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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맡김과 기다림( 삼상 29:1 - 11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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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맡김과 기다림( 삼상 29:1 - 11 )

주하인 2008. 6. 27. 10:44

제 29 장 ( Chapter 29, 1 Samuel )

 

 킨텍스

 

 미리 도착한 아내가

이리

나의 영적 내려놓음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

많은 분들이 기도해 주셨다.

감사하게도..

하지만,

어리석은 주하인..

틈만 나면 기어 나오는

이 영적 교만함은

언제나 다 닦여 나가

늘 다윗의 담담함을 유지할 수 있을 지..

 

 

 2.  블레셋 사람의 장관들은 수백씩 수천씩 영솔하여 나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아기스와 함께

    그 뒤에서 나아가더니 
 
 이스라엘 사람들과 싸우러 가는

블레셋 일행의 뒤켠에 따라가는

다윗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거짓 투항하여

이제  자기 동족을 죽이러 가는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는데

어떤 초조함이 그를 사로 잡았을까?

무슨 생각일까?

자칫

민족의 배반자 이완용 같이 될 위험에 있으면서도..

 

 대 명분이 없으면서도

그 무리에서 있는 자신이

자괴감이 들지는 않았을까?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로서

더욱 멋진 모습으로 있어야 함에도

이렇듯 거짓된 모습으로 일관하게 되는

자신이 한탄스럽지는 않았을까?

무슨 생각일까?

 

 가만히 있었을까?

요번도

하나님이 인도하심을 믿으면서

끝까지 있었을까?

그렇다면

다시 물음이지만

그 가만히 있는 동안의 흔들림은 없었을까?

대의 명분에 그리 맞지 않고

전례에 없던 일을 행하던 자신을

주님이 끝까지 도우실 거라는

확신적 믿음은 있었을까?

그렇다면

그 믿음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자신은 옳다는 '자기 확신 ' 내지 '자가당착'의 발로는 아닌가?

그렇다면

그것은 내려놓음도

주님을 의지함도 아니지 않는가?

오히려 과도한 불신앙의 다름이 아니지 않는가?

 

 아마도

다윗은 그랬을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염두에 두었기에

자신의 행동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일 것이란 것을

마치

아이가 어디를 가더라도

손잡은 아버지의 실체를 보면서

든든해 하고 걱정근심 하지 않는것과 비슷한...

그러기에 그는 끝까지 믿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다윗은

그 환경의 어떠함이나

자신의 행동거지

명분의 크고 적음에 상관없이  

자신은 주님 안에서 옳고 그럴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있을 것이다.

설령 ,

싸움에 참가하게 되더라도

주님께서 적절한 방법으로

동족을 다치게 하는 일은 없게 하지 않을 까하는

기대감도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그는 마냥 주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릴 수 있는 것이다.

 

 이게 정말 중요하다.

그냥 믿고 맡기고

자신은 주님 안에서

사랑 받는 자임을

누가 말하지 않아도

주님과의 교류 가운데서

그냥 알고 기다릴 수 있는 것.

 거기에는

당혹스러움이나

괜한 궤변적 사변이나

연민 등이 끼어들 자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냥

마냥

기다렸을 것이다.

편안한 자유 가운데....

 

얼마나 좋은가?

상황에 아무 상관없는

든든한 보장.

비바람이 쳐도

어이없는 환경에 머물러도

그냥 흔들림없는 자유로움.

 

난,

그 실체를

아주 조금은 안다.

 

 

  힘든 근무 후에

이렇게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사모하여

한자리에 모이는 분들이

아직도 많음이

이 한국의 미래를

그나마 다행스럽게 보게 하는

단초가 되고 있다.

 

 멀리 '알파'님이 뵌다.

열정적이신게  놀랍다.

 

 

  어제

'킨텍스'에 결국은 갔다.ㅎㅎ

 다윗같은 차분함과

사울 같은 당황함의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는

번민의 과정을 되풀이 하면서

일찍 갔다.

 도착해서 기다리는 동안도

마냥 편안함과

심장이 마구 뜀의 현상이

번갈아 가면서 날 괴롭힌다.

기도했다.

은혜가 쏟아지다가도

눈을 뜨고 잠시만 있으려면

식은 땀이 나고 실패의 상상이 꼬리를 물고 밀려온다.

 

 강단에 섰다.

주님께 맡기고 대충 줄거리만 준비해 간 자리에서

시작은 예상보다 잘되었다.

 찬양을 한곡 하고 나니

갑자기 머리가 '텅'빈다.

순간 '내가 이 자리에 .. '라는 생각이

날 꽉 막는 것만 같다.

잠시

몇 분을 가만히 있었다.

 먼길

오빠를 위해

찾아온 동생들과 아내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면서 답답해지려한다.

'역시..'

잠시 있으면서

주님을 몰두했다.

'주님께 내가 너무 교만했던 모습이 많았구나. ..'라

생각이 들며 순간 회개했다.

 찬양이 끝나고

내 자랑이 들어가 버렸다.

'주님은 이렇게 날 잡으시는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기쁨을 전하길 원하시지

그 앞에 '내 자아'가 서기를 원하지 않으심을

순간 깨달았다.

그랬다.

그러고

마음을 정리하고

준비해간 스토리를 겨우 짐작해 내고

말문을 여니

그 다음은 술술 진행된다.

 

 다윗의 심사를 들여다 보면서

난 어제의 행사가 떠오른다.

만일,

내가 다윗의

그 내려놓음 같은

온전한 맡김이 있었다면

어제같은 당황함은 있었을까?

