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무엇을 원하는가( 요1:35-51 ) 본문
제 1 장 ( Chapter 1, John )
난요.
청초한 한송이 꽃,
주님을 위해서만 피는
꽃을 피우길 원합니다.
35.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난 누구와 함께 하는가?
어디에 섰는가?
36. 예수의 다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예수님의 계심을 볼 눈은 있는가?
날마다 일상에서 그 분을 볼 영적인 눈은 있는가?
37.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거늘
들을 귀는?
좇을 결단은?
주님을 위해 헛된 소유를 버릴 용기는?
38. 예수께서 돌이켜 그 좇는 것을 보시고 물어 가라사대 무엇을 구하느냐
과연
나는 무엇 때문에 사는가?
무엇을 구하려 예수님을 뵙는가?
무엇을 원하는가?
5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주님 예수께서 나를 보시고 나를 구원하시고 나를 인도하셨음을 믿는가?
난
주하인이다.
나이 오십 다되어 가며
아버지로 아들로 의사로 찬양과 사진을 좋아하는 사회인으로 서있다.
예수님을 들을 귀와 눈이 준비는 되어 있다.
그러한 갈망으로 늘 탄다.
소유는 일정부분 포기했다.
쉽지는 않지만 하나 둘 내려 놓을 노력은 한다.
아직 강력하게 날 붙들고 있는 게 있다.
무엇 때문에 그리하는가 물으면
그냥 주님이 좋아서
그분이 주시는 놀라운 평강을 잃기 싫어서 그러한다고 고백할 수는 있다.
요즈음 확실해지는 게 있다.
주님은 천국의 기쁨으로 내 영혼을 붙들어 주심으로
그 기쁨으로 그 분을 놓을 수 없는 강력한 유혹이시기도 하지만
만일 ,
지금 내 나이에 주님을 몰랐더라 가정을 하면
내가 무엇을 위해 살것인가..하는 것이다.
난, 지금 확실히 무엇을 할 것인가 내 후반의 삶에서 정하지는 않았다.
물론, 막연하게 목표는 있다.
비록 강렬치는 않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후의 삶이 희망적이다.
옛날 젊을 때 아내와 내가 주님을 모르면서도
전문의만 따면...이라는 강렬한 기대감처럼
그리 열렬하고 뚜렷한 소망은 아니지만
훨씬 진실하고 크고 뭔지모를 나른하며 기쁠 듯한
그런 기대감이 내 속에 있다.
그러기에 이제
다른 외적인 조건 - 자식들의 번성함, 재물의 .....-이 그리 큰 의미를
주고 있지 못하고는 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 '넌 무엇을 원하느냐' 하면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라고 밖에 대답할 수 밖에 없다.
아침에 친구 부부가 진료실을 찾았다.
믿지 않는 친구.
덩치가 좋고 운동을 잘하는 미남 친구라서
세상에 잘 적응하고 재미있게 산다.
이 이야기 저 이야길 하다가
무엇을 원하고 사느냐는 질문을 해 보았더니
그냥 당황하고 잘 말을 못한다.
오십 가까이 되니 그냥 당황스럽다 한다.
육신의 능력도 그 나이가 되면 떨어지고
자신감도 부족해 지는 게 사실이다.
부인은 갑상선 저하증에 폐경의 나이가 가까우니
우울한 마음이 커진단다.
날 돌아 보았다.
예전에 그렇게도 많던 불안한 마음과 장래에 대한 걱정과 욕구 불만의 초조감이
이제는 아무리 보아도 내 속에는 없다.
장래를 보아도
난 내가 할 일이 있다는 생각이 많다.
돈이 안되어도 난 보람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그들에게 이야기 하니
날 쳐다보는 눈이 부러움으로 순간 바뀐다.
주님을 믿고 정말 좋은 것이
인생이 목표가 생기고 흔들림이 없는 것이다.
그게 육신의 힘이 떨어질 즈음
더욱 강하게 잡으니 그렇다.
난, 내 달란트를 주님을 위해서 쓸 수 있다.
그게 행운이다.
남을 위하여 산다는 것.
남이 남이기도 하지만
주님이기도 하시니 더욱 신난다.
그것도 기쁨으로 은혜 가운데 그리 될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은가?
주님의 일을 하다가 부수적으로 축복도 받을 기회도 되고
삶의 질서가 회복되어 잔병도 없어지고
묶인 여러 상처들이 풀어지고 관계도 회복될 가능성이 많아지니
그 얼마나 좋은가?
예전에는 재고 자르고 망설이며 어쩔수 없이 하던 많은 일들이
주님의 뜻 안에서 자유스럽게 이루어지니 참 행복하다.
이제
주님 안에서 원하는 내 인생의 마지막 큰 원함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아직도 뚜렷한 구체적 복안은 없다.
원함을 바라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주님이 주시는 평강을 잃지 않고
주님의 주시는 은혜 가운데
주님의 향기를 잃지 않으며
남들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그러면서도 내 속의 영적 걸림이 없는 일을 하게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적용
1.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 서 있는가?
한번 더 생각하고 반성하고 다잡는 하루가 되길 원합니다.
2. 주님 뵙고 들을 수 있는 하루가 되길 원합니다.
성령님.. 실제가 되게 하소서.
머리 속의 관념적 믿음을 넘어서 실제의 하나님을 뵙고 듣길 원합니다.
누구처럼 내 상념으로 왜곡되지 않은 정확한 .....기대합니다.
3. 내 원함을 주님께 여쭙고 주님 안에서 확실히 맞추어 간다.
55세 이후의 열린 삶. .. 선교를 지원하는 삶
내 달란트..찬양, 사진, 글.....주님 쓰이게 하소서.
Pf 숍에 대한 .. .. 내 자식들........아시지요?
4. 성경 여섯 장 읽겠습니다.
주여. 게으르지 않게 하소서.
5. 남을 위해 조금은 더 누구리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나를 위하여
남을 위하여
주님을 위하여.........
6. 매일 말씀을 사모함이 누구러지지 않게 하소서.
바쁨을 핑계로 주님.. 말씀 사모 잃어가는 제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이제 감사함에 받게 하소서.
기도
주님.
제가 누구인지
어디 서 있는지
왜 서있는지
어디를 가야 할 지
주님의 말씀을 듣고 매일 같이 수정하고 방향전환하고
바꿀 것은 바꾸고
고칠 것은 고치며
주님 동행을 흉내라도 내고 살길 원합니다.
어디로 인도하실지
어떤 모습이 될지 전 익히 알 수 없지만
주여 인도하심대로 살 수 있길 원합니다.
주님.. 그것이 어떤 것이든
남에게 도움이 되는 자가 되길 원합니다.
주님의 향기를 내 뿜을 수 있는자가 되길 원합니다.
부디
가지고 있는 막연한 바램이 있습니다.
그 바램이 이루어지길 소원합니다.
더 바라옵기는
그 바램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이 땅의 것을 이룸에 그치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의 영광,
하늘의 것이 이루어지는 데 더욱 가치를 두게 하소서.
예수님 저는 너무도 부족합니다.
이리 기도하여도
순간 잊어버리고 급한 성격으로 바뀌어 실수를 하기를 반복합니다.
불쌍히 여기시고
어서 고치시어
평강 속에서 온유하고 겸손하게 하소서.
주여.
성령의 보혜사 도움으로 그리하게 하소서.
자동적으로 주님 성령의 인도하심대로 이끌리게 하소서.
제 자아를 놓게 하소서.
주님 뜻대로 이끌리게 하소서.
주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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