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선한 유대 인( 삼상27:1-28:2 ) 본문

구약 QT

선한 유대 인( 삼상27:1-28:2 )

주하인 2008. 6. 25. 12:13

제 27 장 ( Chapter 27, 1 Samuel )

 

 꽃이

너무도 아름답다.

붉은 계열...

 

백일홍인가?

 

 

 

  어떤 것은

다른 것 보다

더 붉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은

우리의 판단을 넘어서는 경우도 있다.

같은 보혈의 은총도

주님의 그 붉은 피로

더욱 새 하얗게 빛나는

세마포를 입은 자들도 있다.

그들은

감히

비교하고 판단할 바가 아니다.

오직

주님 만이

네가 더욱 아름답구나..라 하실 수 있다.

내 눈에는

백일홍이

유난히도 아름답다.

모두.......

 

 

 

 


1.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망하리니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상책이로다 사울이 이스라엘 온 경내에서 나를 수색하다가 절망하리니 내가 그

    손에서 벗어나리라 하고  
2.  일어나 함께 있는 육백인으로 더불어 가드 왕 마옥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건너가니라  
 

 다윗이

주님께 묻지도 않고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들어가 아기스에게로 간다.

 그러나,

주님께 질책을 받았다는 구절이 없다.

 

 

3.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각기 가족을 거느리고 가드에서 아기스와 동거하였는데 다윗이 그 두 아내

    이스르엘 여자 아히노암과 나발의 아내 되었던 갈멜 여자 아비가일과 함께 하였더니 
 
 다윗이

남의 부인이었던 아비가일과 산다.

 죄다.

 하지만, 주님께 경고 받았다는 흔적이 없다.

   

 
11.  다윗이 그 남녀를 살려 가드로 데려가지 아니한 것은 그의 생각에 그들이 우리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다윗의 행사가 이러하여 블레셋 사람의 지방에 거하는 동안에 이같이 행하는 습관이

     있다 할까 두려워함이었더라

 

 다윗이

들킬까 두려워

남녀 모두를 죽여 버리는 일을 벌인다.

무서운 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주께선

아무렇지도 않으신가 보다.

 

 

 엊 저녁에

응급수술을 마치고

다음 주 부터 있을

새벽예배 찬양 인도

일주일 분을 선곡하고

파워포인트 만들고 나니

12시가 다 되어 간다.

 병원을 나서서

버스를 기다리니 오지 않는 듯,

마음을 바꿔 걸어가기로 했다.

 

 한참을 걸어서

안양역 근처를 넘어

더 내려가다 보니

건널목 사거리에

모퉁이 건물 벽에

한사람이 고꾸라져

거의 몸을 동그랗게 말고 누워 있다.

 젊은 남자인데

술냄새가 진동을 하고

이상한 냄새까지 나는게

아마 실례를 한 모양이다.

 얼굴을 찡그리고 약간 떨어져

건널목 앞에서

파란 불로 바뀌기 만을 기다리는데

영 바뀌지를 않는다.

 자꾸만 그 사람에게 신경이 쓰인다.

몇 사람이 힐끗거리고 쳐다보고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지만

누구도 다가가지 않는다.

 냄새도 심하고

치한으로 오해 받을 소지도 있고

더구나 허리디스크 있는

늙어가는 남자로서

난 이전에 그랬듯,

꿋꿋이 참견을 하고 싶지 않았다 ^^;;;;;

 그런데,

불이 바뀌지를 않는다.

내 시간 개념이 달라져 버렸나..

서서히 마음이 자꾸만 그리로 쓰인다.

 저러다가 사람이 뜸해지면 틀림없이

치기배에게 당할 텐데..

그냥 방치하고 갔다가

내 이  죄를 어찌 감당할까.. 생각이 자꾸 든다.

머리 속에서 갑자기

'선한 사마리아인' 이 떠오른다.

그래도, 현실의 벽은

너무나 두껍다.

그래도.

그래도...

그러다가,

큰 느낌이 버럭하고 다가온다.

'내일 모레.. 이 모습으로 .. 무슨 ... .집회에.....'

그렇다.

자꾸만 '하나님'이 의식이 되기 시작한다.

