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나도 다윗의 길을 간다. (삼상 26:13-25 ) 본문
제 26 장 ( Chapter 26, 1 Samuel )
천성 가는 길이
꼭
밝은 대낮의 길만은 아님을
다윗의 고난 속에서도
봅니다.
하지만
주님 예수님의 빛이
제 영혼 속에 켜져 있는 한
성령 하나님께서
제 길을 인도하시는 한
전
흔들리지 않고
그 길을 가렵니다.
13. 이에 다윗이 건너편으로 가서 멀리 산꼭대기에 서니 상거가 멀더라
그래.
애초에
악은 멀리 떨어지는 게 좋다.
미련을 가지고
안타까움을 가지고
아웅다웅함은 못쓴다.
끊을 것은 과감히
'상거'를 멀리하라.
14. 다윗이 백성과 넬의 아들 아브넬을 대하여 외쳐 가로되 아브넬아 너는 대답지 아니하느냐
아브넬이 대답하여 가로되 왕을 부르는 너는 누구냐
다윗이
사울을 직접 부르지는 않는다.
악은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는게
성경의 뜻이고
더구나
사울은 예절 상
그리 함부로 부르지 아니할
이름이다.
다윗에게는..
믿는 자에게는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
지켜야 할 것은
꼭 지키는 도리가 중요하다.
20. 그런즉 청컨대 여호와 앞에서 먼 이곳에서 이제 나의 피로 땅에 흐르지 말게 하옵소서 이는
산에서 메추라기를 사냥하는 자와 같이 이스라엘 왕이 한 벼룩을 수색하러 나오셨음이니이다
자신을
한 벼룩이라 낮춘다.
이스라엘 왕 같이
겨우 한 벼룩 같은
보잘 것 없는 자신을 잡기 위해
나왔냐고 한다.
자신을 낮추고도
말을 훨씬 더 정확하다.
그것은
그가 그렇게 자신을 인정하고 낮추어도
자신은 아무렇지 않음을
보이고 있다.
낮아 졌고
그것을 인정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것을
인정하지 않고 두려워 하면서
피할 때 보다는
훨씬 당당하다.
그 이유는
다윗이
여호와 안에서
확실히 자기 정체성이 익어가기 때문이다.
24. 오늘날 왕의 생명을 내가 중히 여긴 것같이 내 생명을 여호와께서 중히 여기셔서 모든 환난에서
나를 구하여 내시기를 바라나이다
주님 안에서
주님의 뜻대로
환란과 연단을 받아 넘기며
익어가는
자신감의 결과이다.
그는
주님 때문에
쉬운 길을 멀리 돌아감을 선택했다.
그는
주님 때문에
쉬운 길을 포기하고도
결국은 이겨낼 수 있음을
배우고 있다.
그는
주님의 이유로
황무지에 있으면서도
그리 불만과 불편을
호소하지 않았다.
그게
그의 자신감을 키워 가는 것이다.
25.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내 아들 다윗아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네가 큰 일을 행하겠고 반드시
승리를 얻으리라 하니라 다윗은 자기 길로 가고 사울은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
사울은
쉬운 길을 택하고
눈에 보이는 사람을 택하고
현실을 우선 택한 사람이다.
반면에
다윗은
지금까지 처럼
주님의 길을 선택한 사람이다.
결국
일시적일지 몰라도
사울의 입에서
또 한번
다윗의 길이 옳은 길이고
그가
복이 있는 자 임을
선언토록 만든다.
그리고는
사울은 사울의 곳으로
다윗은 다윗의 길로 간다.
이처럼 세상의 길은
쉽고 유혹적이다.
눈에 즉각적이고
합리적이다.
의지할 곳 많은 듯하여
덜 외로운 듯하다 .
그러기에 고민할 일이 별로 없는 듯하다.
반면에
다윗의 길을 보라.
하나님을 의식하는 길이다.
그러기에
멀리 돌아가야 한다.
눈에 사울이 들어와도
죽이지 못하고
그런 탓에
더 시간을 끌고
또 쫓기는 미련한 짓을 되풀이 해야한다.
잠도 편히 자지 못한다.
그 삶에는
광야,
황무지의 삶이 필연이다.
가끔
잘못이라도 하는 날이면
주님이 의식이 되어
안절부절 못하는 불면의 밤도 있을 수 있다.
억울하기도 하다.
이것은 아무리 보아도
합리적이질 않다.
외로운 길이다.
좁은 길이다.
