른다.

불의의 영에 휩싸이면 그 당시는 그게 진실인 줄알고 스스로 거짓에 묶는다.

그러면서 진리를 향해 칼을 던진다.

마치.. 우주의 원리, 생명의 원리를 '인간의 권리'가 더 우선인양 모이고 소리치는

'동성애자'들처럼 말이다.

이 얼마나 어이없는 일들인가?



오늘 말씀이 무엇을 보이려 하심이시던가?


 예수께서는 '세상의 시간'에 별 구애 받지 않으신다.

그 세상에 살면서 그들의 명절을 침해하지도

그 시간에 초조히 쫓기면서 '선거운동'하듯 안절부절 하지도 않으시지만

하실 말씀은 하시고 전할 말은 전하신다.

 그리고 그들의 놀라움에 들뜨지도 않으시고

그들의 거짓과 그들의 모함과 훼방에 흔들리지도 않으시고 계시다.

 한마디로 '초연함'이시다.


나..

이 초연함이 그립고 부럽다.

그리고 이전보다는 훨.. 덜흔들린다.

내게 당장 해치우도 돌이키고 다시 만들어서 세워야 할 것 같은 당위성들.. (어찌 말하겠는가....ㅠ.ㅠ;;)이

산처럼 많지만

이제는 그냥 가만히 기다리고 있다.

 아무것도 안하지만 아무 것도 안하는 게 아니다.

아무것도 안하지만 나를 하나님 앞에 맡기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래서 '초조 하여 죽을 것 같은' 그 마음 조차

주님 앞에 내려 놓는 연습을 하려 하고 있다.

가끔 평정을 뚫고 두근거리고 초조하려 하던 옛버릇이 많이 사라졌다.

  나.

오늘 말씀하시려는 주님의 '영', 진리의 영에 나를 맡기는 기도를 하였으니

그 분이 들으시고 나를 가장 선한 쪽으로 인도하실 것임을 믿는 연습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예수님은 더 큰 환경에서 모범을 내게 보이시고 계시다.

'목숨'을 위협하는 무리 들과의 대화,

그것도 명절 막바지에 '초친다'는 비아냥에 맞닥드릴 여지가 많은 시간에

실제로 '귀신들렸다'고 공격하는

하시라도 '죽이려 하는 자'들에게

'죽이려한다'고 대놓고 말씀하신다.

그 것을 부인하는 그 큰 무리 앞에서 그는 '초연'하시다.


나.

전혀 지금은 안된다 .

하지만 주님의 저 모습,

어느 순교의 장소에, 순교의 시간에 내가 임하게 될 런지,

부족한 내 달란트로 인하여 그리 허락지 않으실 지 알  수 없지만

이 일상에서 비슷한 '저항의 환경'에서

결코 주님을 부인하는 일은

난.. .하지 않을 것을 깨어서 선언한다.


이 불신의 병원..

자칫 손가락질 받을 개연성이 있는 곳에서

난.. 모범으로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의 향기를 저들에게 보이려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혹여.. 내게 닥쳐올지 모를 저항에

난.. 내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모델'을 보이심이고

따를 때 '성령'께서 감해주실 그날을 난 경험할 것임을 미리 알고 잇다.

그리함으로 난.. 내 영혼의 성화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을 것임도

주님께서 미리 보이심이다.


감사한 일이다.



주님.

말씀이 어쩌면 이 세상과 닮았는지요.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드세져 가는 세상의 힘에

자신도 모르게 숨고 동화되어 정체성을 잃어가는 세상입니다.

그 증거로

비단 우리나라의 '최'여인 사태 뿐 아니라

미국 중국 일본...유럽.. 필리핀.. 세 상의 다양한 나라에서

찾기 힘들 만큼 특이한 인성들이 세상의 리더 자리에서 세상을 뒤 엎고 있으며

우주와 자연의 원리에 정면 위배되는 '동성애'가

정상적인 소리를 누르고 막으려 하며

'사랑과 소통 부족'을 외쳐 대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무엇이 옳은지 모르고

우리 기독교인들도 마구 혼란스러워 하며

'기도'의 필요성, 기도하는 자들의 수, 그 기도의 뜨거움이 식어가고 있음을 봅니다.


AI, 메르스, ..수없이 많은 신종 병들이 창궐을 하고

홍수와 가뭄, 폭설, 토네이도 등이 세상을 강타하고

원자폭탄,환경오염, 곡물과 어족자원 고갈이 삶을 위협하며

로봇 , 또다른 AI인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일자리 부족 때문에 먹고살길이 막연해지고

거기에 '세대갈등' 과 지역갈등...................

종교 분쟁..

도저히 거론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종말론적'인 현상들이 산재함에도

우리는

우리 믿는 자들은

나는....

아직도 내 안에서 , 내 문제에서 , 명절로 상징되는 인간의 관계 문제에서

물질 세계의 틀 안에 갇혀

진리이신 하나님을 자꾸만 잊으려 합니다.


그래서 그들, 믿지 않는 자들이 어쩔 도리 없이 헤매고 있는 그 미혹의 혼돈 속에

우리 진리의 자녀들이 흔들리고 같이 방향을 잃고 있음이 너무도 속상합니다.


주여.

저라도,

믿는 저희라도

주님을 사모하는 '선택받은 소수',

좁은 문을 사모하고 좁은 길을 마다하지 않을 분 만이라도

'이미 명절이 지나가고 있어도'

' 죽이려 달려드는 자들 앞에서도'

'그들의 예상되는 괴이한 소리'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설파할 수 있는 '성령'의 알게 하심과

세상에 우월한 영적 강건함을 주시고

오직 그 날을 감해주실 '성령의 감동'으로 우리를 붙드시어

이제는

이제는 정말 '기도하는 자'들,

숨어있는 칠천 선지자들이 드러나게 하소서.

초연함을 주소서.

차분함을 주소서.

흔들리지 않을 평강을 주소서.


저도..

정말 자격없어 챙피하지만

적은 소리로나마 간구합니다.


주여.

진리이신 '불의하지않으신 하나님의 영'으로 굳건히 붙드소서.

예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붙들어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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