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선택잘 한 선할 배트맨 ( 에 9:1-19 ) 본문

구약 QT

선택잘 한 선할 배트맨 ( 에 9:1-19 )

주하인 2008. 8. 14. 09:23

 제 9 장 ( Chapter 9, Esther )

 

   고창 갯벌 체험장.

넓은 갯벌에

하늘은 푸르다.

캔 조개가 많다.

하지만

돈 내고 했다.ㅎㅎ

10000원 /1인 !

 

 
 
4.  모르드개가 왕궁에서 존귀하여 점점 창대하매 이 사람 모르드개의 명성이 각 도에 퍼지더라 
 
  모르드개의 명성.

 

 이방생활 3대 유대 지도자 

"요셉"

" 다니엘"

" 모르드개"

 

 요셉과 다니엘에 대하여는 많이 알고 있지만

모르드개의 그것은 상대적으로 적다.

무엇이 그로 이처럼 대단하게 만들었을까?

기왕에 에스더를 통해서 본

그의 진중한 행동은 이해가 가나

그것 만 가지고는

부족한 것 같다.

 


 

 

 절대로 남의 재산 축내지 않았다.ㅎㅎ

억지로 간 휴가에

눈이 호강했다.

멀리 산이 조그맣게 보이고

그 위로 펼쳐진 너른 하늘

그 아래

사람들 조금..

파라솔이 눈에 띤다.

 

 영원의 너른 시간 속에

가진 재산

가진 능력....

얼마나 될까?
비교가 될까?

의미가 있을까?

 

주님의 말씀대로 좇을때야

그 재산이 의미가 있다.

욕심을 부릴 이유가 없다.

 
 
10.  곧 함므다다의 손자요 유다인의 대적 하만의 열 아들을 죽였으나 그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

      하였더라     
15.   유다인이 모여 또 삼백인을 수산에서 도륙하되 그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고 
 
 사람을 많이 죽였다.

재산에 손을 대지는 않았다.

 

 구약을 보면서

자꾸 걸리는 부분.

사람 죽이는 거 많이 나온다.

 그러면서

모두 멸절 시키라는 등

잔인하게 요구하시는 듯하면서도

재산에 손을 대지 못하게 하시는 모습이

지엽적인 것에 중점을 두고

오히려 중요한 살인은 가볍게 보시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주님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 잘하는 것을

최대의 덕목으로 삼고 있다.

 정말..

살인보다

재산 손 안대는 것이 덜 죄인가?

 사울은 

살인을 요구 받아서는  그리 했지만

재산을 손대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에는 불순종 함으로

처절한 말로를 겪었다.

 현대인의 죄 개념으로 보면

조금 어긋나는 개념인 듯도 하다.

 

 

 

 비가 와서 목포항에서

차를 돌려 집으로 왔다.

홍도는 포기 했다.

시간이 펑펑 넘친다.

 

그래서 '다크 나이트' , 영어로는 'Dark Knight'

배트맨의 완결 시리즈를 보았다.

 신문에서

영화의 '심리적 묘사'가 탁월하다 했다.

정말 그랬다.  

 

  줄거리는 이렇다.  

 배트맨의 주인공은 갈등한다.

영웅주의와 '선' 사이에서 갈등한다.

사람들의 오해와 찬사 속에서

인간 배트맨은 갈등하며

고담시 -배트맨의 거점 -의 스타 검사에게

그 영웅 자리를 넘기려 한다.

스타검사 '하비'는 정말로 정직하고 청렴한 사람.

그는 정의를 선택하는 데 거침이 없다.

그 '선택'의 도구가 있다.

양면이 똑같은 '동전'

이 동전을 던져서 결정을 내린다면서도

자신의 뜻, 정의에 어긋나는 것을 할  수 없도록

자신을 묶어 두었다.

 부인할 수 없는 선 !

 

그리고 그 사이에

배트맨의 정체를 알며

사랑하지만 검사와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인이 있다.