당황함 이후의 당당함이

오늘 묵상 중의 다윗의 영적 상황의 실체 였을 것이다. 

 


3.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가로되 이 히브리 사람들이 무엇을 하려느냐 아기스가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에게 이르되 이는 이스라엘 왕 사울의 신하 다윗이 아니냐 그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여러

     날 여러 해로되 그가 망명하여 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그의 허물을 보지 못하였노라 
5.  그들이 춤추며 창화하여 가로되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던 이 다윗이

     아니니이까

 보라.

드디어 하나님의 손길이 시작되신다.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에게 뒤통수 맞을 것을 염려하여

아기스에게 항변한다.

아기스는

다윗에 대한 믿음을

강력히 피력한다.

 

 다윗은

어떻게 이 것을 보고 있었을까?

난, 느낀다.

어제 당당한 시간의

내 영적 상황과 비슷했을 것이다.

가만히

힘있는 눈으로 보았을 것이다.

 

 

    
 
  
6.  아기스가 다윗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네가 정직하여 내게 온 날부터

    오늘까지 네게 악이 있음을 보지 못 하였으니 나와 함께 군중에 출입하는 것이 나의 소견에는

    좋으나 장관들이 너를 좋아하지 아니하니 

 

 아기스가 놀랍게도 '여호와의 사심'을 들먹인다.

 다윗이 얼마나 행동을 조신하게 하였기에

이방의 왕이 이리도 멋진 신앙인의 모습으로 말을 하는가?

 

 어떤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게

기독교인으로서

마땅히 할 일이고 자세다.

이게

개인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우리 주님의

살아계심으로는

늘 가능하다.

다윗은 쫓기는 삶을 더 낮은 곳으로 가서

목숨을 연명하는 동안

마음에는 얼마나 속이 상할 상황이었던가?

그러나,

그는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한다.

그리하여

아기스 왕에게 이런 고백을 받게 한다.

그에대한 엄청난 신뢰와 사랑을 더불어..

 

 배울바가 많다.

이익에 나라까지 뒤엎어버릴 듯

행패를 행하는

현대의 뛰어난 네티즌들 중

아주 일부같은 자는

도저히 생각할 여지가 없는

미련한(?) 행동이지 않는가?

부디,

난 주님으로 인하여

미련해지고 싶다.

아직 본성이

위에서 본

사울과 다윗의 심성을 왔다 갔다 해서 문제지...

 

 

 
10.  그런즉 너는 너와 함께 온 네 주의 신하들로 더불어 새벽에 일어나라 너희는 새벽에 일어나서

      밝거든 곧 떠나라 
11.  이에 다윗이 자기 사람들로 더불어 일찌기 아침에 일어나서 떠나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돌아가고  

     블레셋 사람은 이스르엘로 올라가니라
 
 이제 듣고 싶은 이야기가 나온다.

떠나란다.

그래서

떠난다.

 주님을 믿고 의지하고

내려놓고

기다리면

주님이 알아서 하신다.

 이게 원리다.

 

 어제 '직장신우회 연합회' 모임인

 '킨텍스'에 가서

주하인이 이야기한 요지도

바로 이거다.

 

 난

몇년 간의 큐티를 인한

주님의 말씀을 접함으로

영혼이 변화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서서히

영혼의 증상의 그림 판인

마음이 변화가 되었다.  

마음의 변화는

현실의 변화까지 유발하게 되었다.

 이 과정은 수년 걸렸다.

힘들었다.

 이러한 순서가 중요하다.

그리하여 맡기게 되는 원리가 중요하다.

그후 기다리는 인내가 중요하다 .

이러한 모든 것은

주님과 매일 동행함으로 오는

놀라운 기쁨과 평강으로 인하여 가능하다...라고...

비록

말씀을 전하는 동안

맡기지 못하는

영적 사울 같은 시간이

엄습해서 고생을 했지만..

다윗의 그 평안함과 비교되어

오히려

난 깨닫는 바가 많았다.

오늘

묵상을 통하여

주님을 매일 매분 의지함 만이

이 모진 세상을 건너

주님 계신

그 놀라운 천국의 문을 열고

주님 보좌곁에

눈물의 기쁨을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하자

편안한 행복의 길임을

확실히 알았다.

 

 다윗은

이러한 영적 원리 가운데

매일 매 분을

흔들리지 않는 평안함 가운데 지낼 수 있었다.

인생의 대 부분을...

 

 

적용

 

1.  어이없는 자들에게도 최선을 다해 섬긴다.

 주여.

 도우소서.

 이 불같은 정죄의 죄를 용서하소서...

 오늘은 '두번' 참겠다 ^^;;;

 주님을 위해

 

2. 어떤 명분도 사양한다.

 주님이 원하시면.....

 그러기 위해 영적 민감성이 필요하다.

 

3.  낮아짐을 기뻐한다.

 다윗은 낮아져서 최선을 다했다.

 

4. 주님께 맡김을 연습한다.

 그냥 가만히 기다린다.

 

5. 말씀을 여섯 장읽겠다.

 

 

 

기도

 주님

어제 감사했습니다.

주님

오늘 감사합니다.

주님

당신의 깨달음을 허락하심이

또한번 제 영혼의 펼쳐질 가능성을 높혀주셧습니다.

주님

늘 지켜 주시고

늘 깨우쳐 주소서.

매일을 주님께 내려놓는 연습을 허락하소서.

주님

기다릴 능력을 주시고

주님

다윗처럼 겸손하게 기다릴 줄 알게 하소서.

최선을 다한 섬김으로

이웃을 감동케 하여주시되

주님의 이름으로 그리하게 하소서.

오랫동안 참게 하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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