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생활 속의 신앙(왕상 7:1-12 ) 본문
제 7 장 ( Chapter 7, 1 Kings )
다시
삶 속으로 뛰어 들어오는
이
가을 아침 입니다
주님의 햇살이
제 영혼을
이리 강렬히도 비추이시는 군요
저
다시
힘내어 살렵니다
주여
모든 것
다 알아서 도우실 줄 믿나이다
1. 솔로몬이 자기의 궁을 십삼년 동안 건축하여 그 전부를 준공하니라
참으로 솔로몬의 자세는 되었다.
자세가 모든 영성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쨋든 여기까지 그의 태도는 확실히 본받을 만하다.
하나님의 전을 '칠년'에 걸쳐 완성하고
또 13년에 걸쳐서 자기의 궁을 그제야 착공하고 완성한다.
20년 동안의 대공사.
저 집이 완성 될 때까지 인내도 대단하였거니와
자신이 20 년의 기간 후 얼마 동안이나 재위할 것인가
완공된 성 안에서 얼마나 더 거할 것인가 생각은 해 보았을까?
아마도 천년만년 재위에 있을 것이란 생각은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50이 넘었지만 아직도 팽팽한 청춘 같은 마음이 없지 않아 있다.
죽음은 늘 생각하고 있지만
아직도 남 얘기 같은 ...
생각할 바가 있다.
어떤 일을 해도 늘 마지막 날 까지의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그 일을 이루고 얼마나 그 안에서 거하게 될 지 몰라도
이루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 해야 한다는 것이다.
12. 또 큰 뜰 주위에는 다듬은 돌 세 켜와 백향목 두꺼운 판자 한 켜를 놓았으니 마치 여호와의 전
안뜰과 낭실에 놓은 것 같더라
성을 참 아름답게도 꾸몄다.
성경에서 하나하나 인테리어까지 구분해서 설명해 놓으니
마치 그 때에 들어가서 그 곳에 있는 것만 같다.
어제도 그랬다.
지성소.
이루어 놓으면 전혀 들어갈 수도 없고
하나님 법궤가 계실 곳이기에 들어가면 죽을 수 밖에 없는 그곳의 모습을
묵상을 통해서 한번 들여다 보는 영광을 누리지 않았는가?
오늘은 '솔로몬' 성의 뜰 인테리어를 이리 보게 되는 것 만 같으니
참 재미가 없지 않아 있다.
그런데 그 인테리어가
마치
여호와 성전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나온다.
지금으로 따지면 어떤 '컨셉'을 잡아서
통일된 느낌으로 인테리어를 한 것이다.
오늘 주시려고 하시는 말씀이 무엇이던가?
일단 성전을 건축한 후
자신의 살 곳을 마련 한 것은
'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랑 상통하는 말씀이시다.
주님의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씀이다.
주님의 일이란 외적인 봉사 구제 헌금 등의 성전 외부적인 것 뿐아니라
내적인 성화의 노력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런 후 자신의 삶에도 최선을 다하라는 이야기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신앙생활'은 열심히 하지만
삶 속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
'이원론'적인 모습을 보고 있다.
특히 여성 분들에게서
'기도'와 '전도'의 열정은 뛰어난 데
'가정'을 도외시 하는 면을 보기도 한다.
남자 분들 가운데서도 헌신과 봉사를 하면서도
직장에서의 능력은 '바닥'권인 분들을 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 둘을 모두 다 잘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문제는 무엇인가?
'내'가 앞서기에 그렇다.
은혜 받았기에 열심을 보이는 것은 좋다.
그러나 거기에 자신의 열정, 자기의 열심, 어쩌면 자기의 성취감, 자기의 특성.. 등
자신의 '의'가 들어갔기에 그럴 수 있다.
그런 분들은 반드시 지친다.
실족의 위험성이 있다.
왜곡의 위험성이 있다.
그렇다면 어찌 해야 하는가?
오늘 묵상에 그 비밀이 있지 않던가?
'기다림'
무엇을 기다리는 가?
하나님이 인도하시길 기다림이다.