 그 여인은

또다른 등장인물 중

절정 '악'의 대표인 '조커'에게

납치를 당해 죽기 직전에

(배트맨에 비해 누구나의 눈에 합당한 '선' 으로만 보이는) '하비' 검사를 택한다며

- 얼마나 인간의 선에 대한 기준은

 확고부동한 오류를 가져올 수 있는가...? -배트맨에게 메모를 남긴다.

그리고는

조커의 납치와 폭탄에 의하여 죽고 만다.

 이때

마지막 선물이 되었던

하비의 동전을 가지고 있다가

그 동전의 한면이 그을 린다.

 

 하비 역시 조커의 모략으로

납치를 당해

죽음 직전에 두 쪽으로 나뉘어

배트맨의 선택을 강요하게 하며

'영웅주의적'이고 '대의'를 추구하는 성향의

배트맨이 구하도록 한다. ( 사랑과 대의 간의 선택을 강요 )

그 과정에

그의 얼굴의 반이 타고 만다.

 이후 그에게 전해진

동전은

선과 악 사이에

늘 선택을 하는 도구로 변하게 되고

그때마다

그 절대 선 '하비'는

절대 선과 절대 악을 넘나드는

도구로 동전을 이용하고 만다.

 

 이후에도 조커의 '선악' 게임은 계속된다.

고담시 전원을 대상으로

폭파 위협을 하며

수만 명을 두 배에 갈라 태우게 한다음

( 한쪽은 죄수 배

 다른 한쪽은 평범한 시민 배 )

양 배의 폭파 장치를

서로 나누어 가지게 하고

12시 까지 먼저 누르면 살아 남도록

교묘히 유도를 하고

그 과정을 악하게 누리고 있다.

 

이후 결국 사람들은

'선'을 선택해

모두 죽음을 택하나 배는 터지지 않는다.

 

 조커는 배트맨에 의하여 죽기 직전에

사람들의 근본적인 완악함에 확신을 가지다가

결국은 착각인줄 알고

처절히도 몸부림 치며 잡히고 말지만

두 얼굴

두 세계의

극단을 달리는 하비는

죽고야 만다.

 그리고는 배트맨은

자신의 불완전한 '영웅주의'의 위험성,

절대선은 있을 수 없음을  절감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파괴하고

평민으로 돌아간다.

 

 참 멋지고 훌륭하게 만든 영화다.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오락영화.

 

 

 오늘

유다인들의 보여주는

약간은 버거운 행동에 대하여

주님은 무엇을 말씀하시려는가?

 시대적 배경을 염두에 두고

영적인 원리에 관심을 두면

이렇다.

 그 시대는 '전쟁'이 흔하고

전쟁 중의 살인 등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벼운 죄일 수도 있고.. 맞나?...ㅎ..

무엇보다

영적인 관점에서 보면

악을 미워하되 철저히 미워하고

영혼의 우상이 될 부분을 철저히 배제해 나가라는 교훈으로 생각할 때

이해가 간다.

 

무엇보다

그보다 적은 '재산' 문제는

살인이 돈보다 더 적은 죄라는 의미기 보다는

주님의 뜻이면

살인이든 재산이든

주님 뜻대로 순종해야 함을 보이기 위함이 아닌가 싶다.

 

 배트맨의 교훈을 정리하면 이렇다.

 

 절대 선은 없다.

인간은 양면을 가졌고

현재의 보여지는 '하비'의 선은

의지의 결과일 뿐이며

그러한 극단은 '율법'이고

율법은 반드시 절대 악과 접촉해 있다.

자아가 극도로 커짐은

악이 극도로 커짐과 다름이 아니다.

즉,,

인간은

원죄적 존재로

예수님이 아니시면

절대로 선에 도달할 수 없는 존재이다.

 

 어느 정도까지의 선은

자신의 선택에 의하여 결정된다.

'하비의 동전'처럼

우리는 매사에 선택을 해야 한다.

 선택을 하되

주님 안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주님의 뜻이라 생각이되면

내 성품에 맞지 않더라도

전적으로 순종할 수 있어야 한다.

 

 배트맨의 '힘',

어둠속의 그 절대 힘,

더구나

자신이 선에 속해 있음을 알 때의

그 강렬한 자부심은

포기하기 정말로 힘들 수 있다.

