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다윗이 부럽다(왕상 5:1-18 ) 본문

구약 QT

다윗이 부럽다(왕상 5:1-18 )

주하인 2010. 9. 13. 11:49

제 5 장 ( Chapter 5, 1 Kings )  

 하늘 마져 가를 듯

짙게 느러져 있는

전선 줄 같은

내 자아.

 

이제

주님 하늘 안에 녹아들어

나는 없어지고

풍경을 이루게 하소서

 

그리하여

잠자리 날아와 쉬듯

누구나의 쉼터가 될 수 있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왕상 5:1-18 )
1.  솔로몬이 기름 부음을 받고 그 부친을 이어 왕이 되었다 함을 두로 왕 히람이 듣고 그 신복을

    솔로몬에게 보내었으니 이는 히람이 평일에 다윗을 사랑하였음이라 
  솔로몬이

아버지의 영향을 받는다.

다윗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음으로

그 영향이 자식에까지 미친다.

 

  
3.  당신도 알거니와 내 부친 다윗이 사방의 전쟁으로 인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그 원수들을 그 발바닥 밑에 두시기를 기다렸나이다  
4.  이제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게 사방의 태평을 주시매 대적도 없고 재앙도 없도다 
 성전 건축의 뜻은 넘쳤으나

다윗은 '전쟁' 가운데 있었다.

그 전쟁 마져

주님이 마무리 지어주시기를 기다렸다.

 

 다윗을 보면서

그 분의 그 처세가 부럽다.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에서도 사랑을 받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시도록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맡기어 뜻대로 따르고

자식과 아버지의 관계에서도

자식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다.

 

 다윗에게서 받은 인상은

그는 매끄럽게 처세를 했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그렇고

하나님과 그 사이에서도 그렇고

자식과 아버지 사이에서도 그랬다.

마치 물이 흘러 가듯하다.

 

 나와 어떤 차이가 있는가?

나.

좋은 의도는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갈등과 단절이 자주 있다.

무엇이 문제던가?

무엇이 나로 하여금 흐르지 못하게 하던가?

이유는 안다.

아직도 나에겐 '나'의 주장이 많다.

내가 해야 하는 것이 많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뜻을 흘려 보내지 못하고 있다.

그 놀라운 은혜와 사랑이

세상을 향해 펼쳐나가지 못하고 있다.

 

 다윗은 잘 흐른다.

왜 그가 그렇게 흐를까?

그는 '자기'가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주님이 하라면 한다.

자신이 하다가도 '잘못'을 깨달으면 순간적으로 변한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생각하면

일체의 주저함도 없다.

 그것은 그는 하나님이 원하시면 그 어떤 것이라도 받아 들이는

온전한 자기 부인의 틀 안에 있기 때문이다.

자기부인.

정말 쉽지 않은 이야기다.

살아가면서 이것을 이루어내는 자 조차 얼마 없지만

어려서 부터 철저한 저러함이 있었던 분이기에

다윗은 주님의 극진한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 아니던가?

그렇다면 '질투'는 그만 할란다. ^^;;

어차피 그는 특별한 분이시고

나는 '자기 부인'과는 거리가 먼 자 이기에..

 

그렇다면 나는 왜 아침부터 갑자기 이렇듯 가슴이 아파야 하는가?

자고 일어나니 순간적으로 밀려 오는 생각이 있다.

사단의 것임을 직감하고 즉시 앉아 보혈 찬송과 말씀으로 이겨냈고

기도로서 마음이 훨씬 가벼워 졌지만

월요일 아침이 조금 무겁게 느껴지며 시작이 되고 있다.

이러한 나의 마음을 아시는 지 

주님은 확실히 드러내 보이신다.

 '나.

 자식에게 다윗 같은 좋은 영향을 미치지도 못하고 있고 ㅜ.ㅜ;;

이웃에게도 그렇게 좋은 평판을 얻지도 못하고 있는 듯 하며 ^^;;;

주님의 뜻에 온전히 다 맡기지 도 못하는 '..

관계에 있어서 그리 현명치 못한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묵상을 조금 씩 진행하면서

다윗처럼 자기 부인이 필요함을 깨닫기도 했지만

그 분처럼 그러한 자 세상에 얼마 없을 것도 인정이 되며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 진다.