비록 그것이 내 살아 있는 동안 이룸을 보지 못하더라도
묵묵히 기다리며 일을 진행하는 것이다.
삶 속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비록 성공이 내 지금 움직이는 이 움직임의 스케쥴 따라서는
죽기 전에 이루어질 것 같은 초조함이 있어도
그냥 기다리는 것이다.
주님의 '전'을 먼저 온전히 세웠기에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였기에
그 분이 인도하셔서
죽기 전에..
안되면 천국에 가서라도
나의 삶은 반드시 성취를 볼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인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호와의 전'을 닮은 콘셉이 ' 솔로몬 성의 인테리어'에 배여 나왔다.
같은 컨셉이다.
즉, 신앙일치다.
신행일치이고
신심일치다.
주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
아니 주님의 원리 안에서 '쉼'도 '삶도 이루어지어야 한다.
그것이 온전한 삶이고
그것이 진정한 생활이다.
정말 중요한 게 이것이다.
많은 분들이 '신앙'과 '삶'을 분리해서 생각한다.
주님을 믿고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을 '교회'에 가서
교회의 지도와 행사에 준해서 하는 것이고
다시 삶에 나와선 생활만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고
그 안에서 신앙인으로서 '규제'만 정확히 이루어 내면 된다는 구분된 생각이다.
이게 '이원론'이다.
아니다.
신앙은 삶속에서 이루어 내는 것이다.
그래서 '일터 교회'라는 개념을 가지고
최근에 몇몇 곳에서 하나님의 가르치심대로 이루어 내려는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없지 않아 지나친 면이 보이는 부분이 있어
염려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기는 하다.
하지만 참으로 '일원론'적 사고가 맞다.
나.
내 내면의 혼란에 많은 부분 집중했었다.
상처는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평강에 집중하게 만들었고
그로 인하여 '말씀'을 선택하고 말씀대로 내 영혼의 흐름이 흐르게 하겠다는 결심으로
큐티를 시작하면서
내 영혼에 부어지시는 하나님의 평강이 날 놀랍도록 변화시키어 가시고 계시다.
그것은 내 성격이 온유해지는 차원을 넘어서서
삶속에서 하나하나 변화가 오게 되었음은
오래 내 블로그를 찾아오신 분들에게는 귀가 따갑도록 강조된 바가 없지 않다 ^^;;
감성의 개발.
의학적 술기의 변화....
아직도 가야할 길은 멀지만
어쨋든 내 아픔으로 인하여 말씀을 접하게 하시고
그로 인하여 깊은 주님과의 만남을 가능하게 하시었다.
또하나 오늘 묵상에서 깨달은 바는 이렇다.
'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하고 그 누림을 기뻐하라'
오늘날 세상은 '늙어 죽기 전에 호사하다 죽을' 그런 목표로
살아가는 사람들 처럼 산다.
젊어서 성공을 하고
늙어서 10억 정도 모아야 편안한 노후를....
그러기 위해서 모든것을 다 포기한다.
가정과 자신의 모든 행복을 거기에 건다.
그게 사는 모든 이유인 것 처럼..
그러다 보니 누구도 다 그렇다.
그런 시류의 흐름에 떨어지면 'Looser'라 생각한다.
거기에는 안정감이 없다.
불안하다.
초조하다.
그리고 그렇게 설령 성공한 '소수'라도
그 이후에는 어떠한 행복이 그들에게 있을까?
칠십되고 팔십되어
그래 다달이 월 2백 만원 정도의 연금 나오고
일년에 한두차례 해외여행 간다 쳐도
그게 무슨 낙이 될 것인가?
그런데도 그런다.
그것을 위해 다 포기한다.
오늘 솔로몬의 '성'을 완성하면서 기다리는 그 눈길과 그 마음을 묵상해 보았다.
그냥 그윽한 눈길이다.
그냥 차분하다.
일찍 들어가도 늦게 들어가도
그게 그에게 무슨 상관이 있으랴 하는 마음이다.
그럼에도 최선을 다한다.
주님으로 그득찬 사람들의 마음이 그럴 것 같다.
어제 '안나'님의 리플 글이
가슴에 흐뭇하게 들어 찼다.