가시 밭길이다.
누구도 가지 않으려는 길이다.
아니
가고 싶어할 길이기는 하다.
그러나
가지 못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게
주님을 옳게 믿는 자들이
주님을 기뻐하는 자들이 가야 만 하는
길이기도 하다.
다윗의 경우를 보아도
결코 자신의 의지로 되지 않는다.
그는
오랫 동안 기다렸고
잠시의 왕궁 생활 후
즉시
광야의 피난 생활로
고난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서서히 변화를 보인다.
눈에 띠는 변화를 보인다.
그러기에
그것을 사울이 알아본다.
그게 옳다.
주님이 원하시는 길은
고난의 길이기도 하지만
그 고난이
절대로 혼자 가는 길이 아니다.
고난이 있고
외로움은 있지만
고난이 큰 만큼
놀라운 위안이 있다.
성경에도 나온다.
예수로 말미암아 고난이 넘치는 것같이
예수 때문에 은혜가 넘친다고..
그러기에
믿는 자들은
그 길을 갈 수 밖에 없다.
그 길은
주님이 예정해 놓으신 길이다.
그 길은
'성화'의 길이다.
이 땅에서
안전감과 교유와 나름의 신앙의식을 통한
죄책감의 제거와
안온감으로 안주하는 자들로서는
알수가 없는 길이다.
사울도
신앙인의 흉내를 누구보다 잘냈다.
그러나,
그는
다윗의 길과
완전히 다른 길로 가고 있다.
그는
다윗을 부러워 하고 있다.
자기에게 쫓기고
아직도
고난 속에 허덕이는
다윗을 부러워 하고 있다.
왜 인가?
다위은
그에게서 볼 수 없는
어떤 놀라운 평강과
넓은 든든함을 느꼈기에 그렇다.
그 실체를
비록
세상의 헛된 유혹의 멍에 속에
사로잡혀 있지만
그것은
하나님과 비교할 바가 아님을
그 영혼이 알고 있기에 그렇다.
그 길은
성화의 길이다.
성화는
반드시 걸어야 하고
고난이 필수이기에
현재의 환란은
따라서
눈물일 것 같지만
눈물일 수가 없다.
고난은
주님이 의식이 되기만 하면
평화이자
평강이고
놀라운 기쁨일 뿐이다.
그 분이 펼쳐 주시는
심령의 놀라운 팽창은
감히
누구에게 형용할 수 없는
자유로움이다.
그러기에
그 길을 갈 수 밖에 없다.
다윗은
힘들지만
자기의 길을
그래서
간다.
적용
1. 고난을 피하지 않는다.
참는다.
실은 영적인 공격이 있는지
내 속이 안절 부절이다.
그래도 인내하겠다.
목뒤도..
등도.........아프다.
기쁨으로 인내한다.
주여.
2. 주님은 복이다.
아침에 가니
새벽기도회 후
엊 저녁 소천하신 W과장님 모친 추도 예배가 있다.
병원 전 스텝이 거의 참가한
놀라운 인파로 예배에
불신 가족들까지 참여하셨다.
소천 몇달 전 원장님의 영접기도로
신앙인이 되신
어머니께서 베푸신
마지막 베품이시다.
풍성한 기도와 고급인력 (ㅎㅎ)의 모임이
흐뭇하다.
주님을 믿음은
복을 가져온다.
그 가정에..........
3. 성경 여섯 장 읽겠다.
4. 나는 다윗의 길을 간다.
주님..
도우소서.
5. 곧 있을 큰 일에 대하여 기도한다.
목요일 ..
6. 권위자는 존중한다.
7. 겸손하자.
누가 뭐래도 인내하고 참자.
주여 ..
도우소서.
기도
주님
다윗이
여전히도 고난 중이지만
그의 스케일 크고
이제는 온전히 두려움을 벗은 듯한 모습에서
그 길이
어려웁지만
그리 낙심할 조건은 아님을
느끼고 있습니다 .
단지 생각이 아니고요..
그 길은 그럼에도
믿는 모든 자들이 반드시 걸어야할
천국행 인생길 임을 알기에
이 땅이 좋사오니하고
그냥 머묾에 눈돌리고
아쉬움을 내 뱉지 않도록 하소서.
그냥
주님 허락하시면
담대하게 받아들이게 하시고
주님
뜻이면
주어진 환경에서
그냥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하소서.
그리하여
주님이 영광을
내 삶에서 받으실 수 있도록
저를 쓰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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