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성령의 바람처럼 흐르심(요 3:1-16 ) 본문
제 3 장 ( Chapter 3, John )
주님요...
성령 충만하게 해 주세요.
제발..요....!!
1.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니고데모란 아주 좋은 신앙인이
밤에 몰래, 갖은 위험을 무릅쓰고 주님을 뵈러 왔다.
그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긴밀한 관계가 있음을 심증으로 확신하고 있다.
그는 주님의 하신 기적을 통해서 그러한 확신을 가지고
예수님을 뵈러 온, 한편으로는 너무도 지적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갈급한 심령의 소유자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그러한 그에게
주님 예수님은 성령님에 대한 말씀을 하신다.
당연하지만, 성령으로 거듭 나지 않으면 '천국'을 볼 수 없다 하신다.
아직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지 않으신 상태.
그것은 보혜사 성령이 아직 오시지 않은 시기임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영접할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지만
아직 '성령'을 받지 못했기에 '천국'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자임을 알 수 있다.
그의 갈구와 간절함은 온전한 기독교인
천국 시민권을 얻은 자로서의 기독교인에는 미치지 못함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성령으로 낳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외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으로
방언, 예언...등의 신비로운 현상을 나타내 보이는 것도 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은 아니던가?
개인적으로는
첫 영접시 불면증이 사라지고,
신나게 울음이 나오고
수년 지나서 담배가 끊어지고 건강이 회복되어 가고
방언이 터지는 등 다양한 현상을 주셨지만,
그 보다 더 나에게 확실 했던 것은
마음이 넓어지고 시원해지며 여유로워져 가는 현상으로
영접하고 수개월 동안은 정말 기쁨으로 떠 다녔다.
은사는 다양하다.
긍휼의 은사도 , 가르침의 은사도, 구제의 은사도......모두 성령으로 나타난
외적인 현상 중 하나이다.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더구나,
예수님은 바람의 불어옴을 비유로
성령으로 난 사람도 하나로 구분하여 알 수가 없다는 말씀을 하셨다.
결국
오늘 묵상의 주제는 '성령으로 남'에 대한 것 같다.
위에 썼지만,
첫사랑의 강렬한 체험도 성령으로 인도하시지만
그외의 모든 과정에도
니고데모가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 생각으로 이해할 수 없고 짐작할 수 없는 형태로
마치 바람이 흐르듯,
그 분이 우리를 운행하여 가신다는 것이시다.
바람은
어디서 시작되어 부는 지
어떻게 어떤 세기로 어떤 질서로 부는지 짐작하기 어려웁지만
그 바람의 붐을 누구도 알 수 있는 것 같이
그리고 부는 바람은
성령이 우리의 영혼에 오셔서
믿는 자, 주님을 영접한 자들 만 이 아실수 있는
흔들림을 남겨 놓으실 것이시다.
문제는
이 흐르는 바람이신 성령님의 운행 이유이시다.
첫 사랑은 예수님을 시인하고 그 분에게 선택되신 증거로
인치시는 증거로 주님 성령님이 우리 영혼에 임하시지만
그 이후에는 '천국 백성'으로 합당한 영적 순화를 위하여
끊임없이 우리 영혼에 흐르고 계시는 것이시다.
그래서, 날마다 그 하나님의 흐르심이
내 영혼에 강한 폭포수 처럼 흐름으로 느껴가며
세속은 멀어져 가고
영혼의 더러운 찌기가 하나씩 사라져야 한다.
맥스루카도의 '예수님 처럼'이란 책을 한구절 읽다 보니
프랭크 로바크란 분의 이야기가 나온다.
( 맥스루카도 목사님은 기독교 잡지인 Christianity Today 에서 두번이나 최고의 크리스천 작가로
뽑힐 만큼 작가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목사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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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친밀한 교류를 항상 유지 할 수 있을까?
깨어 있는동안 내내 그렇게 살다 잠들때 그분 품안에 잠들고
다시 깰때 그분의 임재 안에 깰 수 있을까?
항상 그분의 뜻을 행할 수 있을까? 항상 그분의 생각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
하나님이 언제나 내 마음에 거하실 수 있도록 내 생각의 흐름 속에 시시각각
주님을 다시 불러들일 수 있을까?
내 남은 인생을 이 질문의 답을 찾는 실험으로 삼으리라
그 분은 성령의 흐르심을
'하나님의 임재를 느낌'으로 표현 하신다.
그 성령 하나님의 내 영혼 속에서 바람처럼 흐르심을
늘
매시간 느끼고 살 수 만 있다면 그 얼마나 황홀할 것인가?
그 성령 하나님의 흐르시는 바람의 느낌을
다양한 수도 없이 많은 분들이 사모하고
그들 중 일부는 그 기쁨을 '선교사'로서 일생을 헌신함으로 표현하시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전 재산을 털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수도사로서 자신을 바치기도
어떤 분들은 일상에서 '로바크'님 처럼 임재감을 열렬히 사모하기도 합니다.
맥스루카도 목사님은 '예수님처럼'이란 글에서
사람은 변화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우리는 어디서 배운것일까?
그것은 하나님께로서 나온 생각이 아니다
어머니가 자식의 눈물을 닦아 주지 않고 그냥 둘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바꾸시지 않고 그냥 두실수 없다.
당신을 향한 그분의 계획은 '새롭게 변화된 마음' 이다.
하나님은 당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지만
그 자리에 그냥 두시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당신이 그분의 마음을 품기 원하신다.
하나님은 당신이 예수님 처럼 되기 원하신다.
라 쓰시면서
그 분 예수님이 모진 공생애를 겪고 십자가에 달리면서 까지
헌신할 수 있는 바탕이 '성령'의 흐르심에 의한 것임을 말하고 있으시다.
난,
오늘
십여년 전 어느날
바람처럼 내 영혼에 들어오셔서
어리석은 내 영혼의 상태에 따라
가끔은 실바람처럼
가끔은 태풍처럼
가끔은 바람없는 뜨거운 여름의 오후 처럼
내 영혼을 흐르시면서도
내 인생을
날
지금까지 인도하신
그 성령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간절히 구하옵기는
우리 성령님의 흐르심을
이제 뚜렷이 느끼고
주님의 임재하심을 체험하며
우리 주님 뵈올 때 까지
흔들리지 않고 살기를 원합니다.
천국
그 놀라운 내 본향을
늘
체험하며 살길 원합니다.
도우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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