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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은 감동이다(행 21:1-16 )

주하인 2011. 10. 6. 15:05

제 21 장 ( Chapter 21, Acts )

 

그러고 보니

주님은 감동이셨습니다

어디에 서 있든

어느 상황에 쳐하든

 

주님은

나의 의지이시고

내 소망이시고

내는 힘의 원천이셨습니다

 

주여

주님 계신 그곳은

어디든 모두

천국이 맞았습니다

 


4.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

    가지 말라 하더라 
  성령의 감동으로~라고 분명히 나온다.

그런 그들은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 한다.

한 사람도 아니다.

제자 '들' 이다. 

 
 
5.  이 여러 날을 지난 후 우리가 떠나갈새 저희가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그래도 '다른 사도 바울님의 결심' - 그 분이 성령으로 행동을 하지 않았으랴? 

모두 성령님의 감동 가운데 행하지만 왜 이렇듯 다른 결과가 나오는가-을 존중했다.

이게 중요하다.

그들은 '성령의 감동'을 주장하고 고집부리지 않았다.

나..

뜨끔하다.


  
11.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하거늘  
12.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곳 사람들로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사도 바울 만 '성령'의 감동이 없는 자가 분명코 아님에도

또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같은 성령이심이고 모두 감동하는 믿음임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과 다른 사람들의 결정이 다르다..!


 
13.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결과는 안다.

그러나 그 후를 바라보고 하는 '결심'

성장하는 자는 이렇다.

아픔 뒤의 주님의 뜻을 본다.

 
 
14.  저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그리고 착한 신앙인..은 이렇다.

성령의 ..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게

조금 다른 듯 보여도

주님의 뜻에 틀리지 않으면

받아 들이는 것이다.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아주 성숙한 신앙인과

아주 성숙하게 될 신앙인 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절절하다.

그런데 그들은 다른 반대의 결정을 내렸다.

그럼에도 그들은 다른 그들의 상황을 받아 들이고

다른 그들의 결심을 존중하였다.

서로 자신의 뜻이 하나님의 뜻인양 하지 않았다.

그리고 깊은 인간적 유대의 감정으로 '눈물바다'를 이루어 냈다.

 

오늘 말씀에서 난, 나의 모습을 들여다 보았다.

가끔..나.. 말씀 가운데 전율처럼 깨달은 것을 가지고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마치 내가 그들보다 우수한 듯 착각을 하는 경우가 없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심지어는 환경이 나에게 불리하고

내가 약한 상황에서조차 이것이 하나님의 허락하신 상황을 알때

내 마음에는 깊은 감동이 있으면서도

그런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조금은 안타까운' 게 사실이었음도

죄송하지만 고백한다.

그리고 내 감동이 너무 진할 때

나랑 다른 의견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얘기하는 분들을 볼때

그들을 백안시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비록 겉으로 표현을 못했었을 수 있을지라도..........

 

 그런데 오늘 말씀을 통해서 성령의 감동을 받음에도

이렇게 다른 결과로 표출됨을 보고 있다.

 

무엇을 말씀하시려는가?

일상에서 많은 분들이 성령 충만한 자라면서 '딱 부러진 예언'을 하면서

그것을 거부하면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 같은

두려움을 주기도 하는 데.......

나역시 위의 고백처럼 저런데.....

아닐 수 있는 것은 왜이던가?

 일단, 성령의 감동에 대하여 묵상해 보았다.

감동이라면 느끼는 사람의 특성에 따라 다른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어제 짝이라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우연히 보았던 몇 주전의 프로 그램에서 상당한 호기심이 발동되어

기다려서 보았던 프로그램.

 

 어제 애정촌 입소 초기 서로 호감이 있던 여자 2호와 남자 5호가

입소 중반이 되면서 남녀 5호끼리 가까워지면서

2호는 남자 7호와 짝이 되기 직전까지 가까워 져갔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둘 사이는 학력 차이가 너무 나 여자가 월등한 조건이라서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마지막 확인 절차였다.

 차 안에서 대화를 하며 서로의 초기 감정을 솔직히 늘어 놓으며

남자의 목소리가 우세해져가며 여자는 갑자기 눈물을 보이며 말을 잇지 못한다.

 

  나.

' 여자가 남자를 깊이 마음에 두었던 모양이네?'

 아내

' 당신은 그래서 여자 마음을 모른다는 거야...

 저거 여자가 억울해서 그래.

 봐 ... 저 두사람 절대 안되요.'

아니나 다를 까... 오분도 지나기 전에

곧 둘은 서로 다른 파트너와 짝 지워지고 말았다.

왜 똑같은 내용을 보고 다른 생각을 하였을까?

왜이리도 부부라면서 남자와 여자의 생각차이가 이토록 클까?