하나님 소리만 들으면

내 판단은 하나로 흘러 버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그게

내 유일한 장점이긴 하다.ㅎㅎ

 어떻게 해야 좋은 방법일까 생각하며

대기하고 섰던 건널목 신호등 아래에서

청년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이리저리 그 사람의 자세를 살피려

몸을 굽히며

'이걸 어쩌지..'라며 중얼 거리자

나랑 같이 섰던 중년의 부부 - 죄송하지만 술도 드시고 담배도 피우고

얼굴을 뵈니 남자분께선 그리 정의로와 보이질 않았다. ㅎㅎ -가

갑자기 뭐라한다.

그 분은 그러면서

담배를 피워무는데

얼굴이 약간은 벌건게

약주 한잔 하시고 오시는 모양이시다.

들어보니 이러신다.

' 제가 119에 신고했어요'

그러시면서

' 올 때까지 저희가 있을 께요.'

 

난 소름이 확 끼쳐온다.

'그게 그러했었구나.

이 분들이

선한 사마리아 인이구나.'

 속이 짠하여온다.

한편

더러운 오물과 술냄새에,

내 허리의 고통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자유로와 질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더우기,

예상되는 모진 오해나

경찰에 의한 볶임 등으로 부터

자유로와 질 수 있다는 안도감이

얼마나 다행인가?

 하지만

무엇보다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안도했던 것은

만일 그대로 갔더라면

주님께서 안타까와 했을것 같다는 것과

이 기쁨을 맛보지도 못했을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난 순종으로 답했다.

 

 그렇다면

이전의 나는

예수님을 믿었으면서도

비슷한 수 많은 선한 일의 기회에

그러지 아니하고 왔을 때에도

주님은 이리 날 속상해 하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밀려온다.

 또한 그게 맞다면 - 속상해 하지 않으실거라라는 것...틀림없이 맞을 것이다. -그

수미산 보다 높은 죄를 뚫고

내가 어찌 주님의 사랑을 감당할 수 있단 말인가..?

 주님은 그래도 

날 이리 위로하시는 것을 보면

날 사랑하시는데

이 추악한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또 어찌되신 분이신가..하는 생각이다.

 

 답이 그거다.

 

 난,

그때보다는 컸고(영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

상황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주님은

나의 상황에 맞추어

최대한 사랑을 주시고

이해하시는 분이시며

가장 적은 순종을 보시고

이전의 모든 것은 잊으시는..

정말 놀라운 망각력을 가지신 분이시란 것 !

 이러한 깨달음들은

날 자유롭게 한다.  

 난

자유로운 영혼의 상태를

순간적으로 느끼고

놀랍도록 기쁘다.

 

 손을 들어 엄지 손가락을 위로 들었다.

그리고는 팔을 뻗어

그 분들의 앞에 들이 밀었다.

눈에는 힘을 주었다.

목소리는 깔고

맑은 톤으로 이랬다.

' 선생님

오늘 정말 좋은일 하셨어요.

얼마나 기쁜지요.......'

그러면서

한걸음 돌아서 가다가

다시 돌아보고

또 한번 그랬다.

 '정말...........'

눈을 힘을 주고

고개를 낮추며

손가락을 도장찍듯이

두 부부를 향해 꾹 내밀었다.

 담배를 피워 물던

남편 - 약간은 불량스러워 보이시던.ㅎㅎ - 께서

담배를 피워 물고

불을 켜려다가 '멈칫 '한다.

 그러면서

가능하면 자제하려고 노력하는 게 보인다.

거친 사내의 입꼬리가 약간은 말려 올라가며

씰룩씰룩 웃음을 참으려하는게

정말 귀엽게 ^^; 보인다.

 '역시 사람에게는 칭찬이 최고다.'

 돌아서니,

그제야 '푸른 불 신호'가 들어온다.

가던 발걸음을 재촉하여

내 집으로 열심히 걸어왔다.

 

 

 

 생명은 이리 강하다.

생명은 이리 아름답다.

주님은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주님을 놓치지 않는 자를

정말 귀히 여기신다.

 

 

 

 늦은 밤이지만

상쾌한 밤이다.

하늘을 우러러 올려다 보았다.

별이 맑다.

 

 강변으로 내려섰다.

늦은 밤.

아름다움은

곳곳에 숨어있다.

 

 아침에 읽어본

묵상 구절의 다윗은

그동안 그리도 칭찬해온

주님과 동행하는 삶의 모습을

하나도 보이지 않고 있다.

어떻게 보면

모조리 자기 뜻대로

자기 판단대로 하는 듯하다.

그럼에도

주님은 뭐라 하지 않으신다.

 

 갑자기

어제 상황이 떠오른다.