 더구나, 나의 깊은 진심은

내 인생의 큰 부담이

실은 내 가족에 대한 '너무도 잘하고 싶은 '

이 인간적 부담이 원인의 한부담이 었음을 깨달으며

나의 스스로 생각하던 것과는 다른 마음이 있었음을 깨닫게 된 것도 다행이긴 하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기 부인'이라는 명제가

묵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떠오르지 않았던가?

그래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쉬운가?

자존심 덩어리.

아직도 자존심이 죽는다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질 것만 같이 아파오려는

이 강퍅... 그 자체의 주하인이..?

 

 다윗이 부럽다.

자신을 죽일 수 있는 그 자연스러운 영혼이 부럽다.

자신을 낮출 수 있는 자가 성공한다.

나.

세상에서 성공론적으로 그리하긴 싫지만

괜한 이유로 해서 '자존심' 세우는 것은 그만해야 할 지도 모른다.

자기 부인은 자존심을 꺽는데서 부터 시작한다.

자존심의 각이 꺽어지면

영혼이 자연스레이 흐를 테니..

 어느 부분에서의 자존심이던가?

모든 부분이다.

묵상할 일이다.

기도할 일이다.

 

적용

1. 아버지 학교 간다.

시간이 많이 지나니 습관화 되어간다.

가끔은 영적이지 않은 시간이 너무 오래 지속되어가니 가기가 싫어질 때도 있다.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갈 곳에 가는 것도

자존심을 꺾는 일이기도 하다.

꼭 쓰임을 받아야 하는가?

중보와 자존심 꺾는 훈련,

인내의 훈련으로 가지 않는가?

좋은 사람들 자체도 좋다.

 

2. 기도한다.

자존심 꺾는 훈련을 잘 받아낼 수 있도록..

얼굴 굳히지 않고

표현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할 수 있도록 기도한다.

약할 때 강해지는 게 주님원리다.

주님을 위해서 약해지는 것이다.

그러할 수 있길 기도하자.

 

3. 흐른다.

 다윗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랬다.

모든 자와 화평하는 게 주님의 원리다.

그게 흐르는 것이다.

흐르는 훈련은 '자아 부인'을 훈련하는 것이다.

모든 관계에서 낮춘다.

그러면 흐른다.

 

4. 성경을 세장 읽겠다.

 

기도

 주님

다윗이 부럽습니다.

그의 유연함이 부럽습니다.

모든 관계에서 그러함이 참 부럽습니다.

날 돌아봅니다.

매사에 꺾어집니다.

아직도 그렇습니다.

아니..

마음은 안그런데 제가 이해하기도 전에

오래된 내 언어습관과 태도와 눈빛과 얼굴의 움직임 등이 그리 만드는 것 같습니다.

돌아봅니다.

아직도 많이 '내 자아'가 살아 있습니다.

주님이 흐르시길 원하시는데도

죽기 싫어 서슬 퍼런 자아가

날 가로막고 잇습니다.

매사에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마음 한 구석에는 철저히 자식과 식구에게

사랑하는 , 주고 싶은 마음이 넘치는데도

표현이 그리되지 못하고

스스로도 난 전혀 사랑이 없는 자 처럼 생각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그게 절 힘들게 합니다.

배워보질 못했습니다.

흐른다는 것.

자연스러운 것.

자신을 낮출 수 있음을 배우질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주님.

또다시 다윗님이 부러워 집니다.

그분을 질투할 뻔 했습니다.

깨달음을 통해서 자아부인이라는 것을 명제로 받았습니다.

주님.

 그리하게 하소서.

아프지만 죽어지게 하소서.

제가 안되니

주님 성령님.

당신의 생명의 성령의 법칙으로 나를 사망의 법칙,,

그.. . 선을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던 그 갈등의 원칙에서

날 해방해주시고 자유케 하소서.

주님으로 부터 은혜의 해가 넘치게 하셔서

날 죽이고 주님 만 내 속에서 살아 넘치게 되게 하소서.

오늘 특별히 그리하소서.

말씀으로 그리하시니

오늘 그리되게 하소서.

간절히 간절히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Comments