ㅎㅎ

 

성령께서 만일 하나의 감정만으로 감동을 요구하셨더라면

이 세계는 사람보다는 '로봇'이 움직이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난 .. 어리 석게도

아마 많은 분들도 어리석으시게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강제되고 ,

힘있는 분의 경험에 의하여 정제된 하나님이 아닌 율법적 형상 안에서

또 죽어가는 왜곡된 신앙으로 단단히 틀을 쌓고

남에게 , 나에게 스스로 상처를 입혀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왜 저리 달리 나오는가?

사람의 특질 마다 감동이 다르기에 그렇다.

그 특질은 그들의 감정이 가장 순화된 상태의 감동이다.

그러기에 어떤 분은 아름다운 사랑으로

어떤 분은 존경할 만한 충성으로

또 다른 분은 깊은 긍휼로

어떤 분은 놀라운 크기의 스케일로 ...

그래서 하나님 나라인 천국에서 사는 자로의 심성에 조금 근접한

펼쳐지고 확대된 감동이 있게 된다.

주님을 영접하고 당연히도 성령의 체험이 있어야 하는 당위성이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처럼 철저히 선교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람들의 감동과

사도바울로 인하여 이 감사한 예수님을 영접한 자들의 사랑의 감동과는 사뭇 다른 표현으로

나오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성령'의 감동을 내 수준으로 제한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 될 수가 있다.

 

 성령의 감동은 다른 표현에도 불구하고

 주님 안에서, 주님의 뜻 안에서 모두 '선'하다.

 

  나.

특별히 더욱 마음의 폭을 넓히고

영혼의 폭을 넓혀야 한다.

받아 들이고 인정해야 한다.

어느 것도 다 옳을 수 있다.

 

단...

하나님을 믿지만 꼭 성령의 감동이 아니면서

성령의 흉내를 내는 사단도 있다.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다른 뜻은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

불신자들의 그럴 듯한 '인본주의'가 우선하는

통합주의 .

종교 다원주의.

하나님을 우선하는 이유로 인하여 다수의 힘을 동원하는 논리...는 철저히 배제해야한다.

그러기에 성령의 감동으로 인한 다른 뜻과 구분하기 위해서는 '지혜',

기도와 말씀으로 중심잡힌 지혜가 필요하다.

 

 감사하다.

말씀으로 늘 잡으시는 하나님이 감사하다.

말씀을 붙들때 감동으로 날 붙드시는 하나님이 감사하시다.

그 하나님을 느끼는 내가 자랑스럽다.

점점 변하는 내가 사랑스럽다.

 

 

 

적용

 

1. 성경 세장 읽겠다.

 

2. 다른 의견을 받아 들인다.

 특히, 하나님의 뜻 안에서 다른 의견은 철저히 마음을 여는 노력을 하겠다.

 

3. 타인의 감동을 존중하리라.

 타인을 긍휼히 여기리라.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리라.

 

4. 나도 존중한다.

 내 행동은 가끔 옳지 않을 때도 있지만

나 역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

하나님을 감동하는 자다.

 그것으로 존중 받아야 할 특별한 이유다.

 잘못된 행동은 회개한다.

 

5. 당직이다.

 더욱 진중하리라.

기도하는 마음으로

오는 모든 분들을 깊이 대하리라.

 

6. 똑같은 말, 이해하지 못하는 분, 반대하는 소리..........

 주여... 제 변함없는 반응의 행동 을 용서하소서.

 

기도

 주님.

저의 부족한 부분을 들어 보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와 다른 의견을 이해하지 못하고

편협한 제 눈을 깨우치려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오늘 같은 성령의 감동에도

사도바울 님은 '예루살렘'으로

제자들과 동역자들은 같은 성령의 감동으로

' 예루살렘 못가게 ' 막는

다른 결론의 행동이 나옴을 봅니다.

저 같으면 .. ' 이.. 내가 제대로 못가르친 제자들아.. ' 하며

잔소리할 지도 모를 것 같은

아니면, 그들의 성령 감동을 잘못된 '신앙'으로 몰아붙힐 위험이 다분한

이 조급하고 미숙한 신앙을 불쌍히 여기시사

감동을 감동으로 보게 하는

깊은 통찰을 허락하시고

사람들의 다양성을 더 넓게 인정하고 바라보는 지혜와

넓은 시야를 허락하시어

그 다양성 중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어 가는

놀라운 통합성을 허락하소서.

부디 바라기는 역겨운 세상의 '다원주의'나 세상의 그릇된 논리가 오염되지는 않게 하시고

그들이 주장하는 대책없는 긍정론과 성공지상주의,

그들의 하나님을 앞서는 인도주의, 그리고 인간이 신인 듯

주인없는 논리들에 흔들리지 않게하소서.

홀로 있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시고

고독과 외로움을 구분할 지혜와 영혼의 넓어짐을 허락하소서.

제 자식들.. 꼭 기억하시사

이 어려운 세상에 중심잡히도록 도우소서.

저..

더 사랑으로 세상과 내 주위를 바라보게 하시고

내 자식들을 더 깊은 긍휼로 대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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