 이전에는 그냥갔어도 아무소리 안하시더니

어제는 부담을 주신다.

부담에 순종하니

은혜를 주신다.

돌아보니 어이없는 악한 유대인 같이

행동했을 때에도

주님은 날 사랑하셨었다.

 그러고는

일상에서의 작은 순종에

주님은 놀라운 은혜로

날 붙드신다.

입에서 자유라는 소리가 나온다.

12시 넘어 퇴근하는 (내가 비록 초래했지만 )

격무와 걸어오는 길

외로운 내 발걸음에

무엇이 날 기쁘게하는가?

 주님이다.

 

 다윗은 그랬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그 분은 놀라운 영적 친밀감을 

그 분 하나님과 누리고 있다.

그게

그때쯤의 다윗에게는

거침이 없는 믿음의 성장을 이루게 된 것이다.

마치

어릴 적 간섭없이 크다가

학창시절 심한 간섭 하에 성장하고

더 커버려

전문인이 되거나 사회인이 되면

자신의 선택이 중요한 것 처럼

다윗은

성장한 사람이다.

그는

누가 간섭을 하지 않아도

웬만한 일에는

거칠 것이 없는 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주님을 손잡고 가다가

이제는

주님을 숨쉬는 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의 행동이 비록

현대인의 눈으로 보거나

이전까지의 판단으로 보면

그리 본받을 만한 일은 아니지만

어쩌면

주님과 깊은 교류 가운데

허락 맡았거나

주님의 이해 가운데서 행해진

일 일 수도 있다.

그러기에

그는 자유로운 것이다.

그걸

현 상황의 내 영적 성장으로 가지고

그 분을 판단함은 오류일 수 있다.

 주님 안에서

주님이 바라시는 것은

'자유'다

그 분 안에서의 자유.

비록 내가

어떤 위치

어떤 상황

어떤 어려움에 있더라도

그 안에서 누리는

기쁜 자유...

주님은 그것을 누리면서

인생을 살다가

인격적으로 정화되지 못했던 부분들을

가벼히 털어버리고

당신 곁에 좀더 가까이 와

사도 바울이 말하던

그 삼층천의

진짜 천국의 삶을

영생하길 원하시는 것이다.

 

 다윗은

한걸음 더 다가간 사람으로

보인다.

오늘.......

 

 

 

적용

1. 함부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자

 판단은 주님 만이 하신다.

 난 월권을 행하는 것이다.

 그러면...

 

2. 자유를 감사한다.

 당황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은 주님 만 판단하신다.

 남의 눈치살필 필요조차 없다.

 

3. 주님은 주님의 일을 할 때

 깨달음을 허락하신다.

 

 아침에 집앞 다리를 건너오면서

갑자기 '오지수'가 보고싶다.

한참 격랑치던 내 속에 큐티를 인터넷에서 나누기 시작하자마자

9살배기 큐티어...가 그 방에 나타났다.

 천사같던 그 아이.

샤바락샤바락,

비밀의 방.

..........너무 맑고 좋은 단어로

온 큐티어의 시선이 집중되던 아이..

그 아이를 통하여

놀라운 은혜를 나누게 하시던 게 기억난다.

그렇게 그렇게

주님은 날 잡으셔 간다.

그때는

그 천사 같은 지수 큐티어로..

지금은 말씀 묵상으로 ..

다윗도 그랬다.

 때가 되면 도우미가 나타나고

때가 되면 변화가 된다.

 

3. 성경 여섯 장 읽겠다.

 

4. 회개한다.

 늘 정결한 마음으로 ..

 

 

 

기도

 

 주님

말씀을 묵상하고

적용을 하려 애를 써도

어느 순간

사람들 앞에서

군림하고 싶어하기도

칭찬을 받고 싶어 안절 부절 못하기도 하고

가르치고 싶어하기도 하고...

어찌 이리도 변화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는지요.

다윗의 모습을 보면

그 때 거기에 있었더라면

아마도 손가락질하고

비웃었을 지도 모를 저 올시다.

주님

그럼에도

그런 나를 사랑하시어

조금만 잘한 점이라도 보이면

그리도 은혜를 쏟아 부어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

전 너무도 감사합니다.

살아계신 주님을 인식하고

그 인식이 제 삶이 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호흡하는 중에 느끼게 하소서.

그리하여

자유로운 삶을 살되

선한 사마리아인보다

더 선한 유대인이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