   모르드개,

그 기회를 잡아

절대 명분과 힘과 기회, 분위기

모두가 하나님의 뜻 같아

마음대로 하고 싶을 때

재산 마져 건드리는 것이 쉬울 수 있다.

하지만

거기서 그는 멈추었다.

그 멈추기 위함을 위해

깨어 있어야 한다.

 그가 3대 이방 유대인 지도자에 속하는

확실한 덕목은

'진중함과 순종과 절제'다.

( 첫번째 구절의 답이다.)

 

 주님 말씀 앞에 늘 깨어 있어야 하고

주님의 뜻이 어떠한 것인지를

쉽게 알 수 있도록 그 분의 임재의 훈련을 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을 희생하지 못하도록 하는

수없이 많은 이유 - 마지막 '배 '안에서 시민들과 죄수 배 사이에서 벌어지는 수 분의 긴장감은 정말 리얼하게 묘사했다 - 중에서

주님의 강력한 제재가 없이

시간이 흘러가게 될 때

우리가 선택해야할

또다른 기준은

'남'을 위함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남을 위하여 자신을 포기함.

참으로 어렵고 힘들겠지만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실 때

우리 인간들이 보여주었으면 하셨을

그런 '사랑'의 결정체....

 

 그렇다면

오늘 말씀을 통하여

주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주님의 말씀 순종...은 늘 말씀하시는 것이다.

'선택'의 중요성

수 시간, 수분 마다의 다가오는 선택의 결과가

우리 인생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것의 중요성을 들어

늘 깨어서 주님 말씀을 선택해야한다는 

너무도 당연한 내용을 넘어서는

오늘 만의 '레마'는 무엇일까?

 

 위에서 기록한

가장 그럴 듯 할 때

내려오시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한

절제와 깨어 있음이 아닐까?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난 오늘을 어찌 살아야 하는가?

어제와 다른 오늘이 되고

그 오늘을 통하여 주님을 기쁘게 해드릴

개인적인 일은 무엇인가?

이제

오늘 하루도 

몇시간 남지 않았다.

 

 오늘 당직이다.

이 안에서 어찌 최선을 다할 까?

 

 

적용

 

1. 주님 앞에 깨어 있자.

 기도하자.

말씀 여섯 장 읽겠다.

어젯 것 까지 12장 읽겠다.

 

2. 내 좋아하는 것 , 포기할 수 있기 위해 기도하자.

 주님이 원하시면 내 판단에 옳다 생각해도 자를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배트맨도 포기했다.

 ㅎㅎ

 

3. 선택의 중요성.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자.

 차트를 정리하는 일이 보통이 아니다.

  환자 보랴, 밀리지 않고 차트 일 하랴.. 버겁고 짜증이 나려한다.

 그럼에도 선하게 대하자.

 사람들에게 선한 마음을 가지려 노력하자.

 

4. 남을 위한 선을 한번 베푼다.

 무엇을 어떻게 할까요?   주님..

 

5. 모르드개의 철저한 순종을 배운다.

 

6 .  사람들의 눈에 더뎌 보이고 어리석어 보일 수도 있지만

 주님의 뜻을 기다림이

 자신의 뜻대로 '선'이라 보이는 대의 명분을 취함 보다 옳다.

 손해를 각오하고

남의 앞에 튈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라.

그리고는 주님의 주시는 평강을 선택하라.. .주하인 !!

 그 여인은 '자아가 보여주는 선'을 선택하다 죽었다.

 

 

 

 

기도

 

주님

말씀을 묵상하고

전개하다 보니

쉬운 이야기 만은 아닙니다.

특별히 그게 옳다 생각되면

거침없이 밀고 나가다가

걸리면 순간 좌절해 버리는

어리석은 심성을 가진 저는

제 뜻에 틀리는 일을 안 부닥치려 애를쓰는 경향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여.

제 심성에 맞지 않더라도

주님의 뜻이면 순종할 지혜와 인내와

주님의 뜻 아래서

내 기쁨이 꺽이고

 주님의 기쁨이 내 영혼에 자리 잡는

더 큰 대승의 은혜를 허락하소서.

그걸 누리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