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생명싸개로 날 쌓아주소서( 삼상25: 18-35 ) 본문
제 25 장 ( Chapter 25, 1 Samuel )
이
적은 꽃 보다
더욱 적게만 느껴져
늘
숨고만 싶었던게
저의 본색이 올시다.
오래 전
고백했듯
주님을 모르는
역기능 가정의 소산은
참으로 질기게도
내 삶을
힘들게 해왔습니다.
이제
꽃이 피려합니다.
적지만
아름다운
주님의 피로 닦인
그
하얀 색깔의
꽃 말입니다.
날 쌓고 있는 것은
주님의
그
짓푸른
녹색의 잎사귀 같은
생명싸개입니다.
주님..
늘
날마다
감사드립니다.
20. 아비가일이 나귀를 타고 산 유벽한 곳으로 좇아 내려가더니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자기에게로
마주 내려오는 것을 만나니라
23. 아비가일이 다윗을 보고 급히 나귀에서 내려 다윗의 앞에 엎드려 그 얼굴을 땅에 대니라
난
이런
절박함이 있었던 적이 있던가?
28. 주의 여종의 허물을 사하여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반드시 내 주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시리니
이는 내 주께서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심이요 내 주의 일생에 내 주에게서 악한 일을 찾을 수
없음이니이다
참 멋진 말이다.
'여호와의 싸움'
다윗은 그렇다.
나도 그런가?
아주 적은 생활 반경에서
의사가 가질 수 밖에 없는
비교적 적은 경험의 폭..(편견인가?ㅎㅎ )
등으로
여호와의 싸움의 단어를 붙히는데도
문제가 없지는 않을까?
하지만
모두 개별적으로 다루시는
하나님의 성화의 원리에서는
여호와의 싸움이 될
자격은 언제나 있다.
29. 사람이 일어나서 내 주를 쫓아 내 주의 생명을 찾을지라도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 내 주의 원수들의 생명은 물매로 던지듯 여호와께서
그것을 던지시리이다
생명싸개라..
멋지고
적절하고
원초적인 표현.
상상이 확간다.
생명의 기운
성령의 충만함 보다
더 크고 비교할 바 없는 느낌 속에서
뱃속으로 부터
전 영혼에 흐르는
놀라운 생명의 강이 흐르는 느낌 속에서
주님의 날개 안에
쌓여 있는 느낌.
생명싸개...
멋진 표현이다.
33. 또 네 지혜를 칭찬할지며 또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오늘날 내가 피를 흘릴 것과 친히 보수하는
것을 네가 막았느니라
다윗의
낮은 곳을 향하는
분노의 물결을 막아 냈다.
주님의 주시는 생명의 흐름이야말로
광폭한 분노
정결하지 않은 가장된 의분
부하뇌동으로 이루어지는
광폭한 마귀적 자극 등을
막아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35. 다윗이 그가 가져온 것을 그의 손에서 받고 그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평안히 올라가라 내가
네 말을 듣고 네 청을 허락하노라
어제
알파님의 제안을 받고
두가지 생각이 내 속에서
소용돌이 치며
가슴이 두근대고
약간은 흥분된 상태가 되었다.
당연히 하나는
자랑스럽고 감사하며
그 자리에 서서
내가 가진 '기쁨'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의예 그래 왔듯이
실수하는 두려움과
자격도 없는 아마추어가 과연......이라는
생각이 충돌했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편하다.
왜냐면
결정은 내가 안해도 되는 것을
알기에..
오늘까지 답을 달라시는
급박한 요청에 혼란 스럽기는 했지만
주님이 허락하시면
어찌하든 될 것이란
나름의 이루어진
믿음의 방법론이
내 안에서 유지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콩닥거리는 가슴을 누르고
수술을 끝내고
아내와 급히 교회로 가서
예배드리고
기도하다가 호출이 와서 집으로 왔다.
아무래도
멍하니 아무런 느낌이 없기에
기도원으로 늦은 새벽 향했다.
홀로.....
가면서
가만히 가만히
주님께 여쭈어 보았다.
확신은 없지만
불현듯 드는
깨달음이 있다.
과연 나같은 사람이.. 라는 의문에 대한
깨달음이 그것이다.
늘 간증 집회에 가보면
놀라운 기적과
놀라운 흥분과 힘이 느껴지곤 했는데
내 간증이
그들 듣는 자들의 마음을
그렇게 끌어 당길 수가 있는가 하는
혼란이었는데...
주님이
그리 부족한 느낌의
나에게 놀라운 제안을 하신 것은
나에게 나누길 원하시는
어떤 것이 있으신데
과연 그것이 무얼까라는 것이었다.
늘 블로그에서 그리 얘기 해왔지만
그걸 실제 삶에서 풀어내기에
집중력이 적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었다.
어제 깨달음을 이랬다.
난
주님이 참으로 기쁘다.
주님이 기쁨을 안다.
마음으로
영혼으로 ..
그리하여
난
주님의 기쁨을 놓치는게 싫어서
주님의 말씀을 순종할 의지를
아주 조금씩 나마
발휘할 수 밖에 없었고
그러한 나의 선택은
내 영혼에 부어지는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정결화 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 삶은 조금씩 조금씩 달라져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의 패턴이 바뀌게 되어
실상
현실적인 것 까지
회복이 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마음과
영혼의 변화와 더불어 생긴
현실의 축복까지
말씀의 원리에
그대로 들어 맞음을
난 정확히 인지하고 있기에
그러한 확신은
다시금
내 찬양을 통한 표현과
배워보지도 않은 키타 와
역시 노력해보지도 않은
사진 까지
하나하나 개발되는 역사가 일어났던 것이란 것이다.
그렇다면
일반 간증 자들의 놀라운 기적에 대한 간증에
비교하여
그 분들의 한쪽 부분에 비교적 집중되어 있는
축복의 역사에 대한 간증과는
조금은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게
날 위안하시는 점이시었다 .
난
전인적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것이다.
그게 비록
신비적이고
기적적이고
퍼부어지는 감당키 어려운 물질의 축복은 아니더라도
남들과 나눌
나만의 경험이 아닌가 싶다.
정말
그러고 보니
주님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행하고 말씀하시던 모든 것이
전인적(全人的 영, 육, 혼 모두..)인 것이다.
그 분은
말씀으로 마음의 교훈도 주시고
육신의 치료 및 축복도 주시고
성령을 통하신 영적 인도까지...........
전인적인게 그 분의
세상에 행하신 축복이 아니던가?
그 전인적 변화를 위해
'너희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난
그 원리를
조금은 체득하고 있는 자이다.
그게
나눌 가치가 충분한 것이다.
전인적 원리....
병원에서
전인치유의 찬양을 인도하게 하신 것도
전혀 우연이 아니시다.
그 분은 하나도 거저 버리시는 게 없으시다.
오늘
마지막 구절이
새벽에 붙들었던 말씀이다.
과연
알파님의 제안에
그게 답인가?
'말씀대로만 보면'
그 것은 응답이지만
상황이 다르지 않는가?
더더구나
확하고 꽂히는 필링이나
신비적 체험이 없다.
그래서
그냥
표적을 구했다.
알파님에게 토스를 했다.
나머지는
기다릴 뿐이다.
아니시면 관두리라.
가벼히...
주님.
아시지요?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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