'"존재만으로도 행동 그 이상의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에 늙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그렇다.
내가 주님과 함께 있고
주님이 내 안에 계시기에
그득하고
그 그득함이 주위에 펼쳐지는
주님의 향기로 서 나타나게 되어
나는 주님으로 든든하고
남들은 그런 나로 하여 주님을 좀더 가까이 할 수 있게 되고
내 일상의 삶이 주님이 다 책임져 주심을 체험하게 되는데
그 이상의 어떠한 바램이 더 필요할 것인가?
오늘
솔로몬의 자기의 '성'을 완성해가는 모습이 든든하다.
단, 바로의 딸이 자꾸 걸리긴 하다.
나의 일상의 삶 속에서
주님을 동행하려는 노력은
스스로 생각해도 기쁘고 기특하지만
나에겐 어떠한 '바로의 딸이 있을까?
늘 회개하고 깨달아 돌이킬 일이다.
적용
1. 내 블로그에 많은 귀한 분들이 오셨다 가신다.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주님의 나라를 같이 고민하고 같이 다잡아 가는 분들이 되시길...
2. 삶이 곧 신앙이다.
내 움직임, 내 생각, 내 모든 것이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회가 되며
순간 순간이 예배가 될 수 있다.
'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 기뻐하라'
매사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는 기회지 않는가?
오늘 특별히 내 성을 아름답게 지어보자.
성질 부리지 말자.
좌절하지 말자.
나쁜 생각에 정신을 빼앗기지 말자.
좌절하지 말자.
죄책감을 가지지 말자.
남을 손가락질 하지말자.
나에게 손가락질도 말자. ...
3. 성경 세장 읽는다.
죽도록 말씀에 붙들리겠다.
4. 당직이다.
웃자.
기도하자.
기도
주님.
어찌보면 되게 암울한 하루하루의 연속일 수 있습니다.
주님.
세상의 눈으로 보면
이전의 눈으로 보면
내 속을 모르는 누구라도 알게되면..
그러나 주님 만은 아시고
저 또한 그런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엮어가고 있습니다.
이해못하겠지만 이해가 되는
기가 막힐 일이지만
기가 막히게 대단한 하루하루가 될 일이
저의 매일을 엮어가고 있습니다.
솔로몬의 입장이 되어도 제 일이 될 듯싶은
그러한 하루 하루 입니다.
만일 이전의 제가 솔로몬의 지금에 들어가면
'아니.. 이제 얼마나 더 있어야 이루어진단 말인가?
하.. 다 늙어서 들어가겠네.. '
이런 마음이 들었을 지 도 모르는 '성'의 모습을 보며
그는 지금 '차분한 눈'으로 성을 보고 있습니다.
기뻐하지도
초조하지도
지루해 하지도
주님의 전을 먼저 해내었다는 자랑스러움도 없습니다.
그저..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그냥 차분히 든든히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저도 그리하게 하소서.
매사에 주님의 뜻 가운데서
일상의 삶에 나에게 엮여지는 일들을
잘 이루어 내게 하소서.
과거야 어떻든, 미래야 어찌 될 것이든
현재 난, 주님이 기뻐하시는
내 내적 성취를 유지하길 원합니다.
주님.
그럴 때 주님께서 제 삶도 책임져 주소서.
내가 그토록 곤혹스러워 하는 문제를 풀어주시고
그토록 하기 싫어하지만
하나님의 법과 한 마음 속에서 싸우는 '악한 생각'들을 몰아내 주시고
그것으로 인하여
주님 성령의 허락하신 '승리'가
내 영혼의 안팎으로 폭풍우치듯 밀려 나오게 하소서.
마치 어제 지성소의 '그룹'의 양날개가
그 성전 양끝을 감싸고
중앙에서 만남을 이루듯
넘실거리는 성령의 운행이 저와 제 주위에 넘치게 하소서.
그래서 옳은 성전,
거대한 주님의 성전이
제가 서 있는 제 일터에서 펼쳐지게 하소서.
알지 못하는 자들이 알게 하시고
아는 저에게 더욱 뚜렷한 감동으로 자리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시여.
알아서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 받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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